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에서 비누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쓸데없이 일을 벌이는 걸 보니 니가 심심한 모양이구나.'라며 구박을 하셨으나, 딸내미의 SOS에 옆에서 부지런히 도와주셨습니다. 간간이 '이게 정말 비누가 되긴 하는 거냐?'고 초를 치셨지만.--;;
비누가 되는 원리는 매우 간단한 것으로 오일이 염기(가성소다나 양잿물)를 만나면 비누와 글리세린이 된다는 겁니다. 즉, 오일에 적정한 양의 가성소다를 넣기만 하면 어떤 오일도 비누가 됩니다. 비누화 값은 인터넷을 뒤져보면 찾을 수 있고 요즘은 아예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참고 - 매운콩의 가성소다 계산기
집에서 만드는 CP비누는 비누화 과정의 부산물인 글리세린이 그대로 들어있어서 보습에 좋은 비누가 됩니다. 시중에서 파는 비누는 글리세린을 따로 빼서 화장품 재료로 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세정력은 좋아도 피부는 건조하게 하는 거지요.
아무튼, 대학 때 화학실험을 끝으로 해보지 않은 화학 반응에 두근두근하며 만들어본 레이식 쌀겨(미강) 비누 만들기 후기입니다.
만드는 법 자체는 간단합니다만 제가 처음 만들다 보니 뜻하지 않게 낭패를 본 부분도 있고 그러네요.
먼저 가성소다는 강알칼리라서 취급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절대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되고, 물에 가성소다를 넣어야지 가성소다에 물을 부으면 작은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물에 넣었을 때 녹이는 과정에서 온도가 순식간에 80도 가까이 오르고 연기가 나기도 하는데, 이 연기는 마시면 안 좋습니다. (뭐, 사실 맨살에 닿는다고 바로 피부가 녹아들거나 연기 좀 마신다고 기절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가성소다가 피부의 수분을 흡수해가서 따끔거리고, 가렵고 부어오르거나 단백질을 녹이기 때문에 좀 미끄덩거리거나, 연기를 맡으면 목구멍과 코에 자극이 되고, 가래가 끓고 하는 정도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가성소다가 맨살에 닿으면 바로 물에 씻으면 됩니다.) 아무튼, 가성소다를 물에 넣고 투명하게 녹을 때까지 잘 저어서 식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잘 안 식습니다. 해서 중탕하듯 찬물에 그릇을 넣고 식히는 게 빠릅니다.
비누 만들기 사이트에서 보면 물은 증류수를 사용하라고 하지만, 수돗물로 한다고 해서 안될 것은 없습니다. 가성소다가 녹기만 하면 되니까요. 좋은 비누를 만들기 위해 녹차 우린 물이나, 한약재 달인 물을 쓰기도 하고, 우유를 섞기도 하는데 불순물 좀 들었다고 수돗물이 안 될 이유가 없겠지요. 저는 집에서 먹는 생수를 썼습니다만.
가성소다 녹인 물을 식히는 동안 오일을 준비합니다. 오일류는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중에 올리브 오일이 제일 만만해서 시도했습니다. 마침 집에 선물로 받은 게 한 병 남아있어서 (무려 엑스트라 버진) 그걸 썼습니다. 올리브 오일은 보습에 좋은데, 잘 물러지고 거품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해서 코코넛 오일과 팜유를 넣었습니다. 코코넛 오일은 세정력이 좋고, 거품을 잘 나게 하고, 팜유는 비누를 단단하게 하고, 거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고 합니다. 단, 세정력이 좋아서 전체 중량의 30% 이상은 넣지 말라고 하더군요. 보통 건성용 비누에 13~5%, 지성용 비누에 20% 정도 넣는다고 합니다. 저는 대충 14% 정도로 계산했습니다. 이거저거 다 귀찮거나 다른 오일을 살 생각이 없으면 올리브 오일 100% 비누를 만들어도 됩니다. 그리고 에센셜 오일을 넣어주기도 하는데, 초보자인 제가 도전하기엔 그 효능도 잘 모르겠고, 비싸기도 하고 해서 관뒀습니다. 그러나 비누가 완성된 단계에서 약간 후회가…….; 그건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팜유나 코코넛 오일은 상온(20℃)에서 고체 상태인 경우가 있으니 약한 불로 오일을 데워줍니다. (그릇에 따라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가스레인지에 약한 불로 데우거나) 저는 오일 온도까지 재지는 않지만, 가성소다 녹인 물과 비슷한 온도로 맞추라고들 합니다. 저처럼 대충해도 비누가 만들어지기는 하니까 굳이 온도계를 2개 쓸 필요는 없을 듯;
가성소다 녹인 물과 오일을 섞어서 저어줄 때 저는 처음엔 주걱으로 대강대강 저었는데, 정말 열 나절 저어야 트레이스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불쌍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더니
아버지 : 그거 얼마나 저어야 하는데?
