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3. 15 (목)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일단 까고 시작하자.
전체 공연 일정 중에 대략 1/3을 소화했는데, 여전히 오케스트라와 배우들간에 합이 안 맞으면 어쩌라는 건지. 갈수록 손발이 맞아들어가야하는 거 아닌가? 오케스트라 미스가 없었던 날이 오히려 적었고, 때로는 배우들이 박자를 빨리 들어가거나, 박자를 밀거나 해서 오케와 배우가 서로 눈치를 보고 하는데, 이게 더블에, 트리플을 끼얹은 캐스트 때문에 하루 이틀 텀 두고 무대에 서니까 이렇게 계속 리셋되는 건지. 아니, 오늘은 앙상블 넘버에서 박자가 안 맞았으니, 그런 것도 아닐 터. 시작부터 호평이었고, 연일 관객들 반응이 좋으니까 긴장이 풀어지신건가? 그렇다면 다시 마음 다잡으시길. 제발 공연에 집중하고, 긴장을 늦추지 마시길.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고는 해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은 보여야 하지 않겠나?
무대 전환 많아서 무대 크루들도 수고가 많겠지만, 큰 기구들 움직일 땐 그래도 공연 중이라는 거 감안해서 최대한 조용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1막 그림자는 길어지고 장면에서 막 뒤에서 인형극 세트 치우랴, 다음에 나올 카페 씬 준비하랴, 짧은 시간 안에 뭘 많이 준비해야하는 건 알겠는데, 그 넘버가 앙상블 받쳐주는 곡도 아니고, 오케스트라가 빵빵 터트리는 곡도 아닌데 그렇게 대놓고 우당탕우당탕 소음 발생시켜서야 앞에서 감정잡고 연기하는 배우들이 가엽지도 않는가. 아니, 그보다 막 뒤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원래 없는 소리라고 안들리는 척 세뇌해가며 극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관객들이 더 불쌍한 건가;;
배우들 모두 잘해주고 있기는 한데, 공연 진행되면서 피로도가 쌓이는 거 인간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다들 컨디션 조절 잘해주시길. 이날 공연 보면서 시즌 초반에 컨디션 너무 일찍 끌어올려서 살짝 주춤하는 운동 선수 보는 기분이었다. 초반에 다들 너무 잘해주셔서, 지금쯤 체력 저하가 나타날 때도 되기는 했지만, 이게 컨디션 저하 -> 집중력 저하로 나타나기 쉽상이라, 다들 프로니까 잘 아시겠지만, 운동 선수들 부상이 가장 잦을 때는 체력 떨어지고, 긴장 풀어졌을 때라는 걸 명심해주시길. 시즌 아직 두 달 더 남았습니다.
- 위에 저렇게 투덜이 스머프 모드로 투덜대기는 했지만, 이날 공연 자체는 그래도 무난했다. 몇몇 실수로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고, 워낙 베테랑 연기자들이라 주변에서 어떤 난리가 나든, 자기 목상태가 불안하든 지금 하는 배역에 몰입해서 연기하는 거 보면서, 연륜이란 게 이런거지 싶었다.
- 선영 엘리는 오늘 연기 노선이 조금은 힘을 뺀 여자의 일생이라는 느낌. 그러니까 그게 죽음에 미혹되는 황후처럼 거창한 높으신 분이라기 보다는 사람 사는 건 결국 다 똑같다는 어떤 보편적인 여자의 일생처럼 보였다. 고부 갈등은 황실이나 여염집이나 다를 바 없고,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아내, 그런 아내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눈치 없이 엄마 편드는 남편,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외도, 이런 것들이 황실이라고 별 거 없다는 그런 느낌이 확 드는게, 아마도 루케니의 빈정거림이 나한테도 옮았던 게지.
선영 엘리가 조금 약하게 노선을 잡으면서 류토트의 초월적인 절대자의 포스는 좀 더 강해져서, 그게 합이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가 너무 강하면 토트가 아무리 카리스마를 내뿜어도 구남친st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반발력이 강해지면 팽팽한 긴장감도 좋지만, 그게 너무 강하면 끊어져버리니까 적정한 수위를 조절하는 게 필요해보인다.
