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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라만차 (Man of La Mancha)

일   시 : 2012. 06. 19 ~ 2012. 10. 07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2012. 07. 01 (일) 18:30
연   출 : 데이비드 스완,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세르반테스/돈키호테 - 서범석, 알돈자 - 이혜경, 산초 - 이훈진, 도지사/여관주인 - 서영주, 닥터 까라스코 - 박인배, 신부 - 이영기
줄거리 :
배경은 스페인의 어느 지하감옥.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는 죄수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인다.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조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에 급기야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며 착각하게 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찾아 떠난다.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며 달려들지않나, 여관을 성이랍시고 찾아들어가 여종업원인 알돈자에게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지 않나, 여관주인을 성주라고 착각하고 기사작위를 그에게 수여 받으며 세숫대야를 황금투구라고 우기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 알돈자는 돈키호테를 미친 노인이라고 무시하지만 그의 진심에 감동받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돈키호테 덕분에 알돈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만 억센 노새끌이들에게 처참히 짓밟히고 만다. 다음날 엉망이 된 알돈자를 발견한 돈키호테는 여전히 아름다운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지만 절망에 빠진 알돈자는 자신은 숙녀도 아니며 더럽고 천한 거리의 여자일뿐이라고 울부짖는다. 알돈자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돈키호테 앞에 이번에는 거울의 기사들이 나타나 결투를 신청한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본 알론조는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가 아니라 그저 한 노인임을 깨닫고 쓰러지는데...[출처 > 플레이DB]

- 연극 돈키호테를 보면서도 생각한 건데, 나는 이 작품의 완역본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린이 명작동화 수준의 "동화" 혹은 어린이 명작극장에서 보여준 "만화" 정도의 사전 지식만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언젠가 꼭 원작을 완역본으로 읽어봐야겠다. 이게 하나의 원작으로 만든 건가 싶게 연극 돈키호테와 뮤지컬 돈키호테는 사뭇 달라서 과연 원작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연극 돈키호테의 주제가 "꿈"이라면, 뮤지컬 돈키호테의 주제는 "희망"이더라.

- 작년 가을 희망 강북 콘서트에서 '제 꿈은 돈키호테입니다.'를 간절히 소망하시던 범사마께서 드디어 소원성취하셨는데, 아주 그냥 진짜로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시더라. 특히 세르반테스가 소개하는 돈키호테는 깡마르고 비리비리한 늙은이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난다고 묘사되는데, 범사마는 안광이 형형하다기보다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귀여운 기사님이랄까. 내가 세르반테스의 설명을 듣고 상상한 돈키호테는 성마르고 꼬장꼬장한 늙은이, 안광이 형형하여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근처에 가면 괜한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 게 귀찮아서. 기본적으로 친근하지 않은 꼬챙이 같은 늙은 기사를 상상하게 되는데, 범사마의 돈키호테는 상당히 유하고 귀엽고 친근한 할아버지 기사였다. 온몸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빛을 마구 뿌리고 계시더라.
한마디로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는 즐겁고 유쾌한 늙은 기사님. 그렇다고 이 극이 마냥 해맑은 돈키호테를 그려내는 극이 아님에도 범사마의 돈키호테는 암울한 후반부를 다 덮을 만큼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

-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이라는 넘버가 어떤 상황에서 불리는 노래인 줄 모르고 들었을 땐, 그냥 좋은 노래,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노래로만 들렸는데, 확실히 뮤지컬 넘버는 극에서 따로 떼어져 있을 때랑 극 안에 녹아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에 큰 차이가 있다. 수많은 겁쟁이를 향해 꺾이지 않는 신념과 용기를 눈앞에 들이밀어 보여주는 저 보잘것없이 작고 마른, 눈빛만 맑고 형형하게 빛나는 늙은 기사의 울림이 가슴을 치더라.

- 이 뮤지컬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알돈자 - 둘시네아이다. 알돈자가 돈키호테에 감화되는 부분이 이 극의 주제인 것 같으니 말이다.
언젠가 EBS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사람의 숫자가 셋이라고 한다. 먼저 뜻을 세운 한 명, 그리고 그 사람의 지지자가 한 명. 그런데, 이렇게 둘만으로는 나머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동조하는 세번째 사람이 움직이면 그제야 비로소 움직이지 않던 다른 사람들이 같이 움직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알돈자는 저 세번째 동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만드는 방아쇠 같은 존재.
이혜경 씨는 지난 시즌에도 알돈자 역을 하셨었는데, 거칠고 사나운 길고양이같은 알돈자를 연기하셨다. 그런데, 알돈자의 넘버들은 고음역대가 많아서 그 부분이 좀 어우러지기 힘들다고 할까. 대사를 할 땐 쌍욕을 지껄이고 퉤! 하고 침뱉는 여관의 하녀인데, 노래를 하면 고운 성악 발성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신세를 한탄하니 그 갭이 좀 있더라. 전에 김선영 씨가 인터뷰에서 노래의 음역이 너무 높아서 노래 때문에 연기를 포기하기 싫어서, 노래의 음을 낮추고 연기를 살렸다는 걸 봤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 돈키호테의 영원한 동반자, 지지자 산초 역의 이훈진 씨는 동글동글한 외모에 '주인님이 그냥 좋아요~'라며 순정을 다바치는 역에 어울리는 깨알같은 귀여움을 선사해주었다. 그런데, 산초가 이렇게 소년이어도 좋은 걸까...하는 생각은 들더라. 물론 귀엽고 깜찍한 산초도 좋았지만, 원래 산초는 그렇게 순수한 캐릭터가 아니지 않았나? 물론 돈키호테를 따라 모험을 떠날 만큼 어딘가 어리숙하지만, 적당히 늙은이 비위나 좀 맞춰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싶은 속내도 가지고 있는 속물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뮤지컬에서 산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돈키호테 바라기였다.

- 살아가면서 점점 꿈을 잊고 산다. 꿈을 실현시키려면 부딪혀야 하는 수많은 난관들,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게 어려워서, 혹은 귀찮아서 그렇게 꿈을 외면하고 산다. 용기가 필요하다.

+ 이날 무대 소품 사고가 대박으로 났더랬다. 2막의 막바지 가장 중요한 장면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소품으로 엉성하게 만든 침대에 범동키가 눕고 뒤로 체중을 싣는 순간 무게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침대 상판이 그대로 뒤로 넘어간 것이다. 그게 정말 너무 웃겨서 관객들이 다 웃고, 그래도 무대 위 배우 분들이 침착하게 다시 침대를 셋팅하고, 범사마가 웃음기 없이 침대에 눕고, 관객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극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뒤로도 침대에 누워서 대사를 하는 장면이 계속되었는데, 침대를 볼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와서 혼났다. 극에서 제일 중요한 감정선이 이어져야 하는 부분이라 그 감정선이 깨진 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덕후 한 마리는 속으로 '앗싸! 레어템~'을 외쳤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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