나 : 1시간은 저어야 한데.
아버지 : 정말로 한 시간 저을 거냐?
나 : …. 도*비 방망이로 하면 10분이면 끝나는데….
아버지 : 그럼, 도*비 방망이로 돌리고 10분 안에 끝내자.
라고 하시며 바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ㅡㅜ 흑, 그거 매일 아침 아버지 콩 물 갈 때 쓰시는 건데, 선뜻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주걱으로 섞다가 핸드블렌더로 섞다가 번갈아가며 젓는데, 정말 핸드블렌더의 힘은 대단하더이다. 제가 저을 땐 어떤 기미도 안 보이더니 순식간에 점도가 생기더군요. 거품도 좀 나고 3분 이상 돌리면 모터가 과열돼서 주걱으로 사이사이 좀 저어주고 했더니 정말 10분 만에 걸쭉한 트레이스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어떻게 판단하냐면 주걱으로 떠서 떨어뜨리면 표면에 자국이 남는 걸로 트레이스 상태가 됐다고 보는 겁니다만, 죽이나 풀 같은 상태라고 판단되면 이미 비누화 된 겁니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 미리 준비한 1000ml 우유 곽에 부어주는데, 아뿔싸! 둥그런 이남박을 그냥 부었더니 흘리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그냥 상자 같은 넓은 데 부었으면 되었을 걸 입구가 좁은 우유 곽 같은데 부으려니 그게 잘 될 리가 없지요. 다음에 또 만들 일이 있다면 이 부분에서 개선을.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우유 곽 두 개에 부어놓고 굳히기에 들어갔는데, 그때도 뜨끈뜨끈 비누화 반응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에션셜 오일이나 프레그런스 오일을 넣었더라면 이라고 후회한 건 바로 이때였는데, 향기가 참;;; 싸구려 빨랫비누 냄새가 나더군요. 향이야 어차피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다 날아간다고 들어서 아예 시도하지 않았는데, 지금 심정은 정말 그 향이 다 날아간다면 좋겠다…입니다. 아버지는 향을 맡아보시고는 그거 너 혼자 다 써라~ 고 하시고… ㅡㅜ 정말 4~6주 후에도 이런 향이라면 쓰는 게 망설여질 거 같아서 걱정입니다.
비누를 숙성시키는 건 pH 도를 적정선으로 낮추기 위함인데, 비누화 과정은 틀에 부은 뒤에도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숙성과정이 길수록 부드러운 비누가 된다고 합니다. 단, 비누가 산패할 수 있기 때문에 보관에 신경을 써야겠지만요. (* 비누의 산패를 방지하기 위해 항산화제를 넣어주기도 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게 포도씨유, 비타민 E, 자몽씨유 등입니다. 최소 전체 중량의 0.5% 이상.)
처음 만들어보는 비누라 사진 같은 걸 찍을 여유도 없이 만들었는데,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정도. 정리하는데 30분 정도 걸렸네요. 일단 비누 색은 옅은 노랑색(빨랫비누 색 OTL)이고 향도 싸구려 빨랫비누 냄새지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베이스 오일로 사용한 만큼 고급비누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숙성 기간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다음엔 사용해보고 사용기를 올리도록 하지요.