- 계속 이태원 소피 공연을 보다, 이정화 소피를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역시 음색이나 대사톤은 태원 소피가 취향이지만, 정화 소피의 연기 디테일도 놓을 수가 없다. 태원 소피는 진짜 여성성을 눌러 죽인, 황궁 유일한 남자같은 여장부 스타일인데, 정화 소피는 그정도까지는 아닌듯. 여성성을 놓지 않았고, 좀 더 어머니의 포지션이 강하다. 우리나라 사극으로 비유하면 정화 소피는 대비마마지만, 태원 소피는 상왕 전하에 더 가깝다.
이날 아들에게 외면당하는 장면에서 정화 소피는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년에게 코가 꿰여'라는 대사를 '그녀에게 코가 꿰여'라고 해서, 훨씬 더 약해진 모습을 연출하고, 배를 쓰다듬는 디테일이 육체적으로 병들어가는 모습 +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이리도 나를 박대하는구나 하는 원망처럼 보여서 그녀의 감정에 이입하기가 수월했다.
- 이날 어린 루돌프는 준서였는데, 아이고, 난 준서가 여리게 노래하다가 '마음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할때 앙칼지게 치고들어오는 게 너무 좋다. 그것도 떠나려는 죽음을 붙잡으면서 저도 황태자라고 내 말 안 들으면 피보는 수가 있어 라는듯, 협박하는 투로 난 어제 고양이도 쏘아 죽였다고 그러는데, 아우, 준서야 그거 노리고 그렇게 감정을 싣는 거니? 그렇다고 눈 하나 깜박할 죽음이 아니긴 하지만, 넌 역시 엘리 아들!! 이런 느낌이 확 살아서 좋다. 그리고 서서히 목소리 잦아들면서 울먹울먹 하는데, 난 정말로 준서가 울음을 터트리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하여간 여리지만, 이렇게 강단있는 준서 루돌프라 자라서 동돌프가 된다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더라. 탕돌프 -> 동돌프는 진짜 오스트리아 군사 학교의 승리라고 밖에는; 그리고 오늘 동돌프는 아버지와 정면 승부를 하기보다 옆에서 살살 약점을 찔러대는, 그래서 더 상처주는 반항아였다. 불쌍한 요제프, 아내에게 버림받아, 아들한테도 미움받고. 하지만, 모든 건 작용 반작용의 효과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니까.
그리고 이날 거울송에서 동돌프 모습에서 어린 준서 돌프의 모습이 슬쩍슬쩍 내비치는데, 난 오늘 동돌프의 연기가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애처로웠다. 어른인 척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아직도 침대 한 켠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고있는 아이가 자리잡고 있는 그런 루돌프라서, 그리고 그런 약한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 앞에서 어떤 가림막도 세우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면서 애원하는데, 어떻게 그걸 안 들어줄 수 있느냔 말이지. ㅠㅠ
선영 엘리의 여상한 목소리가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더라. 아버지 무서우니까 엄마한테 매달리러 온 거니? 네 문제는 네가 해결하렴 하는 듯한 그런 무심한 대답. 아이들을 빼앗겼을 때, 모성마저 같이 박탈당한 듯하다. 그래서 루돌프 장례식에서 보여주는 슬픔은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보다 항상 미안함이 더 크다. 같이 보낸 시간이라도 길어서 추억할 거리가 많기를 한가, 애정을 한껏 쏟아부은 기억도 없는데, 내가 무엇으로 네 죽음을 슬퍼할 수 있을까.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선영 엘리의 감정선이 그래서 참 가슴 아프다.
- 이날 은케니가 참 목상태가 내가 엘리자벳 공연 본 이래 가장 안 좋았어서, 1막은 그래도 무난하게 넘어갔는데, 2막 엘젠(일롄이라고 발음해야 하나?)에서 고음부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제대로 들려서 헉 했다. 뭐,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던 듯 조심스럽게 부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터트려줘야 할 부분에선 또 멀쩡하게 잘 해줘서 나름 컨트롤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참 목상태가 안 좋으면 다른 쪽으로 더 열심이라고 할지, 뭔가 보충(?)하려는 노력을 한달지. 이날 표정 연기가 한층 더 풍부해져서 보는 재미가 있더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광기는 좀 덜해졌는데, 표정에서 번득임은 그 진폭을 더 키운 것 같은 느낌.
