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Anthony and Cleopatra)
일 시 : 2011. 11. 24 ~ 2011. 11. 27
장 소 : LG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25 (금) 19:30
연 출 :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 원작 : W.셰익스피어
캐스트 :
안토니 - 요시다 코타로, 클레오파트라 - 아란 케이
옥타비우스 시저 - 이케우치 히로유키, 도미티어스 이노바버스 - 하시모토 준, 옥타비아 - 나카가와 안나, 샤미언 - 쿠마가이 마미, 이로스 - 니탄다 마사즈미, 레피더스 - 사카구치 요시사다, 폼피어스 - 요코타 에이지, 점쟁이 - 아오야마 타츠미, 미시너스 - 주쿠 잇큐, 알렉서스 - 데즈카 히데아키, 아이러스 - 이케타니 노부에, 미너스 - 오가와 히로키, 내시/천사/소년 - 시모츠카 쿄헤이
니나가와 유키오가 우리나라에 온다는 소식을 몇 달전에 들었을 때, 어머~ 이건 봐야해!! 라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내가 햄릿 회전문 도는 기간에 연극이 올라가서 날짜 잡기 참 힘들었다; 하여간 그래도 짧은 기간 중에 용케 스케줄 잡아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니나가와 유키오의 작품을 본 건 다 노무라 만사이 상 덕분(;)이었는데, 고전을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볼거리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그의 연출 방식은 상당히 내 취향이기도 했다. 비록 DVD로 밖에 감상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이번에 생생한 무대로 그가 연출한 고전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됐다.
과학이라는 LG아트센터지만, 대극장이라 과연 배우들 목소리가 극장 구석구석 잘 퍼질까 살짝 걱정하고 보러갔는데, 이럴수가 OTL 이제 한국 공연 이틀째였는데, 주연 배우들 목소리가 벌써부터 상당히 상해있더라. 특히 대사량이 많은 셰익스피어 극에 주인공인 안토니 역의 요시다 코타로와 옥타비우스 역의 이케우치 히로유키는 극 후반으로 가면서 안스러울 정도로 목소리가 안습이었다. ㅠ.ㅠ 그 와중에 우리 여왕님, 클레오파트라의 아란 케이만이 끝까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와주셔서, 오오~ 전 다카라즈카 성조(星組) 탑스타의 위엄!
니나가와 유키오의 연출은 내가 보기엔 연출가의 개입이 극도로 절제된, 희곡에 가장 충실한 연출이지 않은가 싶다. 그러면서도 제한된 무대라는 장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능하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선보였던 드나드는 출입문의 활용이나, 객석까지 무대로 확장하는 기법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도 적용해서, 통로석을 잡은 나를 쓰담쓰담했다.
니나가와 사단이라고 해도 무방할 배우들은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목상태만 좀 더 좋았다면 참 좋았을 것을. ㅠ.ㅠ
요시다 코타로의 안토니는 그야말로 클레오파트라에 푹 빠져서 모든 걸 건 남자. 자신의 영광, 권위 그 모든 걸 그녀의 발 앞에 내던진 한 영웅의 모습을 잘 표현해줬다. 비록 사랑에 쩔어서 몰락해가지만, 그럼에도 영웅으로서의 고귀함만은 죽는 순간까지 간직하고 간, 그래서 결코 찌질함같은 건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던 늙은 사자와도 같았다.
오오~ 여왕님~ 아란 케이의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우셨다.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그 아름다운 자태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러면서도 변덕스럽고, 위험한 팜므파탈의 정석을 제대로 보여주셨다. 목소리에 넘치는 위엄이나 그 당당한 자태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 그냥 그 앞에 무릎꿇고 엎드리고 싶게 만들어주는 여왕님이셨다. 마지막에 살짝 체력이 좀 딸리시는 티가 나기는 했지만, 뭐 3시간 30분이나 되는 극에서 안토니도 먼저 퇴장한 마당에 끝까지 무대를 지키고 계셔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허리가 한 줌 밖에 안되시던데, 그 가냘픈 몸매로 그런 기백을 내내 보여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닥치고 경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오늘 나한테서 가장 많은 눈물을 뽑아내신 두 분. 이노바버스 역의 하시모토 준, 이로스 역의 니탄다 마사즈미.
이노바버스라는 캐릭터가 심복이었다 주인의 몰락을 보며 배신하는 역이었는데, 그럼에도 전혀 비열하거나 비겁한 캐릭터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안토니의 충복이었고 배신자로 죽어가는 자신에 절망하여 자살하는데 시종일관 유머가 넘치고, 능글맞고, 한편으로 시니컬하던 그 캐릭터가 마지막에 와서 그렇게 절절하게 내 눈물을 뽑아낼 줄은 몰랐지. 거기에 비해 이로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안토니만 바라보는 충복. 안토니의 추락에 신하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날 때도 끝까지 그 곁에 남은 충복. 그런 단심이 또 눈물샘을 자극해서.
