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28 (화)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이날 공연은 전반적으로 조금씩 어긋남이 있었지만, 그 어긋남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몰입해서 열연해준 배우분들 덕에 가히 레전드라 할만하겠다. 그래도 오케스트라 미스는 너무 중요한 부분에서 너무 심하게 튀었으므로 상쇄할 여지가 별로 없었지만.
- 우선 은케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진짜 저 무시무시한 컨시스턴시에는 감탄을 넘어 감동하게된다. 무대 공연 특성상 어제 공연이 레전드라고 오늘 공연도 또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은태는 매 공연 일정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거기에 더해 회차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확확 들어오니 자꾸 전관 욕심이 생기지. (그래서 내가 EMK의 ATM ㅠ.ㅠ)
삼케니가 각자 배우가 가진 개성을 부여하여 루케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은케니가 잡은 루케니는 한마디로 미친놈인데, 거기에 더해서 은케니가 사실은 무정부주의자 라기보다는 광기에 찬 냉소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케니는 루케니 본인일 때와 해설자일 때, 극 안으로 스며든 인물일 때가 조금씩 다른데, 일단 루케니 본인일 땐 영락없는 정신병자, 미친놈이다. 그런데 일단 해설자의 위치에 오게 되면 이 세상에 가소롭지 않은 것이 없는 냉소주의자다. 권위를 조롱하고, 사랑을 비웃고, 인물이 가진 모순에 마음껏 비난을 퍼붓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광기를 숨길 수는 없어서 멀쩡하게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웃음으로 터트린다. 그리고 극중 인물로 녹아들 때는 그 배역에 충실하게 깨알같이 연기한다. 대표적인 게 밀크. 군중들을 향해서 우유 배달이 없다면서 당신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듯 숙연하기까지 한 표정을 짓다가도 뒤돌 땐 그거야 니들 사정이지 씩 웃는 거 보면, 여기서 좀 더 쑤석이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 같다고 머리 굴리는 게 보이는 선동가.
- 은케니가 취향을 타겠다 싶은 부분은 죽음과의 관계인데, 프롤로그에서 죽음을 소개할 때. 실상 여기서 죽음은 자기 의지로 등장한 게 아니라, 루케니에 의해 소환된 것에 가깝다. 이건 어쩌면 은케니 한정일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다른 두 루케니가 '아주 위대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죽음' 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비해서 은케니는 '소개하지, 위~대한 죽음' 이라고 하는데, 말로는 위~대하다고 하지만 비아냥거림이 퐁퐁 떠다니는 뉘앙스라 죽음에 대한 어떠한 경의나 두려움도 없다. 은케니는 불경스럽게도 여러 증인 중 한 명으로 죽음을 소환한 것 같은 분위기다. 누구도 감당 못 할 돌아이 증명;
이후에도 은케니는 죽음에 대한 비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와우, 사랑의 시작~" 부터 마리오네트 씬에서 "결국엔 차인 거니까", 카페씬에 등장한 죽음을 향해 피식거리는 거며,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시작 전에도 조롱의 손짓을 해보이며 퇴장한다. 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루케니는 원작 파괴라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는 해석이긴한데, 쟨 그냥 세상 무서울 거 없는 미친놈이라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모양이지 하고 이해하게 되는 건 내가 편애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 뮤지컬 엘리자벳이 그저 한 인물의 일대기로 흐르지 않게 잡아주는 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의인화 해서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해서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디에고 기대야 할 구석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배우가 가진 아우라든, 분장이든. 쿤체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가사는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죽음'을 납득시키는 가장 큰 무기인데, 번안 과정에서 그 싯적인 풍미가 상당부분 깎여나간 건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쿤체의 시는 날아갔어도 음악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죽음이 등장할 때 음산하게 퍼지는 음악적 기운이야말로, 관객들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죽음'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베일이 떨어지고에서 삑사리 낸 호른은 반성 좀. 이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에서 호른이라는 악기는 그냥 악기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캐릭터가 부여된 소리라는 걸 이야기 하고싶다. 일단 호른은 관악기 중에서도 상당히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트럼펫이나 트럼본의 음색이 금관악기 특유의 뽐내는 듯한 소리(비웃는 거 아님;)를 낸다면 호른은 좀 더 친화적이고 웅대하면서도 부드럽게 권위를 드러내는 음색이라, 개인적으로 "죽음"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그 호른의 음색이 두드러지는 부분이 어디냐면, 죽음이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사에 개입할 때. 특히 결혼식 피로연 장면과 마이어링 왈츠에서 자, 이제 죽음 등장이요~ 하고 호른이 먼저 길을 열어준다. 죽음과 엘리자벳의 첫 만남의 장면, 그리고 마침내 엘리자벳을 손에 넣었을 때의 그 로맨틱한 선율도 호른으로 시작을 열어 그저 로맨틱하기만 한 게 아닌 장중한 분위기를 낸다.
