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밤은 없다

일   시 : 2011. 11. 29 ~ 2011. 12. 31
장   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관극일 : 2011. 12. 20 (화) 20:00
연   출 : 박근형, 원작 :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
캐스트 : 이소자키 켄에치 - 정재진, 이소자키 이쿠코 - 예수정, 미츠하시 아키라 - 최용민, 미츠하시 에미코 - 주인영, 스기하라 코조 - 김학수, 스기하라 치즈코 - 이영숙, 나카오카 나오에 - 정희정, 나카오카 세이지 - 김도균, 이소자키 요시에 - 정세라, 하라구치 미쓰루 - 박완규, 누마오카 마유미 - 유나미,  누마오카 하야토 - 김주헌, 마치다 이쿠야 - 이호열, 노마 히카루 - 김동희, 이소자키 호나미 - 이성자
줄거리 :
일본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어느 리조트. 은퇴이민 온 중.장년 부부들의 생활은 편안하면서도 권태롭다. 산책, 골프, 테니스, 수영 등을 하거나 원주민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낸다.
말레이시아에 살지만 일본인들끼리 모여 살며,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DVD를 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출처 > 플레이DB]

- 요 근래 일본 작가 원작의 연극이 참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일본 공연계가 워낙 다양하고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근래에 화제가 되고, 입소문 탄 작품들이 어쩌다 보니 죄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더라는. 

- 작년에 화제가 됐던 연극이 다시 올라온다는 소식에 한 번은 봐야지 마음먹었다가, 역시나 햄릿 때문에 스케줄 뒤로 밀려버린 연극 잠 못드는 밤은 없다. 대강의 시놉만 알고서 보러갔는데, 참 담담한 극이었고, 보고나서도 그저 담담했는데, 생각할 수록 새록새록 떠오르는 대사와 그 모순된 상황 같은게 오래도록 뒷맛을 남긴다. 프로그램 북에 대본이 같이 있어서 참 좋더라.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어서.

- 극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이 사실적이라는 게, 은퇴 이민 온 사람들의 일상 생활 중 2시간 여를 그저 조용히 지켜보게 하는 게 전부다. 실제로 무대 한 쪽 벽에 걸려있는 벽시계가 시작할 때 5시 5분인가를 가리키는데 극이 끝날 때는 7시 5분 쯤. 그러니까 등장 인물들이 보낸 2시간을 같이 공유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무대 전환도 없고, 암전에 의한 시간의 흐름 같은 것도 없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휴양지 리조트의 로비였고, 그 로비에 모였다 흩어지는 등장 인물들에 의해 극이 진행되는데,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각자의 사연이 그들의 대화와 독백으로 담담히 보여지는 것 뿐이다.

- 말레이시아에 이민을 왔지만, 말레이시아에 섞이지 않고, 일본에서의 생활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은퇴이민자들. 경치가 훌륭하고, 실내는 항상 쾌적, 친절한 집사...의 역할을 하는 부지배인이 관리해주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그런 생활. 나같은 게으름뱅이에게 딱이겠다 싶;;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딱히 말레이시아가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 마음은 왜인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 감정이 이해가 간다는 점이 조금 쓸쓸하기도 했다. 지금 지내는 말레이시아가 딱히 막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본으로 돌아가기는 싫은 그 마음이.

- 가장 인상적인 배역은 스기하라 치즈코와 하라구치 미쓰루. 스기하라가 자신을 물에 젖은 신문지에 비유해서 얘기를 하는데, 그녀의 마음속 허무와 외로움, 우울이 참 와닿더라. 다음면을 펴고 싶지만, 펼쳐지지 않고 그냥 찢어져버리는 물에 젖은 신문지. 그런 그녀의 우울을 같이 공감해주는 유일한 친구가 히키코모리 출신(?) 하라구치 미쓰루다.
하라구치는 일본에서 히키코모리였으나, 말레이시아에 와서 이민 온 일본인들이 필요로하는 일본 물건을 구해주거나 하면서 지낸다.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건 어색하고 힘들지만, 하라구치가 유일하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치즈코다. 아마 서로의 비슷한 점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게 아닌가 싶다.
하라구치의 대사는 정말 하나 하나 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ㅠ.ㅠ

히키코모리란 게 대개 인생 경험이 적잖아요,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그래서 단순한 꿈밖에 못 꿔요.
누굴 죽이거나, 누가 날 죽이거나, 누가 날 죽일 때가 많지만요.

- 극중에 꿈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세노이 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기억하기 싫은 꿈은 지울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해몽을 하러 관광객들이 모인다고 하는데, 이 극의 제목은 등장 인물 중 이쿠코의 꿈풀이였다.

너의 자리를 지키는 한 잠 못드는 밤은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금 있는 자리가 내가 잠 못드는 일 없는 그런 자리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 못드는 밤은 없지만, 잠 들기 싫은 밤이 있을 뿐이라고 자기 합리화 하며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