* 비누 자른 후 사진.
비누가 되는 원리는 매우 간단한 것으로 오일이 염기(가성소다나 양잿물)를 만나면 비누와 글리세린이 된다는 겁니다. 즉, 오일에 적정한 양의 가성소다를 넣기만 하면 어떤 오일도 비누가 됩니다. 비누화 값은 인터넷을 뒤져보면 찾을 수 있고 요즘은 아예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참고 - 매운콩의 가성소다 계산기
집에서 만드는 CP비누는 비누화 과정의 부산물인 글리세린이 그대로 들어있어서 보습에 좋은 비누가 됩니다. 시중에서 파는 비누는 글리세린을 따로 빼서 화장품 재료로 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세정력은 좋아도 피부는 건조하게 하는 거지요.
아무튼, 대학 때 화학실험을 끝으로 해보지 않은 화학 반응에 두근두근하며 만들어본 레이식 쌀겨(미강) 비누 만들기 후기입니다.
* 재료
오일류 : 올리브 오일 1L(약 900g), 팜유 175g, 코코넛 오일 175g -> 오일 총량 1250g
가성소다 : 169g (5% 에누리), 물 : 446g (가성소다/38%)
첨가물 : 미강, 넣고 싶은 만큼; (전체 중량의 5%를 넘기지 말라고도 하는데, 비누가 되기만 하면 됨)
* 도구
주방 저울, 오일을 섞을 그릇, 가성소다를 물에 풀 그릇, 주걱, 핸드블렌더, 온도계, 비닐장갑
(용기는 가성소다와 반응하는 알루미늄이나 철 소재가 아니면 됨. 유리,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등등)
* 만드는 순서
1. 저울로 계량한 가성소다를 준비한 물에 넣고 녹인다.
2. 계량한 오일을 준비한 그릇에 넣고 섞는다.
3. 가성소다 녹인 물이 온도가 40℃~45℃ 정도로 떨어지면, 데운 오일과 섞고 저어준다. 저으면서 첨가제를 넣기도 한다. (트레이스 상태가 된 후 넣으라는데, 그렇게 하면 쌀겨는 골고루 섞이지 않을 수 있다.)
4. 저어주다가 죽 같은 상태로 걸쭉하게 되면 트레이스 상태가 된 것이다. 틀에 붓고 하루나 이틀 정도 보온 상태에서 굳히고 웬만큼 굳은 것 같으면 틀에서 떼어내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통풍 잘 되는 그늘에서 4주~6주 정도 숙성시킨다.
* 재료비
팜유 1L(2,700원), 코코넛 오일 1L(3,200원), 가성소다 3kg(3,000원), 온도계(100℃ 알코올 온도계 1,800원), pH 테스트 페이퍼 (4,000원) - 케이크 솝
전자저울 - 인터파크에서 3만 원. 최소 1g 단위 최대 2kg 측정
미강 - 마트에서 쌀을 즉석 도정해서 파는 곳에서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그냥 주셨음. (옥션에서 찾아보면 몇천 원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미강을 살 수 있음.)
나머지는 집에 있는 것 이용.
오일류 : 올리브 오일 1L(약 900g), 팜유 175g, 코코넛 오일 175g -> 오일 총량 1250g
가성소다 : 169g (5% 에누리), 물 : 446g (가성소다/38%)
첨가물 : 미강, 넣고 싶은 만큼; (전체 중량의 5%를 넘기지 말라고도 하는데, 비누가 되기만 하면 됨)
* 도구
주방 저울, 오일을 섞을 그릇, 가성소다를 물에 풀 그릇, 주걱, 핸드블렌더, 온도계, 비닐장갑
(용기는 가성소다와 반응하는 알루미늄이나 철 소재가 아니면 됨. 유리,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등등)
* 만드는 순서
1. 저울로 계량한 가성소다를 준비한 물에 넣고 녹인다.
2. 계량한 오일을 준비한 그릇에 넣고 섞는다.