옥타비우스와 옥타비아의 두 배우님은 참으로 이국적인 외모에 어찌나 선남 선녀이신지. 그런데, 이 두 남매에게 레어티스와 오필리어가 겹쳐보이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안토니와 옥타비우스의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옥타비아가 안토니와 정략 결혼을 하게되는데, 옥타비아가 안토니를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떠나는 장면에서 이건 뭐 남매가 아니라 거의 연인사이더라. 포옹도 어찌나 격하게 하시는지. 오필리어는 누이동생이었지만, 옥타비아는 누나라. 이 애틋한 남매들을 어쩌면 좋냐.ㅋㅋㅋ
뭐, 잘 알려진대로 클레오파트라는 독사를 이용해 자살하는데, 여기서도 참, 물론 뱀 인형을 쓸 수 밖에 없는 건 알겠지만, 그 심각한 장면이 희화화 되어서는 안되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더라. 게다가 그 뱀인형이 클레오파트라를 죽이고 바닥에 떨어진 다음 어쩐일인지 슥슥 기어서 무대를 가로질러 퇴장하고 있는거다! 아 진짜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ㅋㅋㅋ
각종 조형과 조명을 이용하여 로마와 이집트, 해적선, 전쟁터를 보여준 무대연출은 정신없는 등퇴장과 함께 무대를 어수선하게 했지만, 그래도 3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으며 극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에 공연 성과가 좋으면 다음에도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의 다른 작품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니나가와 씨의 연출이 원작의 충실한 재현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일본색을 덧입히는 부분을 빼먹고 안 썼다. 극의 시작, 무대를 덮은 막은 가부키 막처럼 오방색 천인데, 그걸 가부키 개막할 때 처럼 딱딱거리는 소리에 맞춰 무대를 가로질러 막을 젖힌다. 그리고 이번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무사'나 '장군'이라는 요소에 일본색을 덧입혀서, 그 주종관계라던가, 충복의 자살같은 건 상당히 일본적 정서가 느껴지더라.
++ 그러고보니 요 근래 본 극은 다 주인공들이 죽어버리는군. 햄릿에 오이디푸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까지. 감상 후기는 밀리기 시작하면 정말 감당이 안된다. ㅠ.ㅠ 나머지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일 시 : 2011. 11. 24 ~ 2011. 11. 27
장 소 : LG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25 (금) 19:30
연 출 :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 원작 : W.셰익스피어
캐스트 :
안토니 - 요시다 코타로, 클레오파트라 - 아란 케이
옥타비우스 시저 - 이케우치 히로유키, 도미티어스 이노바버스 - 하시모토 준, 옥타비아 - 나카가와 안나, 샤미언 - 쿠마가이 마미, 이로스 - 니탄다 마사즈미, 레피더스 - 사카구치 요시사다, 폼피어스 - 요코타 에이지, 점쟁이 - 아오야마 타츠미, 미시너스 - 주쿠 잇큐, 알렉서스 - 데즈카 히데아키, 아이러스 - 이케타니 노부에, 미너스 - 오가와 히로키, 내시/천사/소년 - 시모츠카 쿄헤이
니나가와 유키오가 우리나라에 온다는 소식을 몇 달전에 들었을 때, 어머~ 이건 봐야해!! 라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내가 햄릿 회전문 도는 기간에 연극이 올라가서 날짜 잡기 참 힘들었다; 하여간 그래도 짧은 기간 중에 용케 스케줄 잡아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니나가와 유키오의 작품을 본 건 다 노무라 만사이 상 덕분(;)이었는데, 고전을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볼거리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그의 연출 방식은 상당히 내 취향이기도 했다. 비록 DVD로 밖에 감상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이번에 생생한 무대로 그가 연출한 고전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됐다.
과학이라는 LG아트센터지만, 대극장이라 과연 배우들 목소리가 극장 구석구석 잘 퍼질까 살짝 걱정하고 보러갔는데, 이럴수가 OTL 이제 한국 공연 이틀째였는데, 주연 배우들 목소리가 벌써부터 상당히 상해있더라. 특히 대사량이 많은 셰익스피어 극에 주인공인 안토니 역의 요시다 코타로와 옥타비우스 역의 이케우치 히로유키는 극 후반으로 가면서 안스러울 정도로 목소리가 안습이었다. ㅠ.ㅠ 그 와중에 우리 여왕님, 클레오파트라의 아란 케이만이 끝까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와주셔서, 오오~ 전 다카라즈카 성조(星組) 탑스타의 위엄!
