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27 (일) 18: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하루 2회 공연의 두번째 공연이었고, 한주차 공연의 마지막 공연이다보니 두탕 뛰어야 했던 배우분들 모두 상당히 힘이 빠져있었다. 하다못해 신영숙 님마저도 1막에서는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2막 솔로곡은 힘내서 불러주셨지만. 그외 앙상블 포함 다들 목소리에서 피로도가 묻어나는 와중에 은릿은 혼자서 또 쩌렁쩌렁. 그 성대의 잠재력이 궁금하다.
피로도는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라, 간혹 배우들이 집중을 못하는 게 보이는데, 그렇다고 극이 망하거나 하지 않은 건, 배우들도 스스로 그걸 아니까, 어떻게든 자기 역량을 쥐어짜고 짜내서 해내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 뮤지컬 햄릿의 서막 장면을 나는 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자체로 암운이 드리운 덴마크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고,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암전도 없이 산만한 공연장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그 순간이 좋다. 그리고 귀곡성을 닮은 여인의 구음과 함께 오른편 성루에 등장하는 햄릿. 핀 조명을 받으며 아버지의, 선왕의 관을 조용하게 슬픔에 잠겨 바라보는 시선에서 극이 시작되는 것도 좋다.
뮤지컬 햄릿이 너무 원색적인 의상으로 조잡해보인다는 소리도 듣지만, 이 장례식 장면의 의상 만큼은 정말 최고다. 여인들의 로브와 각 캐릭터별 개성을 드러내는 남자들의 검은 코트. 그리고 어찌보면 좀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었던 클로디어스의 검은 깃털로 장식된 상복까지, 그로테스크한 장례식 분위기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 엄숙한 분위기에 공기 중으로 청량하게 퍼져나가는 은릿의 첫 일성은 또 얼마나 시리도록 맑고 깨끗한지. 서글프고도 담담히 부르는 '아버지─'가 목소리만큼 처량하게 공기 중으로 사그러드는 그 느낌이 참 좋다.
내가 김성기 폴로니우스보다 김장섭 폴로니우스를 더 애정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장례식 장면에서 원곡대로 노래를 불러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좀 이런 면에서 까다로운지 모르겠는데, 난 배우가 원곡을 자기 편하게 바꿔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박자 놓쳐서 엇박 놓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이제는 슬픔 거두고 이 나라를 생각하자' 라는 부분이 굉장히 저음인데, 김성기 폴로니우스는 그걸 반음 높게 잡고 부르는데, 난 원음의 묵직함을 담아 불러줬으면 좋겠더란 말이지.
- 결혼식 장면에서 마치 혼자 다른 세계 사람인 것처럼 동떨어진 햄릿. 나만 빼고 모두 즐거운, 이런 내가 비정상인가 저들이 미친 건가, 가장 친하다는 친구마저 세상 일은 원래 다 그렇다며, 다 잊고 즐기자고 하니, 저 결벽한 왕자님이 돌아, 안돌아. 어찌보면 세상을 참 피곤하게 사는 타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고고한 자존심마저 내줬다면, 저 왕자님은 자아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타락해버렸겠지.
- 선왕 살해의 꿈을 꾸고 부르는 '피는 피로써'에서 은릿은 오늘 한 마리 상처입은 짐승을 연상시켰다.
'제─발─! 내게 피를 줘─!'
상처가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피 흘리며 미쳐 날뛰다, 온몸으로 울부짖고, 절규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그 핏기서린 목소리로 공연장을 가득가득 채우는데, 난 진심으로 저러다 파열해버릴까 겁날 지경이었다.
- 내가 레어티스는 동레어 태을 레어 반반 섞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건 동레어의 노래에 태을 레어의 연기를 입히면 완전 내 이상의 레어티스 탄생인 거지. 태을 레어의 노래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동레어 목소리와 노래가 더 취향이고, 위에도 썼지만, 난 원곡대로 부르는 걸 더 좋아해서. 태을 레어가 오필리어 장례식 장면에서 '오필리어~ 순결한 내동생' 할 때 '순결한'을 반음 낮춰 부르는 게 내도록 신경쓰인다.
하여간 이러거나 저러거나, 태을 레어티스는 너무너무 동생을 아끼는 오빠 그 자체라, 동레어를 볼 때처럼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난 다른 금기는 모르겠지만, 남매 근친만은 생리적인 혐오감을 떨치기 좀 힘들어서;) 태을 레어가 그저 시스터 콤플렉스 오라버니라면 동레어는 동생이 자기 말고 햄릿을 선택한 게 너무 분하고 (그래, 니가 뭐가 모자라서 햄릿한테 질투를 하겠냐며;) 안타까운 연년생 오빠같달까. 차라리 오필리어를 프랑스로 데리고 같이 유학가지 그랬냐며;
하여간 그래서 나는 태을 레어티스의 캐릭터 해석이 더 마음에 드는데, 집안의 듬직한 아들, 믿음직스런 오빠라는 면에서 그런 것들이 더 잘 표현되어 좋다. Sister 가사가 참 남매 근친을 부추기는 가사로 가득한 탓도 있기는 하지만, '내 목숨보다 귀한 너'라는 가사도 태을 레어가 부를 땐,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라,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린단 말이지.
