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일   시 : 2013. 04. 26 ~ 2013. 06. 09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2013. 05. 17 (금) 14:00
음   악 : 앤드류 로이드 웨버, 대본 : 팀 라이스
연   출 : 이지나, 음악감독 : 김은영, 음악 수퍼바이져 - 정재일
캐스트 : 지저스 - 박은태, 유다 - 한지상, 막달라 마리아 - 정선아, 빌라도 - 김태한, 헤롯 - 김동현, 가야바 - 조유신, 안나스 - 우지원, 사제 - 이병현, 베드로 - 심정완, 시몬 - 김태훈, 가짜 선지자 - 심새인 외

- 내가 공연을 보면서 JCS만큼 자리에 구애받지 않은 공연이 있을까 싶다. 아무리 기다려도 좋은 자리는 나오지 않고, 아는 동생이 샤롯데 2층도 상당히 괜찮다며 적극 추천해줘서 첫 2층 데뷔(;).
공연의 감동은 좋은 자리에서 오는 것도 크다고 생각해서 이제까지 맨눈으로 배우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는 자리는 가본 적이 없었건만, 여러모로 JCS가 내 경험치를 높여주고있다. 그리고 실제로 가보니 샤롯데 2층은 오글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도전해볼 가치가 있더라. 생각보다 무대와 멀지 않은 거리, 시야도 트여있고, 1층 앞열에서 음향에 뭉개지던 앙상블 가사가 2층 2열에선 오히려 더 잘들리기도 했으니. 물론 1층 앞열에 자리가 있을 땐 주저없이 그리로 가겠지만, 1층 뒷자리(14열 이후)로 갈 바엔 차라리 2층 앞열로 가는게 나은 선택일 것 같다.
하여튼 2층이라도 잡아서 보기를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만큼 이날 공연도 상당히 좋았고 이 앞으로는 계속 더 좋아질 일만 남았구나 기대도 품게 한 공연이었다.

- 1층에서만 보다가 2층 올라오니까 확실히 무대의 휑함이 느껴진다. Overture에서 앙상블들이 튀어나와서 군무를 추는데 이렇게 비어보일 수가! 물론 배우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저 빈 무대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배우가 기댈 구석을 최소화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조명이다. 이 연출의 장기 중 하나인데, 여백의 미를 지나치게 추구한 무대에 조명을 최대한 활용해서 시공간을 나누고, 효과를 준다. 특히 JCS에서는 역광을 적절하게 잘 사용해서, 신비로운 느낌, 경건하고 거룩한 느낌을 잘 살렸다.

- 조명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지저스에게는 수직 조명이 자주 사용되는데, 하늘에서 비추는 후광 효과를 통해 성스러움을 강조한다. 다만, 지저스는 애시당초 신의 아들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데, 굳이 조명을 통해 그 신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JCS의 지저스는 신의 아들보다는 사람의 아들쪽이지 않았는가.
수직 조명의 나쁜 예 : 아무도 없다 @ Strange Thing, Mystifying
수직 조명의 좋은 예 : forever Amen! @ Simon Zealotes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조명은 역시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장면인데, 지저스를 찾아 달려가는 마리아의 발걸음을 따라 물결처럼 퍼지던 바닥 조명과 마리아의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던 따스한 오렌지 빛 후광 조명과 청명한 푸른 밤하늘. 기도하는 지저스를 두고 돌아서는 마리아의 뒤로 총총히 빛나던 별밤하늘이다.

가장 섬뜩했던 조명은 채찍신이 끝나고 십자가에 못밖으라고 군중들이 난리칠 때, 마치 핏물이 흘러내리는 듯 보였던 붉은 사선 무늬로 물들은 바닥 조명이었는데, 그 사선의 운동성으로 인해 진짜 무대 전체에 핏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조명은 십자가 씬. 수퍼스타 마지막에서 십자가를 향해 서슬퍼렇게 내려꽂히는 그 조명이 아니라, John 19:41가 흘러나오면서 후방에서 십자가를 향해 핀조명이 떨어지는데 그 빛으로 인해 무대 바닥에 거대한 십자가 그림자가 진다. 조용히 흔들리는 그 십자가 그림자는 이상하게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홀연한 느낌마저 주더라.

- 배우들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우선 한유다. 사실 JCS에서 유다는 정말 시작부터 쉽지 않다. 뭐, 어떤 배역은 쉽겠냐만은 유다 넘버 중 가장 어려운 곡을 시작하자마자 불러제껴야 한다는 거. 원래 오프닝이 가장 임팩트있는 법이라 어쩔 수 없는 거라지만, 이게 피겨로 치면 3-3 점프 같은 거라. 하여간 Heaven On Their Minds는 참 감탄할만큼 잘 불러줘서 좋았지만, 이후 고음 올릴 때 힘겨워하거나, 종종 피치가 떨어지는 등 성대의 피로도가 여실히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트리플 캐스팅이 무색한 이 2주간의 스케줄을 보라.