니나가와 유키오의 연출은 내가 보기엔 연출가의 개입이 극도로 절제된, 희곡에 가장 충실한 연출이지 않은가 싶다. 그러면서도 제한된 무대라는 장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능하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선보였던 드나드는 출입문의 활용이나, 객석까지 무대로 확장하는 기법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도 적용해서, 통로석을 잡은 나를 쓰담쓰담했다.
니나가와 사단이라고 해도 무방할 배우들은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목상태만 좀 더 좋았다면 참 좋았을 것을. ㅠ.ㅠ
요시다 코타로의 안토니는 그야말로 클레오파트라에 푹 빠져서 모든 걸 건 남자. 자신의 영광, 권위 그 모든 걸 그녀의 발 앞에 내던진 한 영웅의 모습을 잘 표현해줬다. 비록 사랑에 쩔어서 몰락해가지만, 그럼에도 영웅으로서의 고귀함만은 죽는 순간까지 간직하고 간, 그래서 결코 찌질함같은 건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던 늙은 사자와도 같았다.
오오~ 여왕님~ 아란 케이의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우셨다.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그 아름다운 자태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러면서도 변덕스럽고, 위험한 팜므파탈의 정석을 제대로 보여주셨다. 목소리에 넘치는 위엄이나 그 당당한 자태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 그냥 그 앞에 무릎꿇고 엎드리고 싶게 만들어주는 여왕님이셨다. 마지막에 살짝 체력이 좀 딸리시는 티가 나기는 했지만, 뭐 3시간 30분이나 되는 극에서 안토니도 먼저 퇴장한 마당에 끝까지 무대를 지키고 계셔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허리가 한 줌 밖에 안되시던데, 그 가냘픈 몸매로 그런 기백을 내내 보여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닥치고 경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오늘 나한테서 가장 많은 눈물을 뽑아내신 두 분. 이노바버스 역의 하시모토 준, 이로스 역의 니탄다 마사즈미.
이노바버스라는 캐릭터가 심복이었다 주인의 몰락을 보며 배신하는 역이었는데, 그럼에도 전혀 비열하거나 비겁한 캐릭터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안토니의 충복이었고 배신자로 죽어가는 자신에 절망하여 자살하는데 시종일관 유머가 넘치고, 능글맞고, 한편으로 시니컬하던 그 캐릭터가 마지막에 와서 그렇게 절절하게 내 눈물을 뽑아낼 줄은 몰랐지. 거기에 비해 이로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안토니만 바라보는 충복. 안토니의 추락에 신하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날 때도 끝까지 그 곁에 남은 충복. 그런 단심이 또 눈물샘을 자극해서.
옥타비우스와 옥타비아의 두 배우님은 참으로 이국적인 외모에 어찌나 선남 선녀이신지. 그런데, 이 두 남매에게 레어티스와 오필리어가 겹쳐보이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안토니와 옥타비우스의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옥타비아가 안토니와 정략 결혼을 하게되는데, 옥타비아가 안토니를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떠나는 장면에서 이건 뭐 남매가 아니라 거의 연인사이더라. 포옹도 어찌나 격하게 하시는지. 오필리어는 누이동생이었지만, 옥타비아는 누나라. 이 애틋한 남매들을 어쩌면 좋냐.ㅋㅋㅋ
뭐, 잘 알려진대로 클레오파트라는 독사를 이용해 자살하는데, 여기서도 참, 물론 뱀 인형을 쓸 수 밖에 없는 건 알겠지만, 그 심각한 장면이 희화화 되어서는 안되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더라. 게다가 그 뱀인형이 클레오파트라를 죽이고 바닥에 떨어진 다음 어쩐일인지 슥슥 기어서 무대를 가로질러 퇴장하고 있는거다! 아 진짜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ㅋㅋㅋ
각종 조형과 조명을 이용하여 로마와 이집트, 해적선, 전쟁터를 보여준 무대연출은 정신없는 등퇴장과 함께 무대를 어수선하게 했지만, 그래도 3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으며 극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에 공연 성과가 좋으면 다음에도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의 다른 작품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니나가와 씨의 연출이 원작의 충실한 재현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일본색을 덧입히는 부분을 빼먹고 안 썼다. 극의 시작, 무대를 덮은 막은 가부키 막처럼 오방색 천인데, 그걸 가부키 개막할 때 처럼 딱딱거리는 소리에 맞춰 무대를 가로질러 막을 젖힌다. 그리고 이번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무사'나 '장군'이라는 요소에 일본색을 덧입혀서, 그 주종관계라던가, 충복의 자살같은 건 상당히 일본적 정서가 느껴지더라.
++ 그러고보니 요 근래 본 극은 다 주인공들이 죽어버리는군. 햄릿에 오이디푸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까지. 감상 후기는 밀리기 시작하면 정말 감당이 안된다. ㅠ.ㅠ 나머지도 어떻게든 마무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