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3. 17 (토)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전반적으로 한 번 나쁘면 한 번 좋고, 공연도 기복을 타는 모양인지, 15일의 참사를 생각하면, 이날 공연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음향 상태였고, 몇 군데 배우가 먼저 치고 들어간 부분은 있었지만, 오케스트라가 금세 따라잡아줘서 크게 거슬리는 미스 없이 공연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기합이랄까 그런게 느껴지는 공연이어서, 부디 이런 퀄리티를 기복없이 앞으로도 보여주면 좋겠더라. 음향도.

- 1막의 시작을 여는 프롤로그를 보면서, 루케니라는 역이 새삼 중요한 역이면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담의 그랭구와르처럼 홀홀단신 천여명의 관객을 대면해야하고, 그 관객들을 순식간에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설자이면서 동시에 극 속의 등장 인물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한 순간에 꽂아줘야 하는데다가, 극의 서문을 열어줘야 하는 역. 게다가 앙상블에 지지않는 목소리로 질러줘야하고, 토트의 카리스마에 밀리지 않는 엘리자벳 배틀까지. 하여간에 시작부터 루케니는 상당한 에너지를 무대 위에 쏟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내는 루케니이기에 토트 역시 그 엘리자벳 배틀은 상당히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장면. 그래서 이 프롤로그에서 기싸움도 참으로 흥미진진한데, 이게 류토트에 은케니가 되면 뭐 분위기 자체가 쨍─ 하게 칼날이 부딛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 효과까지 동반된다. 찌르고 베는 레이피어 vs 뼈를 부수고 베는 대검의 대결이랄까. 
 
- 그리고 1막에서 루케니가 얼마나 여기저기 등장하며 바쁜 캐릭터인지, 그 동선을 따라가 보면 이렇다.
프롤로그가 끝나면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며 자유로운 씨씨를 소개하고(해설자), 씨씨네 친척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들어서 어울리고(행인1st), 죽음과 씨씨의 첫 만남을 보고 '와우~ 사랑의 시작' 이라고 빈정대며 처음으로 퇴장. 그러니까 프롤로그부터 '가지마요 왕자님' 까지 루케니는 퇴장 없이 계속 무대 위에 있는 거다. 
그리고는 곧바로 오스트리아 황실 소개하러 다시 등장한다. 이때도 참 깨알같이 대사에 리듬과 톤을 넣어서 지루하지 않게 설명. 대공비 소피는 특별 취급해주고, 퇴장없이 지켜보다가 탄원자를 소개하고, 그녀의 아들이 죽는 걸 지켜보다가 두번째로 퇴장.
그러나 역시 오래 못 쉬고 곧바로 바트 이슐로 이동해서 '계획이란 소용없'다며 등장, 여기서 의상을 두 번이나 갈아입는다. 여행용 코트에서 차셔틀 시종의 복장으로. 재밌는 건 황실 가족 나들이에 딸린 시종이라 이 의상이 루케니 의상 중에 제일 고급스럽다는 거. 하여간 여기서도 오스트리아의 황제께서 궁정에 쳐들어온 오리를 물리치셨다며 깨알같이 시중들고, 곧바로 차 셔틀. 차 셔틀 끝나면 엘리자벳과 요제프를 이어주고 후다닥 뛰쳐나가서 시종 옷은 벗고 기본 의상에 조끼 하나 걸치고 뱃사공으로 변신. 로맨틱한 분위기 조성 후 후다닥 퇴장.
결혼식이 참 괴상한 시간에 이루어진다며 초대받은 손님들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다들 성당 안에 입장하면 본인도 퇴장.
마지막 춤 이후에 황제 부부의 첫날밤의 목격자가 되라며 재등장해서 새장 속에 날아든 작은 새 신세인 씨씨를 해설하고, 왼편에서 등장하는 소피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추고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한 듯 소악마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퇴장.
나만의 것 이후에 결혼의 정거장 장면으로 이어지며 인형술사 루케니 등장. 자칫 잘못하면 지루할 수 있는 장면인데, 설명조의 노래에도 강약과 고저를 두고, 덧붙여 조종당하는 인물들을 살피며 그때 그때 반응을 달리하며 깨알같은 표정 연기를 선보인다. 헝가리까지 따라가서 소피의 죽음을 지켜보고 왼편에 등장하는 죽음을 바라보고, 사악하게 웃으며 퇴장.
그러고는 이어지는 카페씬에서 카페 마스터로 변신해서 죽천들을 알바로 고용하고 손님들 사이를 누비며 돌아다난다. 이리기웃 저리기웃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다가가는 기운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루케니. 카페에 찾아온 죽음과 눈을 맞추고서 퇴장.
그리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또 한 번 에너지를 최대로 뿜어내야하는 밀크를 시전하러 등장. 오늘은 배달이 없다고 전하는 걸 봐서는 목장의 대변인(?)쯤 되는 사람일까. 성난 군중들을 향해 자극적인 말을 내뱉으며 마구 선동질을 하는 은케니. 여자들이 달려들자 '아이들이 죽어가~'라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다가 그게 먹혀들자 으헤헤헤 웃어대는 거 보면, 혁명이니 해방이니 하는 건 그냥 개소리(;)고 그저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선동가의 모습으로 1막 퇴장.