똑같은 비웃음이라도 거기에 분노를 얹느냐, 조롱을 얹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간혹 객석을 훑을 때 보여주는 싸늘한 시선같은 게 관객을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느낌이 들었다. Kitsch에서 말하는 진실엔 관심없고, 그저 원하는 건 가쉽과 싸구려 기념품이잖아? 라는 비난을 슬쩍 던져놓는 것 처럼. 딴소리지만, Kitsch나 볼프 살롱처럼 실크햇 쓴 은케니가 매드해터처럼 보이는 거 나뿐인가.ㅋㅋㅋ
- 아, 그리고 이날 인상적이었던 게 침몰하는 배 씬에서 은케니의 동선이 달라지면서, 뭔가 변화가 생겼는데, 이게 우연히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 연출이 바뀐 건지 모르겠다. 이날 처음 본 거라. 전에는 은케니가 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배가 침몰하는 중이라는 대사를 오른쪽 액자 기둥에서 했는데 오늘은 같은 대사를 무대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하더니, 여기서 은케니가 오른쪽으로 기우뚱하면 뒤쪽 앙상블도 같은 방향으로 기우뚱, 왼쪽으로 기우뚱 하면 또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기우뚱해서 정말 배가 이리 저리 출렁이는 시각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전엔 서로 각자 우왕좌왕 비틀거리던 게 이렇게 딱 합이 맞으니까 평지인 무대가 기우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보여주더라. 그러니 부디 이게 우연의 일치가 아니기를 바란다.
- 극의 마지막,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찾은 선영 엘리와 원하는 여인을 손에 넣은 류토트 모두 환희에 찬 벅찬 감정을 드러내 보였고, 은케니는 내 할일 다했다는 듯이 내려오는 줄에 목을 걸고 씩 웃으며 몸을 늘어트리는데, 닫히는 막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옛날 옛날에 한 남자가 죽었습니다." 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다시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 커튼콜 후기를 잘 안적는 게, 박수치고 환호하다 그냥 기억이 다 휘발되서. 그런데, 이날 은케니 등장할 때 정화 소피 특유의 손동작 해줘서 이게 강렬한 한 방 이었다. 그 바람에 뒤에 은산 탈춤도 그냥그냥 흘려보냈;;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3. 15 (목)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일단 까고 시작하자.
전체 공연 일정 중에 대략 1/3을 소화했는데, 여전히 오케스트라와 배우들간에 합이 안 맞으면 어쩌라는 건지. 갈수록 손발이 맞아들어가야하는 거 아닌가? 오케스트라 미스가 없었던 날이 오히려 적었고, 때로는 배우들이 박자를 빨리 들어가거나, 박자를 밀거나 해서 오케와 배우가 서로 눈치를 보고 하는데, 이게 더블에, 트리플을 끼얹은 캐스트 때문에 하루 이틀 텀 두고 무대에 서니까 이렇게 계속 리셋되는 건지. 아니, 오늘은 앙상블 넘버에서 박자가 안 맞았으니, 그런 것도 아닐 터. 시작부터 호평이었고, 연일 관객들 반응이 좋으니까 긴장이 풀어지신건가? 그렇다면 다시 마음 다잡으시길. 제발 공연에 집중하고, 긴장을 늦추지 마시길.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고는 해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은 보여야 하지 않겠나?
무대 전환 많아서 무대 크루들도 수고가 많겠지만, 큰 기구들 움직일 땐 그래도 공연 중이라는 거 감안해서 최대한 조용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1막 그림자는 길어지고 장면에서 막 뒤에서 인형극 세트 치우랴, 다음에 나올 카페 씬 준비하랴, 짧은 시간 안에 뭘 많이 준비해야하는 건 알겠는데, 그 넘버가 앙상블 받쳐주는 곡도 아니고, 오케스트라가 빵빵 터트리는 곡도 아닌데 그렇게 대놓고 우당탕우당탕 소음 발생시켜서야 앞에서 감정잡고 연기하는 배우들이 가엽지도 않는가. 아니, 그보다 막 뒤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원래 없는 소리라고 안들리는 척 세뇌해가며 극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관객들이 더 불쌍한 건가;;
배우들 모두 잘해주고 있기는 한데, 공연 진행되면서 피로도가 쌓이는 거 인간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다들 컨디션 조절 잘해주시길. 이날 공연 보면서 시즌 초반에 컨디션 너무 일찍 끌어올려서 살짝 주춤하는 운동 선수 보는 기분이었다. 초반에 다들 너무 잘해주셔서, 지금쯤 체력 저하가 나타날 때도 되기는 했지만, 이게 컨디션 저하 -> 집중력 저하로 나타나기 쉽상이라, 다들 프로니까 잘 아시겠지만, 운동 선수들 부상이 가장 잦을 때는 체력 떨어지고, 긴장 풀어졌을 때라는 걸 명심해주시길. 시즌 아직 두 달 더 남았습니다.