물론 죽음이 등장할 때마다 호른이 따라다니는 건 아니다. 소리없이 다가와 음산한 그림자처럼 주변을 맴도는 그런 죽음일 때 조차 미리 전조를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카페씬에서 하품하며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엄마를 그리워하며 혼자 두려움에 떠는 어린 루돌프,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떠는 엘리자벳, 아버지에 의해 이상이 꺾인 루돌프 등등. 그런 장면에서 죽음은 등장 인물들의 감정에 감응해서 나타난 쪽에 더 가깝기도 하고.
- 기왕 음악 얘기 하는 김에 르베이의 음악적 센스가 정말 좋은게, 황실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할 때 등장하는 팡파레. 이게 정말 극 전반을 지배하는 황실의 권위에 대한 조롱과 조소가 제대로 드러나서 좋다. 메인 멜로디를 이끄는 트럼펫은 여타 팡파레와 다를바없이 여기를 봐, 황실을 찬양해라~ 라는 진행인데, 그 밑에 흐르는 트럼본과 여타 다른 악기들은 미묘하게 리듬도 화음도 헝클어져있어서,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걸 다른 설명없이 이 팡파레 음악 하나로 다 설명하고 있다.
처음엔 리프라이즈가 너무 많다고 살짝 투덜거렸는데, 듣다보니 그 배치의 절묘함에도 감탄하게 되더라. 아빠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그 노래로 죽음에게 가지마요 왕자님~ 하는데, 결국 씨씨가 원하는 자유를 줄 수 있는 건 죽음 뿐이라는 노골적인 복선이다. '모두 반가워요'가 '행복한 종말'로 리프라이즈 되는 것도 댓구를 이루는데,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 관심밖이랄까,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가볍게 떠드는 그런 분위기가 비슷하게 이어진다. 엘리자벳 결혼 피로연의 왈츠가 마이어링 왈츠로 이어지면서 모자 2대에 걸친 죽음과의 인연을 보여주는 것도 절묘하다.씨씨와 조피의 신경전은 고스란히 루돌프와 요제프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요제프에 대한 엘리자벳의 환멸이 엘리자벳에 대한 루돌프의 절망으로 이어진다. 가장 균형감있게 대칭을 이루는 건 '혼자두지 말아요'와 '행복은 너무 멀리에'.
- 류토트와 선영 엘리를 17일 공연 이후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송토트와 옥엘리의 잔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류토트도 선영 엘리도 연기의 노선이 계속 바뀌어가는 것 같아서 아직까지 캐릭터 파악이 제대로 안된다.
류토트는 초월적인 절대자의 분위기를 배우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데, 오늘 공연을 보니 좀 더 인간적이고, 유혹하는 죽음처럼 느껴지더라. 마지막 춤에서의 그 적극적인 대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와 더불어 이날 공연이 내 5번째 엘리였는데, 어떤 불안함없이 가장 마음편히 죽음을 감상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선영 엘리는 1막에서 고음에서 목소리 끝이 갈라지는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정의 엘리자벳이라면 저런 목소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는데, 다만, 나만의 것 rep.에서는 좀더 위엄있고 윤택한 목소리가 나와줬으면 좋겠더라.
