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Mozart!)

일   시 : 2014. 06. 11 ~ 2014. 08. 03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극일 : 2014. 06. 20(금) 20:00
연   출 : 아드리안 오스몬드,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캐스트 : 볼프강 모차르트 - 박은태, 콘스탄체 베버 - 김소향, 콜로레도 대주교 - 민영기, 레오폴트 모차르트 - 박철호,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 신영숙, 난넬 모차르트 - 배해선, 체칠리아 베버 - 이경미, 쉬카네더 - 박형규, 아마데 - 윤펠릭스 외

* 한 줄 요약 - 2막은 배우도 관객도 감정 노동

- 농담이 현실로. 진짜 이 기세로 은촤 전관 찍을 거같다. OTL

이날 사인회도 있던 날이고 해서 그랬는가, 암전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들뜬 박수 소리가 저 뒤쪽 3층에서 들려와서 좀 웃었다. 학생 단관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단관으로 본 오페라 마술피리가 내 첫 오페라였는데, 그 때 생각도 좀 나고. 그때 정말 어리바리 선생님한테 오페라 보러갈 때 뭐 입고 가야하냐고 물어보고ㅋㅋㅋㅋㅋ 그때 선생님이 니들이 무슨 드레스라도 챙겨 입고 갈거냐며, 그냥 교복입고 오라고 그래서 괜히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세종이었구나. 그리운 추억이다. (아, 후기에 왠 사설이 이리도 긴지;;)

- 17일 후기에도 썼지만, 1막의 은촤는 프리뷰 때와 비교하면 살짝 어리고 천방지축스러운 느낌을 좀 더 살렸다. 그러면서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남매 케미를 살리더라. 사실 빨간 코트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난넬과의 형제애가 많이 아쉬웠는데, 그걸 은촤가 사소한 눈빛 교환, 손짓으로 하는 소소한 소통같은 걸로 살려내서 참 좋더라. 그리고 마냥 친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의견 차이가 나면 투닥투닥 다투기도 했을 거라는 평범한 남매의 모습도 보여주고.

오늘도 나는 나는 음악이 참 좋았는데, 진짜 사연으로 들어와서 난난음악이 이렇게까지 좋아질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서, OST가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아마데와 볼프강의 첫 대면이면서, 앞으로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음악이 주는 기쁨에 취해 내가 곧 음악이라고 그 안에 푹 빠져 행복해하는 볼프강을 바라보는 건, 같이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릿하다. (그리고 은촤가 워낙 손가락이 길쭉하고 예쁘고 그 움직임이 나긋나긋해서 아마데에게 악상을 던져주는 동작도 초반의 어색함이 많이 사라지고 그냥 홀린 듯이 그 손짓만 쳐다보게된다. 손팻치;;)

하여간 저렇게 내가 곧 음악이라며 신나서 작곡해서 들고간 곡이었으니 '성스럽고 위대한 내 음악~'이라며 자랑이 늘어지는데, 무서운 건 이게 진심이고, 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거다. 앞에 나는 나는 음악에서 무게감이 생기니까, 이 장면에서 모차르트의 분노에 상당한 개연성이 생겼는데, 전에는 '모차르트를 찾아라'에서 볼프강이 그져 철없는 반항 청소년으로 느껴졌는데, 배우가 사연씩이나 하다보니, 그리고 연출의 방향이 다르다보니 이제야 음악가로서의 볼프강이 보인다.

대주교의 권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깔아뭉개는 볼프강에 분노한 대주교가 '저 방정맞은 녀석을 데려가라!' 호통칠 때, 아버지가 쩔쩔매면서 그게 다 오해십니다 하는 뒤로 너~무나 해맑게 '진심입니다~'하는 볼프강. 그래 진심이라 무섭다니까. 그래서 자신의 악보가 구겨지고 버려질 때 볼프강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분노를 터트린다. 자신을 방정맞은 놈이니 뭐니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의 음악을 쓰레기 취급하는 데는 참을 수가 없었던 거다. 악보의 쉼표 하나 까지 완벽하다고 했던 그 음악에서, 당신에게는 그 쉼표 조차 아깝다고 버럭대는 볼프강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음악가로서의 자존심을 짖밟힌 볼프강의 마음을 레오폴트는 헤아려주지도 않고, 그냥 대주교의 권위에 복종하라고만 한다. 소시민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어쩌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을. 

하여간 재/삼연을 볼 때도 그냥 건방진 반항아로만 보였던 이 장면에서 난 사연을 통해 처음으로 음악가 볼프강, "나는 천박한 놈이지만, 내 음악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그 모차르트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 공연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좋아지는 것 중에 하난 이렇게 배우가 배역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면서 일체화되는 걸 지켜볼 때. 아버지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사소한 몸짓, 대사톤 이런 걸 섬세하게 조정해 나가면서 그 안에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올리는 걸 지켜보는 게 좋다. 그래서 자꾸 공연장으로 발길이 가는 거지만;