이쯤되면 1막 끝나는 시점에서 루케니는 그냥 뻗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시종일관 참 바쁘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역이다. 특히 밀크에서는 앙상블도 쏟아내는 파워가 뭐 거의 최대치에 육박하기 때문에, 혼자서 거기에 맞서 그 엄청난 파워를 뚫고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할까 상상하기도 어렵다.

2막은 그래도 루케니에게 자비로운가? 그럴리가;; 2막의 시작 역시 1막에서처럼 홀홀단신 관객들을 대면해야한다. 싸구려 기념품 장사치로. 다만 여기서는 객석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객석에서 기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게 그나마 구원이랄까. 반대로 객석과 호흡이 안되면 재앙. 그리고 Kitsch를 지나면, 참으로 배우에게 가혹한 고음을 강요하는 Eljen이 기다리고 있다. 1막이든 2막이든 루케니에게 녹록한 시작은 없다. 그러나, 2막은 1막에 비해 등장 횟수가 적으니 그걸로 체력 보충이라도.

2막 첫 퇴장 이후 재등장은 권력 게임에서 밀려난 소피와 대신들을 소개하고 퇴장. 그리고 바로 마담 볼프 살롱으로 출동하여 볼프 여사의 애기기둥서방재간둥이로 활약. 깨알같이 살롱 언니들과 놀아나고(?) 마지막으로 볼프 여사 손에 이끌려 퇴장. 요제프에 대한 배신감으로 세상을 떠도는 엘리자벳을 비웃으러 재등장하여 정신병원 소개. 반항아 루돌프를 신문 기사를 통해 잠시 소개하고 퇴장. 루돌프가 죽음의 부추김으로 일 저지르고나면 강신술을 펼치는 엘리자벳을 비웃고 퇴장. 루돌프의 추도식 끝나자 마자 다시 잡상인으로 재등장해서 비꼬기 작렬, 로맨틱한 삼류 드라마나 구경하자며 퇴장. 그 삼류(?) 드라마 끝나자마자 합스부르크 가문 잔혹사를 펼치며 '불쌍한 인간들이여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외쳐주고 죽음의 엘리자벳 암살 사주를 받고, 드디어 암살. 마지막에 내려오는 줄에 목을 걸고 자살로 마무리. 이쯤 되면 케니자벳 아니냐는 소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것도 루케니니까. 물론 분량으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 루케니를 따라 극의 흐름을 쫒아가다보면 이런 식의 관극도 가능하구나 하는 걸 느끼고 온 날. 
이날 커튼콜에서 처음으로 은케니 하트 인사를 봤다. 완전 업되어서 애드립도 빵빵 터져주고, 엘젠에서 보여준 트럼펫 주자 흉내도 깨알같고. 목상태 좋으니까 자신감이 뿜어져 나와서 보기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