류토트와 선영 엘리의 불꽃튀는 기싸움이 절정에 달하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는 배우간의 팽팽한 긴장감도 짜릿하지만, 엘리자벳의 치맛 자락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게, 진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아서 난 의상팀도 칭찬해주고 싶다. 피아노 덮개 같다고 한거 미안합니다.
이날 선영 엘리의 연기 중에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루돌프의 장례식이었는데, 슬픔보다 더 큰 미안함, 자책감 때문에 차마 손도 못 뻗는 엘리를 보고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그랬나 싶으면서도, 내가 무슨 염치로 너의 죽음을 슬퍼하랴, 눈물 흘릴 자격도 없는 애미다...하는 게 보여서, 차라리 슬픔을 밖으로 터트리면 좀 가벼워질 것을 가슴에 꾹꾹 눌러담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에 죽음에게 데려가 달라는 부분의 감정선도 좀 달라졌는데, 전엔 그것만이 나의 구원, 너무나 고통스러운 이 현실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달라는 쪽이었다면, 이날은 나처럼 죄많은 어미를 거두어달라는 것 같더라.
- 민제프와 윤제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머니 소피와의 친밀감이다. 민제프는 어쩔 수 없이 엄마 뜻에 따르기는 하지만, 여차하면 박차고 나갈 반항적인 아들인데, 윤제프는 엄마는 다 나 잘되라고 저러시는 거라 믿는 말 잘듣는 아들이다. 이게 엘리자벳에 대한 태도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데, 민제프는 어머니 눈치보랴 부인 투정 들어주랴 진퇴양난에 빠진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권력이 아직은 더 막강하니, 엘리자벳보고 니가 참아야지 하는 쪽이고, 윤제프는 부인 속터지는 것도 모르고, 어머니는 너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고, 다 너를 위해서야 라고 하니 어느 쪽이든 엘리자벳이 홧병나기는 마찬가지. 아, 그래도 내가 윤제프가 좀 더 취향인 건, 윤제프가 왈츠 출 때도, 첫날 밤 불안해 하는 엘리를 다독일 때도 너무너무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눈길이 솜사탕 같아서. 그리고 나는 김류민보단 김류윤의 하모니가 더 듣기 좋더라.
- 탕돌프의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연기도 노래도 훌륭하고, 동석이는 '내가 어머니의 거울이면 좋겠어요.'에서 애처로움이 나날이 늘어서, 무릎꿇고 두 손 모아서 비는 모습이 얼마나 절박해보이는지, 그걸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싶다. 마이어링 왈츠에서 아직 몸에서 힘을 다 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더 이리저리 마구 휘둘려지고, 구르고, 몸놀림이 한 결 좋아져서, 처철함을 키운 것도 좋더라.
- 정화 조피는 태원 조피보다 디테일한 연기에 더 많이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사용하는 어휘도 좀 더 황실 웃전에 맞게 사용하시고. 늦잠 자는 며느리를 흉볼 때, 정화 조피는 "나태하고 게으른 철부지"라고 하고 태원 조피는 "나태하고 게으른 멍청이"라고 한다. 아무리 며느리가 마음에 안들어도 멍청이는 좀...; 그리고 씨씨와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황제에게 직접 물어보라 할 때, 정화 조피는 "황제를 모셔와."라고 하는데, 태원 조피는 "황제를 데려와."라고 해서 아무리 어머님이 수렴청정을 한다해도 아랫것들 앞에서는 황제의 위신을 세워주셔야지 않나 하지만, 음색이나 대사톤은 태원 조피가 취향이라는 미묘한 취향의 세계.