그리고 오늘 새롭게 보인 부분 중 하나는 폴로니우스가 살해당한 다음 무대가 회전하면서 태을 레어티스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태을 레어티스는 분노 보다는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더 강하게 표현해서 나는 오늘 이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헤어질 때 그렇게 '사랑한다, 내 아들~' 하던 다정한 아버지. 동레어는 여기서 분노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는데, 태을 레어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으며,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휘청거리며 배를 내려온다. '말해요! 살인자가 누군지!' 하는데, 처음 말해요! 부분에서 동레어가 폭발하듯 터트려버린다면, 태을 레어는 저기서도 슬픔에 흐느껴서 절규한다. 그리고 살인자는 햄릿이라고 듣자마자 그 슬픔의 감정이 모조리 분노로 전환되는 걸 보는 것도 짜릿하더라. 동작이 크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레어티스가 느끼는 충격과 분노가 부르르 떠는 전신으로 그 표정과 눈빛으로 객석에 다 전달이 되어서, 역시 노련하구나 싶더라.
레어티스가 품는 복수심은 충분히 공감이 갔고, 그래서 은릿과의 칼싸움은 정말 그 박진감이 대단했다. 동레어가 분노에 미쳐서 힘으로 밀어부치는 편이라면, 태을 레어티스는 진짜 검술로 단련이 된 검사(劍士)같다.
- 이날 공연에서 윤공주 오필리어와 대판 싸워서 이젠 더 이상 희망도 기대도 없다. 오늘은 1막에서 편지 읽는 장면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설레이지 않고, 하나도 사랑에 빠진 소녀 같지가 않은 거니. 그에게 다 주라는 헬레나의 부추김에도 수줍은 연심은 보이지 않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오필리어만 남아있더라. 그뿐인가, 햄릿과의 사랑을 말하는 장면에선 항상 울상을 짓는데, 햄릿이 자기를 사랑하는지도 확신이 없고, 자기가 그를 사랑하는지도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같이 잘 결심은 하게 되었는지 참 미스테리. '어디든 가주오~ 나와 함께~'라며 은릿이 얼마나 절박하고, 애틋하게 오필리어의 위로를 바라고 구하는 데, 그 마음이 오필리어에게 하나도 닿지를 못하고 모조리 튕겨져 나가는 걸 보면서 은릿이 가여워지더라.
'수녀원에 가'에서도, 2막 극중극 장면에서도 오늘은 단 한번도 햄릿 개객끼 소리가 안나왔다. 그만큼 오필리어는 햄릿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햄릿의 절박한 마음을 받아들일 한 치의 틈도 없이, 자기 속으로만 침잠해버려, 자기 연민에 빠져버렸으니까.
클로디어스의 악행을 드러낼 연극을 올리는 극중극 장면. 자기가 벌인 판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그런 계산 같은 것도 할 수 없을만큼 복수에 온 정신이 쏠린 은릿은 오필리어에 매달려서 어떻게든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데, 윤공주 오필리어는 정말 완벽한 마네킹 상태. 그리고 연극이 파장되면서 달아날 때, 오늘 살짝 디테일이 바뀌었는데, 전에는 오필리어를 향해 손키스를 날리더니, 그게 '모두 거짓말로 가려져 있어~' 할 때랑 같은 동작으로 눈을 가렸다가 펼치는 동작으로 바뀌었더라. 거짓으로 가려진 중에 진실을 찾아보라는 의미처럼 생각되지만, 오필리어는 뇌도 청순하셔서. (오늘 진짜 오필리어한테 고운 소리가 안나간다. -_-`)
내가 진짜 윤공주 오필리어와 얼마나 심하게 싸웠냐면, 2막 오필리어 매드씬에서 도대체 뭐 때문에 미쳤는지 묻고싶어지더라니까. 등장할 때부터 눈물 철철 흐르는 오필리어 얼굴 보면서도 그저 자기 연민에 빠져서 신세 한탄이지 싶어서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후 오필리어 장례식 장면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은릿을 보면서 난 은릿의 사랑을 동정했을 정도였으니.
- 결국 복수를 이뤘지만, 자기 자신의 목숨마저 바쳐야 했던 햄릿의 마지막은 오늘도 참으로 처연하고, 아련했다.
- 한 주차 공연도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생생해져서 만납시다.