- 위에 저렇게 투덜이 스머프 모드로 투덜대기는 했지만, 이날 공연 자체는 그래도 무난했다. 몇몇 실수로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고, 워낙 베테랑 연기자들이라 주변에서 어떤 난리가 나든, 자기 목상태가 불안하든 지금 하는 배역에 몰입해서 연기하는 거 보면서, 연륜이란 게 이런거지 싶었다.
- 선영 엘리는 오늘 연기 노선이 조금은 힘을 뺀 여자의 일생이라는 느낌. 그러니까 그게 죽음에 미혹되는 황후처럼 거창한 높으신 분이라기 보다는 사람 사는 건 결국 다 똑같다는 어떤 보편적인 여자의 일생처럼 보였다. 고부 갈등은 황실이나 여염집이나 다를 바 없고,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아내, 그런 아내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눈치 없이 엄마 편드는 남편,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외도, 이런 것들이 황실이라고 별 거 없다는 그런 느낌이 확 드는게, 아마도 루케니의 빈정거림이 나한테도 옮았던 게지.
선영 엘리가 조금 약하게 노선을 잡으면서 류토트의 초월적인 절대자의 포스는 좀 더 강해져서, 그게 합이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가 너무 강하면 토트가 아무리 카리스마를 내뿜어도 구남친st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반발력이 강해지면 팽팽한 긴장감도 좋지만, 그게 너무 강하면 끊어져버리니까 적정한 수위를 조절하는 게 필요해보인다.
- 계속 이태원 소피 공연을 보다, 이정화 소피를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역시 음색이나 대사톤은 태원 소피가 취향이지만, 정화 소피의 연기 디테일도 놓을 수가 없다. 태원 소피는 진짜 여성성을 눌러 죽인, 황궁 유일한 남자같은 여장부 스타일인데, 정화 소피는 그정도까지는 아닌듯. 여성성을 놓지 않았고, 좀 더 어머니의 포지션이 강하다. 우리나라 사극으로 비유하면 정화 소피는 대비마마지만, 태원 소피는 상왕 전하에 더 가깝다.
이날 아들에게 외면당하는 장면에서 정화 소피는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년에게 코가 꿰여'라는 대사를 '그녀에게 코가 꿰여'라고 해서, 훨씬 더 약해진 모습을 연출하고, 배를 쓰다듬는 디테일이 육체적으로 병들어가는 모습 +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이리도 나를 박대하는구나 하는 원망처럼 보여서 그녀의 감정에 이입하기가 수월했다.
- 이날 어린 루돌프는 준서였는데, 아이고, 난 준서가 여리게 노래하다가 '마음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할때 앙칼지게 치고들어오는 게 너무 좋다. 그것도 떠나려는 죽음을 붙잡으면서 저도 황태자라고 내 말 안 들으면 피보는 수가 있어 라는듯, 협박하는 투로 난 어제 고양이도 쏘아 죽였다고 그러는데, 아우, 준서야 그거 노리고 그렇게 감정을 싣는 거니? 그렇다고 눈 하나 깜박할 죽음이 아니긴 하지만, 넌 역시 엘리 아들!! 이런 느낌이 확 살아서 좋다. 그리고 서서히 목소리 잦아들면서 울먹울먹 하는데, 난 정말로 준서가 울음을 터트리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하여간 여리지만, 이렇게 강단있는 준서 루돌프라 자라서 동돌프가 된다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더라. 탕돌프 -> 동돌프는 진짜 오스트리아 군사 학교의 승리라고 밖에는; 그리고 오늘 동돌프는 아버지와 정면 승부를 하기보다 옆에서 살살 약점을 찔러대는, 그래서 더 상처주는 반항아였다. 불쌍한 요제프, 아내에게 버림받아, 아들한테도 미움받고. 하지만, 모든 건 작용 반작용의 효과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니까.