-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에 앙상블의 호연까지 곁들여진 성찬을 맛본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서는데, 새삼 통장 박살나는 소리가 환청처럼 따라붙었다. 환청이 아니란 소린 말아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28 (화)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이날 공연은 전반적으로 조금씩 어긋남이 있었지만, 그 어긋남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몰입해서 열연해준 배우분들 덕에 가히 레전드라 할만하겠다. 그래도 오케스트라 미스는 너무 중요한 부분에서 너무 심하게 튀었으므로 상쇄할 여지가 별로 없었지만.
- 우선 은케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진짜 저 무시무시한 컨시스턴시에는 감탄을 넘어 감동하게된다. 무대 공연 특성상 어제 공연이 레전드라고 오늘 공연도 또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은태는 매 공연 일정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거기에 더해 회차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확확 들어오니 자꾸 전관 욕심이 생기지. (그래서 내가 EMK의 ATM ㅠ.ㅠ)
삼케니가 각자 배우가 가진 개성을 부여하여 루케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은케니가 잡은 루케니는 한마디로 미친놈인데, 거기에 더해서 은케니가 사실은 무정부주의자 라기보다는 광기에 찬 냉소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케니는 루케니 본인일 때와 해설자일 때, 극 안으로 스며든 인물일 때가 조금씩 다른데, 일단 루케니 본인일 땐 영락없는 정신병자, 미친놈이다. 그런데 일단 해설자의 위치에 오게 되면 이 세상에 가소롭지 않은 것이 없는 냉소주의자다. 권위를 조롱하고, 사랑을 비웃고, 인물이 가진 모순에 마음껏 비난을 퍼붓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광기를 숨길 수는 없어서 멀쩡하게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웃음으로 터트린다. 그리고 극중 인물로 녹아들 때는 그 배역에 충실하게 깨알같이 연기한다. 대표적인 게 밀크. 군중들을 향해서 우유 배달이 없다면서 당신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듯 숙연하기까지 한 표정을 짓다가도 뒤돌 땐 그거야 니들 사정이지 씩 웃는 거 보면, 여기서 좀 더 쑤석이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 같다고 머리 굴리는 게 보이는 선동가.
- 은케니가 취향을 타겠다 싶은 부분은 죽음과의 관계인데, 프롤로그에서 죽음을 소개할 때. 실상 여기서 죽음은 자기 의지로 등장한 게 아니라, 루케니에 의해 소환된 것에 가깝다. 이건 어쩌면 은케니 한정일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다른 두 루케니가 '아주 위대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죽음' 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비해서 은케니는 '소개하지, 위~대한 죽음' 이라고 하는데, 말로는 위~대하다고 하지만 비아냥거림이 퐁퐁 떠다니는 뉘앙스라 죽음에 대한 어떠한 경의나 두려움도 없다. 은케니는 불경스럽게도 여러 증인 중 한 명으로 죽음을 소환한 것 같은 분위기다. 누구도 감당 못 할 돌아이 증명;
이후에도 은케니는 죽음에 대한 비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와우, 사랑의 시작~" 부터 마리오네트 씬에서 "결국엔 차인 거니까", 카페씬에 등장한 죽음을 향해 피식거리는 거며,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시작 전에도 조롱의 손짓을 해보이며 퇴장한다. 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루케니는 원작 파괴라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는 해석이긴한데, 쟨 그냥 세상 무서울 거 없는 미친놈이라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모양이지 하고 이해하게 되는 건 내가 편애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 뮤지컬 엘리자벳이 그저 한 인물의 일대기로 흐르지 않게 잡아주는 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의인화 해서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해서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디에고 기대야 할 구석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배우가 가진 아우라든, 분장이든. 쿤체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가사는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죽음'을 납득시키는 가장 큰 무기인데, 번안 과정에서 그 싯적인 풍미가 상당부분 깎여나간 건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쿤체의 시는 날아갔어도 음악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죽음이 등장할 때 음산하게 퍼지는 음악적 기운이야말로, 관객들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죽음'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베일이 떨어지고에서 삑사리 낸 호른은 반성 좀. 이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에서 호른이라는 악기는 그냥 악기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캐릭터가 부여된 소리라는 걸 이야기 하고싶다. 일단 호른은 관악기 중에서도 상당히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트럼펫이나 트럼본의 음색이 금관악기 특유의 뽐내는 듯한 소리(비웃는 거 아님;)를 낸다면 호른은 좀 더 친화적이고 웅대하면서도 부드럽게 권위를 드러내는 음색이라, 개인적으로 "죽음"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그 호른의 음색이 두드러지는 부분이 어디냐면, 죽음이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사에 개입할 때. 특히 결혼식 피로연 장면과 마이어링 왈츠에서 자, 이제 죽음 등장이요~ 하고 호른이 먼저 길을 열어준다. 죽음과 엘리자벳의 첫 만남의 장면, 그리고 마침내 엘리자벳을 손에 넣었을 때의 그 로맨틱한 선율도 호른으로 시작을 열어 그저 로맨틱하기만 한 게 아닌 장중한 분위기를 낸다.