더블 캐스팅된 지저스가 저렇게 꼬박꼬박 번갈아 무대에 서는 것과 달리, 유다는 트리플 캐스팅임에도 마치 한유다 원캐에 김유다 얼터인 것 같은 스케줄이다. 부디 죽음의 주간에 살아남기를. 난 내일도 모레도 보러오니까;;

- 정마리아와 장마리아, 둘 다 좋고 잘하지만, 역시 나는 장마리아 쪽에 좀더 기운다. 정마리아도 참 잘하는데, 장마리아의 음색도 음색이거니와, 좀 더 지저스에 집중하는 느낌이랄지.
What's The Buzz에서 군중들이 자꾸만 매달리고 언제 뜻을 이루실거냐고 귀찮게 굴 때, 더이상 걱정하지 말라며 마리아가 끼어드는데, 여기서 정마리아와 장마리아가 다른 게, 정마리아는 지저스의 뒤쪽으로 빙 돌아서 이동을 하고, 장마리아는 군중과 지저스의 사이를 가르며 이 둘을 분리시켜서 좀 더 독점욕을 내보인다. 
Everything's Alright에서도 유다의 비난 이후 두 마리아가 보이는 태도가 다르다. 정마리아는 자신을 천한 여자라 비하한 유다까지 위로하는!(그것도 지저스보다 먼저!) 성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장마리아는 시선은 유다를 향했어도 마음은 지저스에게 집중하는 모습이라,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로 유다를 욕할 것 같은 마리아다. 
이후 2막에서 정마리아는 점점 더 성녀로서의 모습이 강해지면서 지저스의 체포 이후 와해된 사도들을 다시 하나로 묶고 일으켜 세우는 지도자의 모습마저 보인다. 장마리아는 그런 면에 사도들과 유대감 같은 게 옅고, 끝까지 지저스 하나만 바라보는 인상이 더 강하다. 

- 지현준 빌라도를 보고 난 다음이라 그런가 태한 빌라도는 뭘 해도 다 좋고, 동현 헤롯도 자기 색을 확실히 찾아서 좋았다. 제사장 삼인방도 내가 본 중에 이날 공연이 가장 좋았는데,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는지 커튼콜에서는 이제 환호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더라. 시몬은 여전히 별로였는데, 뒤에서 고음 서포트 하는 앙상블을 시몬 커버로 쓰는 게 어떨지. 베드로의 '난 몰라요~'가 근래 들은 것 중엔 개중 나아서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질러줬음 싶더라.

- 그리고 공연이 진행되면서 차곡차곡 감정이 쌓이고,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마치 파이처럼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이날의 은저스는 지난 수요일과 또 다른 감정을 보여주었다.
2막의 시작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은저스의 목소리엔 물기가 가득하다.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었으나, 아~무것도 모른채 공명심에 차있는 제자들을 보며 부질없다 한탄하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잊혀짐을 서글퍼한다. 지레 찔린 유다의 변명을 듣기 싫다 물리치고, 그 와중에 눈치 없는 제자들은 또 한 번 스승의 속을 긁어놓는다. 골치 아픈 일 때가 되면 알게되리~ 라니, 진짜 제자복도 없는 지저스. 그런 지저스를 또 한번 유다가 도발한다. 이 가여운 인간! 하지만 더 불쌍한 건 당신을 위해 희생양으로 선택된 나라고 주장하는 유다를 지저스는 진절머리난다는 듯 떨쳐낸다. 그냥 닥치고 네 일이나 하라고. 그 말에 절망한 유다는 그 발앞에 꿇어 엎드려 절규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거냐고. 지저스의 옷자락에 손도 못대고 자신을 외면하는 지저스를 애처롭게 바라보다 등돌려 떠나는 한유다. 그러나 그가 떠날 때 고집스럽게 외면한 지저스가 그 뒤에서 아련한 시선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걸 알았다면 그는 다시 돌아왔을까.
그리고는 유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아무도 곁에 없구나~' 하는데, 그럼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다른 제자들은 뭐가 되나요; 

이어지는 겟세마네. 이제와서 레전이니 뭐니 하는 것도 유난스럽지만, 정말 너무 좋았다. ㅠ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부르는 목소리에서부터 흐느낌이 느껴지더니, 전에 없이 이날은 시작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리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처연하게 시작된 노래는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한 순간 피눈물을 삼키 듯 울컥해서 나도 같이 울컥대고, 찢고 쳐서!!할 때의 처절함은 더 강렬해지고, 내 맘 변하기 전!에서 보여주는 단호함은 더 단단해졌다. 당신이 정해놓은 운명에 따르기는 따르겠으나, 하나 뿐인 당신 아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똑똑히 보시라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이날 가장 가슴에 남았던 유다의 죽음. 솔직히 유다의 죽음 장면에서 동어 반복만 계속되는 하다만 번역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고, 한유다가 보여주는 찌질한(;) 유다의 죽음이 마음에 안들기도 해서 썩 좋아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정재일 음감의 귀신같은 편곡으로 재탄생한 '잘했다 유다, 불쌍한 유다~' 코러스 뒤로 울려퍼지는 비장한 음악때문에 좋아하게 된 장면인데.....
아놔, 이날 은저스가 장례 행렬을 향해서 한쪽 손을 뻗는게 아닌가. 안그래도 이 장면에서 은저스 표정 디테일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더해서 저렇게 손을 들어 애도의 표시를 하니, 유다의 배신까지 자책하며, 그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가겠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ㅠㅠ
(그런데 환생해 돌아온 유다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는 스승을 향해 '하늘나라 친구들은 어떠세요~' 이러고 있고. ㅠㅠ)

지난 수요일 공연부터 은저스는 '다, 이루었다'에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냥 눈 앞에 장면, 소리를 흘려보내다 이 대사를 들으면 갑작스레 오열이 터져나와서 주체할수가 없다.

+ 공연장을 나서는데, 어떤 꼬마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있지, 지저스가 죽을 때 웃으면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