- 황금별 이후에 빈으로 떠나겠다는 볼프강과 아버지와의 대립에서 레오폴트 옆에 서는 아마데를 이해할 수 없다고 전에 계속 투덜거렸는데, 이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볼프강이 아마데를 또 다른 "나"라고 인식했더랬는데, 이 사건(?)을 시작으로 볼프강이 드디어 아마데가 그냥 단순히 또 다른 자아가 아닌, 자신과 대립되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된 계기라고 할까. 여기서 아버지를 열심히 설득하려다 실패하고 뒤돌아 서기 직전 은촤가 아마데를 한 번 쳐다보고는 뒤돌아서는데, 그게 꼭 따라오던지 말던지 네 맘대로 해, 난 여길 떠날 거야! 라는 거 같더라. 그제서야 뭔가가 실타래 풀리듯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아마데와 부딪힘이 잦아지기 시작한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플라토 공원에서 '똥구린내 백작' 다음에 아주 스치듯 살짝 나오는데, 아르코 백작을 신나게 물리치고 의기양양해 하는 볼프강 앞에 아마데가 나타나서 뚱하니 쳐다본다가 뒤에서 베버부인이 볼프강을 부르자, 볼프강의 주의가 그리고 향하고, 아마데는 총총히 무대밖으로 사라진다. 어디를 가던 항상 붙어다니던 그 시절이 끝난 것이다. 도대체 그런 사소한 장면을 숨겨놓고 관객더러 캐치를 하라는 아드리안은 좋은 연출가다. OTL

- 이렇게 볼프강과 아마데가 처음엔 하나였다가 점점 분리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볼프강이 아마데를 자신을 짓누르는 "음악 신동"이라고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내 운명 피하고 싶어'인 것이다. 귀에다 사이다 한 사발을 부은 것 같은 청량하고도 날카로운 "난 자유~다~~~~~~~~~~~~~~~~~" 이후로 등장한 아마데를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이 그것을 증명한다. 넌 결코 내 편이 아니잖아....라는, 그러니 어린 시절의 그 꼬마 아이는 이제 필요없다고, 떠나버리라고 하지만, 볼프강이 간과한 것이 아마데는 자신의 천재성이기도 하지만, '신동'인 채로 남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집념이 불러낸 주박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 지점이 재/삼연에서 아마데와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떨쳐버리고 싶은 천재성, 음악 상자에 붙들려 결국 아마데의 공격을 받게된 볼프강은 이제야 처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 운명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피하는 길을 선택한다. 나를 얽매는 것이 자신의 재능이라는 덫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일견 탈출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일막의 엔딩은 미장센적으로 참 아름답고 시원스럽게 보이지만, 붉은 조명을 사용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황금별 조명이나 떠오르는 새벽빛 같은 그런 조명이었다면 훨씬 희망차게 보였을 거 같다는 이야기)

-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회피를 선택했기에, 볼프강은 아마데와 계속 공존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러다 서서히 아마데의 지배력이 커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아마데 역시 볼프강이 자신을 크게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면 그를 괴롭힐 이유가 없었을 거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음악"뿐이니까. 그러니까 아마데에게 중요한 것은 볼프강의 행복이나 사랑, 돈과 명예, 부와 명성 이런 게 아니다. 오로지 음악만을 향하는 그 순수한 열망이 "순수해서" 더 잔인한 이유다.
아마데에게 볼프강이 빈에서 성공한 것,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데, 인간 볼프강은 그로 인해 좌절하고 쓰러진다. 그리고 그런 볼프강을 아마데는 사정없이 몰아붙인다. 어리석고 멍청한 얄팍한 놈이라고. 이런 아마데의 공격에, 이제까지 자신이 곧 음악이며, 음악이 자신이라고 굳게 믿었던 볼프강이 무너진다.

- 그렇게 이미 무너진 볼프강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제대로 크리티컬 히트. 끝내 용서받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는 볼프강에게 레퀴엠 의뢰와 마술피리 의뢰가 같이 들어온다. 마술피리를 작곡하면서 보여주는 은촤의 연기가 정말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가슴이 아프다. 자신의 음악의 아름다움에 취해 울면서 웃는 그 얼굴에 고통과 쾌락, 슬픔과 행복이 같이 떠오른다.

- 이날의 쉬운 길은 잘못된 길은 17일에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은촤 민주교 아주 팽팽한 기싸움이며 성량 대결을 제대로 펼쳐보여줘서 아주 귀호강. 빈사 상태로 간신히 간신히 버텨내다가 눈빛만 형형하게 빛을 내며 내던진 "후회는 없어~"를 오케스트라 끝난 뒤까지 밀어붙이던 은촤에게 브라보~

그리고는 곧장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그 앞에 아마데가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한다. 대주교와의 싸움에서는 어떻게든 최후의 한방울 까지 짜내서 버티고 버텨 승리할 수 있었지만, 볼프강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도 이미 기력이 소진한 다음인데야, 더이상 아마데에게 거스를 수 없는 상태. 그저 빼앗기고 빼앗긴다. 그의 모든 영육간의 에너지와 영혼까지. 그 뒤에서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앙상블의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폭군과도 같은 아마데의 횡포와 맞물려서 볼프강을 압박한다. 저대로 질식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흡이 가빠지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말라가는 은촤를 바라보는 건 진짜 굉장한 강도의 감정 노동이다. ㅠ.ㅠ

- 끝내 자신의 행복을 버려가며 신이 주신 운명을 지켜낸 볼프강은 그런 자신에게 남은 건 음악 뿐이라고 눈물을 흘린다. 그저 행복하길 바란 것 뿐인데, 자신에게 재능을 주신 신께선 그것 말고 다른 건 무엇 하나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마지막 외침은 자조였을까, 원망이었을까.

아마데를 꼭 끌어안은 볼프강이 그래서 더 슬프고, 피날레의 아마데와 레오폴트의 랑데뷰는 두배로 더 슬프다. 어디에도 안길 곳 없는 볼프강은 어쩌란 말인지. ㅠ.ㅠ 생각할 수록 그 비참한 죽음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다.

- 아우, 난 모차르트 빠순이 주제에 왜이렇게 본격 모차르트 불쌍하게 만드는 뮤지컬에 빠져서 이모양인거야. ㅠ.ㅠ
이게 다 은촤 때문이닷!!!!! (책임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