물론 죽음이 등장할 때마다 호른이 따라다니는 건 아니다. 소리없이 다가와 음산한 그림자처럼 주변을 맴도는 그런 죽음일 때 조차 미리 전조를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카페씬에서 하품하며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엄마를 그리워하며 혼자 두려움에 떠는 어린 루돌프,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떠는 엘리자벳, 아버지에 의해 이상이 꺾인 루돌프 등등. 그런 장면에서 죽음은 등장 인물들의 감정에 감응해서 나타난 쪽에 더 가깝기도 하고.
- 기왕 음악 얘기 하는 김에 르베이의 음악적 센스가 정말 좋은게, 황실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할 때 등장하는 팡파레. 이게 정말 극 전반을 지배하는 황실의 권위에 대한 조롱과 조소가 제대로 드러나서 좋다. 메인 멜로디를 이끄는 트럼펫은 여타 팡파레와 다를바없이 여기를 봐, 황실을 찬양해라~ 라는 진행인데, 그 밑에 흐르는 트럼본과 여타 다른 악기들은 미묘하게 리듬도 화음도 헝클어져있어서,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걸 다른 설명없이 이 팡파레 음악 하나로 다 설명하고 있다.
처음엔 리프라이즈가 너무 많다고 살짝 투덜거렸는데, 듣다보니 그 배치의 절묘함에도 감탄하게 되더라. 아빠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그 노래로 죽음에게 가지마요 왕자님~ 하는데, 결국 씨씨가 원하는 자유를 줄 수 있는 건 죽음 뿐이라는 노골적인 복선이다. '모두 반가워요'가 '행복한 종말'로 리프라이즈 되는 것도 댓구를 이루는데,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 관심밖이랄까,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가볍게 떠드는 그런 분위기가 비슷하게 이어진다. 엘리자벳 결혼 피로연의 왈츠가 마이어링 왈츠로 이어지면서 모자 2대에 걸친 죽음과의 인연을 보여주는 것도 절묘하다.씨씨와 조피의 신경전은 고스란히 루돌프와 요제프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요제프에 대한 엘리자벳의 환멸이 엘리자벳에 대한 루돌프의 절망으로 이어진다. 가장 균형감있게 대칭을 이루는 건 '혼자두지 말아요'와 '행복은 너무 멀리에'.
- 류토트와 선영 엘리를 17일 공연 이후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송토트와 옥엘리의 잔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류토트도 선영 엘리도 연기의 노선이 계속 바뀌어가는 것 같아서 아직까지 캐릭터 파악이 제대로 안된다.
류토트는 초월적인 절대자의 분위기를 배우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데, 오늘 공연을 보니 좀 더 인간적이고, 유혹하는 죽음처럼 느껴지더라. 마지막 춤에서의 그 적극적인 대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와 더불어 이날 공연이 내 5번째 엘리였는데, 어떤 불안함없이 가장 마음편히 죽음을 감상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선영 엘리는 1막에서 고음에서 목소리 끝이 갈라지는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정의 엘리자벳이라면 저런 목소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는데, 다만, 나만의 것 rep.에서는 좀더 위엄있고 윤택한 목소리가 나와줬으면 좋겠더라.