마성의 은릿은 9만원을 마치 9천원인냥 쓰게 만드는구나. ㅠ.ㅠ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27 (일) 18: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하루 2회 공연의 두번째 공연이었고, 한주차 공연의 마지막 공연이다보니 두탕 뛰어야 했던 배우분들 모두 상당히 힘이 빠져있었다. 하다못해 신영숙 님마저도 1막에서는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2막 솔로곡은 힘내서 불러주셨지만. 그외 앙상블 포함 다들 목소리에서 피로도가 묻어나는 와중에 은릿은 혼자서 또 쩌렁쩌렁. 그 성대의 잠재력이 궁금하다.
피로도는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라, 간혹 배우들이 집중을 못하는 게 보이는데, 그렇다고 극이 망하거나 하지 않은 건, 배우들도 스스로 그걸 아니까, 어떻게든 자기 역량을 쥐어짜고 짜내서 해내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 뮤지컬 햄릿의 서막 장면을 나는 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자체로 암운이 드리운 덴마크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고,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암전도 없이 산만한 공연장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그 순간이 좋다. 그리고 귀곡성을 닮은 여인의 구음과 함께 오른편 성루에 등장하는 햄릿. 핀 조명을 받으며 아버지의, 선왕의 관을 조용하게 슬픔에 잠겨 바라보는 시선에서 극이 시작되는 것도 좋다.
뮤지컬 햄릿이 너무 원색적인 의상으로 조잡해보인다는 소리도 듣지만, 이 장례식 장면의 의상 만큼은 정말 최고다. 여인들의 로브와 각 캐릭터별 개성을 드러내는 남자들의 검은 코트. 그리고 어찌보면 좀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었던 클로디어스의 검은 깃털로 장식된 상복까지, 그로테스크한 장례식 분위기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 엄숙한 분위기에 공기 중으로 청량하게 퍼져나가는 은릿의 첫 일성은 또 얼마나 시리도록 맑고 깨끗한지. 서글프고도 담담히 부르는 '아버지─'가 목소리만큼 처량하게 공기 중으로 사그러드는 그 느낌이 참 좋다.
내가 김성기 폴로니우스보다 김장섭 폴로니우스를 더 애정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장례식 장면에서 원곡대로 노래를 불러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좀 이런 면에서 까다로운지 모르겠는데, 난 배우가 원곡을 자기 편하게 바꿔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박자 놓쳐서 엇박 놓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이제는 슬픔 거두고 이 나라를 생각하자' 라는 부분이 굉장히 저음인데, 김성기 폴로니우스는 그걸 반음 높게 잡고 부르는데, 난 원음의 묵직함을 담아 불러줬으면 좋겠더란 말이지.
- 결혼식 장면에서 마치 혼자 다른 세계 사람인 것처럼 동떨어진 햄릿. 나만 빼고 모두 즐거운, 이런 내가 비정상인가 저들이 미친 건가, 가장 친하다는 친구마저 세상 일은 원래 다 그렇다며, 다 잊고 즐기자고 하니, 저 결벽한 왕자님이 돌아, 안돌아. 어찌보면 세상을 참 피곤하게 사는 타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고고한 자존심마저 내줬다면, 저 왕자님은 자아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타락해버렸겠지.
- 선왕 살해의 꿈을 꾸고 부르는 '피는 피로써'에서 은릿은 오늘 한 마리 상처입은 짐승을 연상시켰다.
'제─발─! 내게 피를 줘─!'
상처가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피 흘리며 미쳐 날뛰다, 온몸으로 울부짖고, 절규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그 핏기서린 목소리로 공연장을 가득가득 채우는데, 난 진심으로 저러다 파열해버릴까 겁날 지경이었다.
- 내가 레어티스는 동레어 태을 레어 반반 섞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건 동레어의 노래에 태을 레어의 연기를 입히면 완전 내 이상의 레어티스 탄생인 거지. 태을 레어의 노래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동레어 목소리와 노래가 더 취향이고, 위에도 썼지만, 난 원곡대로 부르는 걸 더 좋아해서. 태을 레어가 오필리어 장례식 장면에서 '오필리어~ 순결한 내동생' 할 때 '순결한'을 반음 낮춰 부르는 게 내도록 신경쓰인다.
하여간 이러거나 저러거나, 태을 레어티스는 너무너무 동생을 아끼는 오빠 그 자체라, 동레어를 볼 때처럼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난 다른 금기는 모르겠지만, 남매 근친만은 생리적인 혐오감을 떨치기 좀 힘들어서;) 태을 레어가 그저 시스터 콤플렉스 오라버니라면 동레어는 동생이 자기 말고 햄릿을 선택한 게 너무 분하고 (그래, 니가 뭐가 모자라서 햄릿한테 질투를 하겠냐며;) 안타까운 연년생 오빠같달까. 차라리 오필리어를 프랑스로 데리고 같이 유학가지 그랬냐며;
하여간 그래서 나는 태을 레어티스의 캐릭터 해석이 더 마음에 드는데, 집안의 듬직한 아들, 믿음직스런 오빠라는 면에서 그런 것들이 더 잘 표현되어 좋다. Sister 가사가 참 남매 근친을 부추기는 가사로 가득한 탓도 있기는 하지만, '내 목숨보다 귀한 너'라는 가사도 태을 레어가 부를 땐,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라,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린단 말이지.