그리고 이날 거울송에서 동돌프 모습에서 어린 준서 돌프의 모습이 슬쩍슬쩍 내비치는데, 난 오늘 동돌프의 연기가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애처로웠다. 어른인 척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아직도 침대 한 켠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고있는 아이가 자리잡고 있는 그런 루돌프라서, 그리고 그런 약한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 앞에서 어떤 가림막도 세우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면서 애원하는데, 어떻게 그걸 안 들어줄 수 있느냔 말이지. ㅠㅠ
선영 엘리의 여상한 목소리가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더라. 아버지 무서우니까 엄마한테 매달리러 온 거니? 네 문제는 네가 해결하렴 하는 듯한 그런 무심한 대답. 아이들을 빼앗겼을 때, 모성마저 같이 박탈당한 듯하다. 그래서 루돌프 장례식에서 보여주는 슬픔은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보다 항상 미안함이 더 크다. 같이 보낸 시간이라도 길어서 추억할 거리가 많기를 한가, 애정을 한껏 쏟아부은 기억도 없는데, 내가 무엇으로 네 죽음을 슬퍼할 수 있을까.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선영 엘리의 감정선이 그래서 참 가슴 아프다.
- 이날 은케니가 참 목상태가 내가 엘리자벳 공연 본 이래 가장 안 좋았어서, 1막은 그래도 무난하게 넘어갔는데, 2막 엘젠(일롄이라고 발음해야 하나?)에서 고음부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제대로 들려서 헉 했다. 뭐,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던 듯 조심스럽게 부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터트려줘야 할 부분에선 또 멀쩡하게 잘 해줘서 나름 컨트롤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참 목상태가 안 좋으면 다른 쪽으로 더 열심이라고 할지, 뭔가 보충(?)하려는 노력을 한달지. 이날 표정 연기가 한층 더 풍부해져서 보는 재미가 있더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광기는 좀 덜해졌는데, 표정에서 번득임은 그 진폭을 더 키운 것 같은 느낌.
똑같은 비웃음이라도 거기에 분노를 얹느냐, 조롱을 얹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간혹 객석을 훑을 때 보여주는 싸늘한 시선같은 게 관객을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느낌이 들었다. Kitsch에서 말하는 진실엔 관심없고, 그저 원하는 건 가쉽과 싸구려 기념품이잖아? 라는 비난을 슬쩍 던져놓는 것 처럼. 딴소리지만, Kitsch나 볼프 살롱처럼 실크햇 쓴 은케니가 매드해터처럼 보이는 거 나뿐인가.ㅋㅋㅋ
- 아, 그리고 이날 인상적이었던 게 침몰하는 배 씬에서 은케니의 동선이 달라지면서, 뭔가 변화가 생겼는데, 이게 우연히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 연출이 바뀐 건지 모르겠다. 이날 처음 본 거라. 전에는 은케니가 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배가 침몰하는 중이라는 대사를 오른쪽 액자 기둥에서 했는데 오늘은 같은 대사를 무대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하더니, 여기서 은케니가 오른쪽으로 기우뚱하면 뒤쪽 앙상블도 같은 방향으로 기우뚱, 왼쪽으로 기우뚱 하면 또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기우뚱해서 정말 배가 이리 저리 출렁이는 시각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전엔 서로 각자 우왕좌왕 비틀거리던 게 이렇게 딱 합이 맞으니까 평지인 무대가 기우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보여주더라. 그러니 부디 이게 우연의 일치가 아니기를 바란다.
- 극의 마지막,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찾은 선영 엘리와 원하는 여인을 손에 넣은 류토트 모두 환희에 찬 벅찬 감정을 드러내 보였고, 은케니는 내 할일 다했다는 듯이 내려오는 줄에 목을 걸고 씩 웃으며 몸을 늘어트리는데, 닫히는 막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옛날 옛날에 한 남자가 죽었습니다." 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다시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 커튼콜 후기를 잘 안적는 게, 박수치고 환호하다 그냥 기억이 다 휘발되서. 그런데, 이날 은케니 등장할 때 정화 소피 특유의 손동작 해줘서 이게 강렬한 한 방 이었다. 그 바람에 뒤에 은산 탈춤도 그냥그냥 흘려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