류토트와 선영 엘리의 불꽃튀는 기싸움이 절정에 달하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는 배우간의 팽팽한 긴장감도 짜릿하지만, 엘리자벳의 치맛 자락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게, 진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아서 난 의상팀도 칭찬해주고 싶다. 피아노 덮개 같다고 한거 미안합니다.
이날 선영 엘리의 연기 중에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루돌프의 장례식이었는데, 슬픔보다 더 큰 미안함, 자책감 때문에 차마 손도 못 뻗는 엘리를 보고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그랬나 싶으면서도, 내가 무슨 염치로 너의 죽음을 슬퍼하랴, 눈물 흘릴 자격도 없는 애미다...하는 게 보여서, 차라리 슬픔을 밖으로 터트리면 좀 가벼워질 것을 가슴에 꾹꾹 눌러담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에 죽음에게 데려가 달라는 부분의 감정선도 좀 달라졌는데, 전엔 그것만이 나의 구원, 너무나 고통스러운 이 현실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달라는 쪽이었다면, 이날은 나처럼 죄많은 어미를 거두어달라는 것 같더라.
- 민제프와 윤제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머니 소피와의 친밀감이다. 민제프는 어쩔 수 없이 엄마 뜻에 따르기는 하지만, 여차하면 박차고 나갈 반항적인 아들인데, 윤제프는 엄마는 다 나 잘되라고 저러시는 거라 믿는 말 잘듣는 아들이다. 이게 엘리자벳에 대한 태도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데, 민제프는 어머니 눈치보랴 부인 투정 들어주랴 진퇴양난에 빠진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권력이 아직은 더 막강하니, 엘리자벳보고 니가 참아야지 하는 쪽이고, 윤제프는 부인 속터지는 것도 모르고, 어머니는 너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고, 다 너를 위해서야 라고 하니 어느 쪽이든 엘리자벳이 홧병나기는 마찬가지. 아, 그래도 내가 윤제프가 좀 더 취향인 건, 윤제프가 왈츠 출 때도, 첫날 밤 불안해 하는 엘리를 다독일 때도 너무너무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눈길이 솜사탕 같아서. 그리고 나는 김류민보단 김류윤의 하모니가 더 듣기 좋더라.
- 탕돌프의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연기도 노래도 훌륭하고, 동석이는 '내가 어머니의 거울이면 좋겠어요.'에서 애처로움이 나날이 늘어서, 무릎꿇고 두 손 모아서 비는 모습이 얼마나 절박해보이는지, 그걸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싶다. 마이어링 왈츠에서 아직 몸에서 힘을 다 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더 이리저리 마구 휘둘려지고, 구르고, 몸놀림이 한 결 좋아져서, 처철함을 키운 것도 좋더라.
- 정화 조피는 태원 조피보다 디테일한 연기에 더 많이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사용하는 어휘도 좀 더 황실 웃전에 맞게 사용하시고. 늦잠 자는 며느리를 흉볼 때, 정화 조피는 "나태하고 게으른 철부지"라고 하고 태원 조피는 "나태하고 게으른 멍청이"라고 한다. 아무리 며느리가 마음에 안들어도 멍청이는 좀...; 그리고 씨씨와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황제에게 직접 물어보라 할 때, 정화 조피는 "황제를 모셔와."라고 하는데, 태원 조피는 "황제를 데려와."라고 해서 아무리 어머님이 수렴청정을 한다해도 아랫것들 앞에서는 황제의 위신을 세워주셔야지 않나 하지만, 음색이나 대사톤은 태원 조피가 취향이라는 미묘한 취향의 세계.
-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에 앙상블의 호연까지 곁들여진 성찬을 맛본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서는데, 새삼 통장 박살나는 소리가 환청처럼 따라붙었다. 환청이 아니란 소린 말아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