'오이디푸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11.24 11. 11. 23 -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일   시 : 2011.11.08 ~ 2011.11.27
장   소 : 명동예술극장
관극일 : 2011.11.23(수) 20:00
원   작 : 소포클레스
연   출 : 한태숙, 무대디자인 : 이태섭, 음악 : 원일
캐스트 : 오이디푸스 - 이상직, 크레온 - 정동화, 테레시아스 - 박정자, 요카스타 - 차유경, 코린트의 목자 - 박상종, 테베의 목자 - 박상종, 알몸의 새 - 이기돈, 사제 - 김정호, 춤꾼 - 이경은, 시인 - 김은석, 수상한 벙어리 - 이영란, 안티고네 - 박세영

7월에 한 번 올라왔었는데, 그때는 시간이 안 맞아 못 보고, 다시 앵콜 공연이 올라온다고 해서 이번에는~ 하고 별렀더니 내가 햄릿에 완전 낚여서 가열차게 회전문 도는 기간이라 정말 스케줄 잡기 어려워서; 그래도 어떻게든 봐야하지 않겠나 해서 스케줄 잡았더니, 이번주 월요일 노담콘을 시작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으로 채워져서 완전 죽음의 스케줄이 되버렸다는; 그래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단은 무대가 굉장히 독특했다. 객석쪽으로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어 그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고, 무대 옆쪽에는 깍아지른 절벽과도 같은 벽이 있어, 거기에 매달린 코러스 - 시민들은 그 자체로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게다가 벽에 석필로 그려진 사람의 형상, 얼굴들은 조명을 받아 유령과도 같은 섬뜩함을 전해준다. 무대 그 자체로 극의 분위기를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고 할까.

원작은 "오이디푸스 왕"인데, 거기서 '왕'이 빠지고 '오이디푸스'로 제목을 정했을 땐, 어떤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극을 다 보고나니 살짝 이해가 될 듯 말 듯.
내가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의 오이디푸스 왕을 굉장히 인상깊게 좋게 봤었기 때문에 그것과 비교를 안 하려해도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보게되었는데, 음, 이게 한국적인 오이디푸스로구나 하는 감상. 오이디푸스에 정치적인 해석을 상당히 많이 끼얹었더라. 그래서 '왕'이 빠진 걸까. 물론, 오이디푸스의 가장 큰 주제는 운명에 맞서는 인간과 숙명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 그 거대한 흐름속에서 어떻게 '나'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극에서 잘 살렸지만, 인상에 남는 건 정치적 해석쪽이더라.

스핑크스의 저주로부터 테베를 구한 구세주, 젊고 지혜로운 자랑스러운 왕. 그러나 그는 이방인이다. 한국판 오이디푸스는 여기에 집중한다. 그는 테베에서 이방인 왕으로 테베의 전통과도 단절되어 있고, 소외된 존재다. 별탈 없이 나라가 굴러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신의 저주로 나라가 황폐해지고, 역병이 돌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의심과 반감이 떠올라 그의 목을 조르는 거다.
기득권을 대표하는 크레온과 사제. 그리고 코러스라고 뭉뚱그려지지 않은 때로는 한 목소리를 내지만, 각자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 그 시민들의 역할도 원작에서보다 훨씬 정치적이다.

무엇보다 무대 만큼 인상적이었던 배역이 있는데, 그건 반인반수의 새를 연기하신 이기돈 씨.
그 불길한 아르르르르르 하는 새소리하며, 그 동작. 그리고 높은 곳에서 오이디푸스의 비참한 운명을 관조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원작에도 없는 이 연출은 참 좋더라.

그 외 배우분들 연기는 다들 훌륭하셨지만, 유일하게 정동환 씨의 크레온 만은 혼자 붕 떠있어서, 이게 연극 무대에서 오래 내공을 쌓은 분들과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가 더 익숙한 분과의 차이인가 싶었다. 정동환 씨가 연기력으로 어디서 아쉬운 소리를 들을 분은 아닐텐데, 나에게 클레온은 어떤 인상도 주지 못했다. 딱 한 군데, 마지막 오이디푸스 왕 실각 이후에 연설 장면에서 잠깐 빛을 발하는 정도.

난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야! 라는 오이디푸스의 외침과 맞물려, 세갈래 길을 사람 인자로 바닥에 그리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의 마지막을 굳이 바위산에 몸을 던진 자살로 마무리한 건, 진짜 너무 정치적인 해석이 아닌가. 그리고 그 반인반수의 새는 어딘가 부엉이를 떠올리게 하더란 말이지. ㅠ.ㅠ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