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의 오랜 수수께끼 중의 하나가 있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논리적으로 돌고 도는 이 질문에 대해 과학은 그래도 알이 먼저라고 답한다.
가끔 나의 덕질에도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좋아하니까 취향이 따라가는 건지, 취향에 맞으니까 좋아하게 된건지. 아래 인터뷰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엘리자벳을 보면서 트리플 캐스팅된 삼케니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배역을 만들어갔다는 게 느껴졌는데, 그 중 은케니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징 중 하나가 반복성이었다. 백년동안 계속되는 재판에 미쳐버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뫼비우스의 띠,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계속될 루케니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애초에 은태가 잡은 루케니라는 캐릭터가 그랬던 모양이다.
여기서 의문은 그거지. 난 그렇게 해석한 은태의 루케니가 정말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가열차게 회전문을 돌았지만, 그게 내 취향의 루케니라서인지, 은태가 만들어낸 루케니라서인지....하는 의문.

박은태 "부족함 채워가는 재미, 그 맛에 살죠"  | TV데일리, 2013. 07. 10 中

- 박은태를 사로잡은 루케니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루케니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얘기하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원작의 내용이 정말 많이 빠졌어요. 독어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두 세배는 더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어요. 그걸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중요한 정보만 넣다 보니 많은 것이 빠지게 된 거죠. 아쉬워요. 루케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판관에게 얘기를 하고, 객석은 배심원이 되죠. 그런데 극적인 효과를 따지기 위해 중간에 배심원에 대한 얘기가 없어졌죠. 그러다보니 드라마적인 얼개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죠. 하지만 뮤지컬 장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연출자의 선택이고 몫이니까 저는 루케니가 주인공이라는 마인드로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거죠. 한 신 한 신 정말 재미있어요."

-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루케니는 흔히 말해 사이코패스잖아요. 미친 사람인거죠. 자기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누군가를 죽여요. 상스럽고 저급한 인물이죠. 루케니 나름대로는 이상을 가지고 엘리자벳을 죽였겠지만 정말 생각 없이 사람을 죽인 거죠. 즉흥적이고 욱하고 에너지컬한 느낌이 강하죠. 그래서 저는 처음과 마지막이 가장 루케니스럽다고 생각해요. 이게 정말 루케니 얘기인 것 같아요. 물론 '밀크' 같은 곡도 좋지만, 처음 눈을 떠서 재판관에게 욕을 하고, 마지막에 다시 목을 맬 때 제일 매력 있어요. 루케니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거든요. 물론 그 사이에 춤추고 노래하는 식의 뮤지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드라마적으로 루케니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과감하게 칼로 찌르는 거죠.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 보니 그런 신에서 사이코패스를 표현하고 싶거든요.

-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연기하면서 희열을 느끼시나요?

"무대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희열을 느끼죠. 지저스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에요. 박은태라는 사람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무대에서 하잖아요. 그게 제일 재미있어요. 100년 동안 매일 밤마다 깼을 때,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요. 하지만 얘기를 하고 마지막에는 또 사람을 죽이잖아요. 목을 매는 것은 짜증이 나지만 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좋아서 내일을 기약하는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하니 재미있는 인물이 되더라고요. 항상 그렇게 표현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잠깐이지만 칼로 찌르기 전의 느낌이나 찌르고 나서의 미소 같은 것을 찾는 것이 재미있어요."

이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만 해도 은태가 해석한 지저스가 내가 마음속에 그려놓은 어떤 예수象과 굉장히 유사하고, 내 취향(이라는 말을 쓰려니 죄스럽지만;)의 그 어떤 것, 그러니까 이런 저런 게 보고싶다고 생각한 그런 것을 보여줬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볼 수 있었던 거라. 하기는 모차르트! 때도 그렇게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내 감성과 맞닿아있는 감성과 연기 노선 때문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런 배우를 만나게 된 게 어쩌면 나한테 행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헐, 이래서 본진인가? (새삼스레;;)

ps. 근데 인터뷰 말미에 내년에 올라온다는 햄릿에 스케줄때문에 못들어간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