3. 가성소다 녹인 물이 온도가 40℃~45℃ 정도로 떨어지면, 데운 오일과 섞고 저어준다. 저으면서 첨가제를 넣기도 한다. (트레이스 상태가 된 후 넣으라는데, 그렇게 하면 쌀겨는 골고루 섞이지 않을 수 있다.)
4. 저어주다가 죽 같은 상태로 걸쭉하게 되면 트레이스 상태가 된 것이다. 틀에 붓고 하루나 이틀 정도 보온 상태에서 굳히고 웬만큼 굳은 것 같으면 틀에서 떼어내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통풍 잘 되는 그늘에서 4주~6주 정도 숙성시킨다.
* 재료비
팜유 1L(2,700원), 코코넛 오일 1L(3,200원), 가성소다 3kg(3,000원), 온도계(100℃ 알코올 온도계 1,800원), pH 테스트 페이퍼 (4,000원) - 케이크 솝
전자저울 - 인터파크에서 3만 원. 최소 1g 단위 최대 2kg 측정
미강 - 마트에서 쌀을 즉석 도정해서 파는 곳에서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그냥 주셨음. (옥션에서 찾아보면 몇천 원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미강을 살 수 있음.)
나머지는 집에 있는 것 이용.
만드는 법 자체는 간단합니다만 제가 처음 만들다 보니 뜻하지 않게 낭패를 본 부분도 있고 그러네요.
먼저 가성소다는 강알칼리라서 취급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절대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되고, 물에 가성소다를 넣어야지 가성소다에 물을 부으면 작은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물에 넣었을 때 녹이는 과정에서 온도가 순식간에 80도 가까이 오르고 연기가 나기도 하는데, 이 연기는 마시면 안 좋습니다. (뭐, 사실 맨살에 닿는다고 바로 피부가 녹아들거나 연기 좀 마신다고 기절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가성소다가 피부의 수분을 흡수해가서 따끔거리고, 가렵고 부어오르거나 단백질을 녹이기 때문에 좀 미끄덩거리거나, 연기를 맡으면 목구멍과 코에 자극이 되고, 가래가 끓고 하는 정도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가성소다가 맨살에 닿으면 바로 물에 씻으면 됩니다.) 아무튼, 가성소다를 물에 넣고 투명하게 녹을 때까지 잘 저어서 식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잘 안 식습니다. 해서 중탕하듯 찬물에 그릇을 넣고 식히는 게 빠릅니다.
비누 만들기 사이트에서 보면 물은 증류수를 사용하라고 하지만, 수돗물로 한다고 해서 안될 것은 없습니다. 가성소다가 녹기만 하면 되니까요. 좋은 비누를 만들기 위해 녹차 우린 물이나, 한약재 달인 물을 쓰기도 하고, 우유를 섞기도 하는데 불순물 좀 들었다고 수돗물이 안 될 이유가 없겠지요. 저는 집에서 먹는 생수를 썼습니다만.
가성소다 녹인 물을 식히는 동안 오일을 준비합니다. 오일류는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중에 올리브 오일이 제일 만만해서 시도했습니다. 마침 집에 선물로 받은 게 한 병 남아있어서 (무려 엑스트라 버진) 그걸 썼습니다. 올리브 오일은 보습에 좋은데, 잘 물러지고 거품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해서 코코넛 오일과 팜유를 넣었습니다. 코코넛 오일은 세정력이 좋고, 거품을 잘 나게 하고, 팜유는 비누를 단단하게 하고, 거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고 합니다. 단, 세정력이 좋아서 전체 중량의 30% 이상은 넣지 말라고 하더군요. 보통 건성용 비누에 13~5%, 지성용 비누에 20% 정도 넣는다고 합니다. 저는 대충 14% 정도로 계산했습니다. 이거저거 다 귀찮거나 다른 오일을 살 생각이 없으면 올리브 오일 100% 비누를 만들어도 됩니다. 그리고 에센셜 오일을 넣어주기도 하는데, 초보자인 제가 도전하기엔 그 효능도 잘 모르겠고, 비싸기도 하고 해서 관뒀습니다. 그러나 비누가 완성된 단계에서 약간 후회가…….; 그건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팜유나 코코넛 오일은 상온(20℃)에서 고체 상태인 경우가 있으니 약한 불로 오일을 데워줍니다. (그릇에 따라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가스레인지에 약한 불로 데우거나) 저는 오일 온도까지 재지는 않지만, 가성소다 녹인 물과 비슷한 온도로 맞추라고들 합니다. 저처럼 대충해도 비누가 만들어지기는 하니까 굳이 온도계를 2개 쓸 필요는 없을 듯;
가성소다 녹인 물과 오일을 섞어서 저어줄 때 저는 처음엔 주걱으로 대강대강 저었는데, 정말 열 나절 저어야 트레이스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불쌍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더니
아버지 : 그거 얼마나 저어야 하는데?