그리고 오늘 새롭게 보인 부분 중 하나는 폴로니우스가 살해당한 다음 무대가 회전하면서 태을 레어티스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태을 레어티스는 분노 보다는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더 강하게 표현해서 나는 오늘 이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헤어질 때 그렇게 '사랑한다, 내 아들~' 하던 다정한 아버지. 동레어는 여기서 분노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는데, 태을 레어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으며,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휘청거리며 배를 내려온다. '말해요! 살인자가 누군지!' 하는데, 처음 말해요! 부분에서 동레어가 폭발하듯 터트려버린다면, 태을 레어는 저기서도 슬픔에 흐느껴서 절규한다. 그리고 살인자는 햄릿이라고 듣자마자 그 슬픔의 감정이 모조리 분노로 전환되는 걸 보는 것도 짜릿하더라. 동작이 크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레어티스가 느끼는 충격과 분노가 부르르 떠는 전신으로 그 표정과 눈빛으로 객석에 다 전달이 되어서, 역시 노련하구나 싶더라.
레어티스가 품는 복수심은 충분히 공감이 갔고, 그래서 은릿과의 칼싸움은 정말 그 박진감이 대단했다. 동레어가 분노에 미쳐서 힘으로 밀어부치는 편이라면, 태을 레어티스는 진짜 검술로 단련이 된 검사(劍士)같다.
- 이날 공연에서 윤공주 오필리어와 대판 싸워서 이젠 더 이상 희망도 기대도 없다. 오늘은 1막에서 편지 읽는 장면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설레이지 않고, 하나도 사랑에 빠진 소녀 같지가 않은 거니. 그에게 다 주라는 헬레나의 부추김에도 수줍은 연심은 보이지 않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오필리어만 남아있더라. 그뿐인가, 햄릿과의 사랑을 말하는 장면에선 항상 울상을 짓는데, 햄릿이 자기를 사랑하는지도 확신이 없고, 자기가 그를 사랑하는지도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같이 잘 결심은 하게 되었는지 참 미스테리. '어디든 가주오~ 나와 함께~'라며 은릿이 얼마나 절박하고, 애틋하게 오필리어의 위로를 바라고 구하는 데, 그 마음이 오필리어에게 하나도 닿지를 못하고 모조리 튕겨져 나가는 걸 보면서 은릿이 가여워지더라.
'수녀원에 가'에서도, 2막 극중극 장면에서도 오늘은 단 한번도 햄릿 개객끼 소리가 안나왔다. 그만큼 오필리어는 햄릿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햄릿의 절박한 마음을 받아들일 한 치의 틈도 없이, 자기 속으로만 침잠해버려, 자기 연민에 빠져버렸으니까.
클로디어스의 악행을 드러낼 연극을 올리는 극중극 장면. 자기가 벌인 판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그런 계산 같은 것도 할 수 없을만큼 복수에 온 정신이 쏠린 은릿은 오필리어에 매달려서 어떻게든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데, 윤공주 오필리어는 정말 완벽한 마네킹 상태. 그리고 연극이 파장되면서 달아날 때, 오늘 살짝 디테일이 바뀌었는데, 전에는 오필리어를 향해 손키스를 날리더니, 그게 '모두 거짓말로 가려져 있어~' 할 때랑 같은 동작으로 눈을 가렸다가 펼치는 동작으로 바뀌었더라. 거짓으로 가려진 중에 진실을 찾아보라는 의미처럼 생각되지만, 오필리어는 뇌도 청순하셔서. (오늘 진짜 오필리어한테 고운 소리가 안나간다. -_-`)
내가 진짜 윤공주 오필리어와 얼마나 심하게 싸웠냐면, 2막 오필리어 매드씬에서 도대체 뭐 때문에 미쳤는지 묻고싶어지더라니까. 등장할 때부터 눈물 철철 흐르는 오필리어 얼굴 보면서도 그저 자기 연민에 빠져서 신세 한탄이지 싶어서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후 오필리어 장례식 장면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은릿을 보면서 난 은릿의 사랑을 동정했을 정도였으니.
- 결국 복수를 이뤘지만, 자기 자신의 목숨마저 바쳐야 했던 햄릿의 마지막은 오늘도 참으로 처연하고, 아련했다.
- 한 주차 공연도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생생해져서 만납시다.
마성의 은릿은 9만원을 마치 9천원인냥 쓰게 만드는구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