나 : 1시간은 저어야 한데.
아버지 : 정말로 한 시간 저을 거냐?
나 : …. 도*비 방망이로 하면 10분이면 끝나는데….
아버지 : 그럼, 도*비 방망이로 돌리고 10분 안에 끝내자.
라고 하시며 바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ㅡㅜ 흑, 그거 매일 아침 아버지 콩 물 갈 때 쓰시는 건데, 선뜻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주걱으로 섞다가 핸드블렌더로 섞다가 번갈아가며 젓는데, 정말 핸드블렌더의 힘은 대단하더이다. 제가 저을 땐 어떤 기미도 안 보이더니 순식간에 점도가 생기더군요. 거품도 좀 나고 3분 이상 돌리면 모터가 과열돼서 주걱으로 사이사이 좀 저어주고 했더니 정말 10분 만에 걸쭉한 트레이스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어떻게 판단하냐면 주걱으로 떠서 떨어뜨리면 표면에 자국이 남는 걸로 트레이스 상태가 됐다고 보는 겁니다만, 죽이나 풀 같은 상태라고 판단되면 이미 비누화 된 겁니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 미리 준비한 1000ml 우유 곽에 부어주는데, 아뿔싸! 둥그런 이남박을 그냥 부었더니 흘리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그냥 상자 같은 넓은 데 부었으면 되었을 걸 입구가 좁은 우유 곽 같은데 부으려니 그게 잘 될 리가 없지요. 다음에 또 만들 일이 있다면 이 부분에서 개선을.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우유 곽 두 개에 부어놓고 굳히기에 들어갔는데, 그때도 뜨끈뜨끈 비누화 반응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에션셜 오일이나 프레그런스 오일을 넣었더라면 이라고 후회한 건 바로 이때였는데, 향기가 참;;; 싸구려 빨랫비누 냄새가 나더군요. 향이야 어차피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다 날아간다고 들어서 아예 시도하지 않았는데, 지금 심정은 정말 그 향이 다 날아간다면 좋겠다…입니다. 아버지는 향을 맡아보시고는 그거 너 혼자 다 써라~ 고 하시고… ㅡㅜ 정말 4~6주 후에도 이런 향이라면 쓰는 게 망설여질 거 같아서 걱정입니다.
비누를 숙성시키는 건 pH 도를 적정선으로 낮추기 위함인데, 비누화 과정은 틀에 부은 뒤에도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숙성과정이 길수록 부드러운 비누가 된다고 합니다. 단, 비누가 산패할 수 있기 때문에 보관에 신경을 써야겠지만요. (* 비누의 산패를 방지하기 위해 항산화제를 넣어주기도 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게 포도씨유, 비타민 E, 자몽씨유 등입니다. 최소 전체 중량의 0.5% 이상.)
처음 만들어보는 비누라 사진 같은 걸 찍을 여유도 없이 만들었는데,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정도. 정리하는데 30분 정도 걸렸네요. 일단 비누 색은 옅은 노랑색(빨랫비누 색 OTL)이고 향도 싸구려 빨랫비누 냄새지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베이스 오일로 사용한 만큼 고급비누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숙성 기간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다음엔 사용해보고 사용기를 올리도록 하지요.
* 비누 자른 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