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20 (일) 14: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이정화,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이정화 오필리어, 많이 애정합니다~
10월 30일 이후로 20여일만에 오른 무대인데, 오필리어의 감정선을 제대로 잘 유지하고 있었다. 윤공주 오필리어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볼 때마다 참 과유불급, 너무 차고 넘쳐서 그게 나랑은 잘 맞지 않는다. 그리고 정화 오필리어가 얼터라는 걸 감안해서 내 기준이 관대해진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사톤도 억지로 어린애 목소리를 내는 윤공주 씨에 비해 이정화 씨가 훨씬 자연스럽다. 굳이 어린애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발랄함 같은게 사랑에 빠진 어리고 순진한 아가씨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헬레나 이미경 배우와 케미도 훨씬 여고생다운 깨방정에 발랄함, 사랑에 빠져서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 이미지에 너무 잘 어울리더라.

그리고 레어티스와 함께 하는 Sister에서 윤공주 오필리어와 이정화 오필리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빠, 그는 나를 진정 사랑해' 부분. 너는 지금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오빠의 충고에 그렇지 않다며, 우리 사랑은 진심이라고 설득하는 저 가사에서 윤공주 씨는 흔들리는 눈빛에 슬픈 표정을 하고있는데, 그게 오빠가 자신의 사랑을 부정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도 햄릿이 자기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면서 오빠를 설득하려니 저런 표정이 나오는 거 같다. 그에 비해 이정화 오필리어는 동생 걱정으로 불안한 표정의 오빠를 바라보며 생긋 웃으면서 오빠를 안심시킨다. 그는 나를 진정 사랑해라는 말에도 햄릿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진다. 뭐, 그런 오필리어니까 오빠가 걱정도 되고 하는 거겠지만.

그리고 애절하게 레어티스와 이별하고 곧바로 햄릿과 만나는 장면에서도 이정화 오필리어는 오빠와 이별은 슬펐지만, 우연히 햄릿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를 만났다는 설레임에 가슴 떨려하는 소녀의 모습을 제대로 잘 표현해줘서 좋더라. 햄릿의 모습을 살피면서 자기 마음을 고백하며 다가가는 장면이, 아 정말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이구나 싶어서 사랑스러웠다.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 여기서 윤공주 씨는 감정선이 너무 무겁다. 자기 희생쪽에 더 무게를 실어서 정말 처녀 제물같다니까. 그리고 정화 오필리어는 확실히 윤공주 씨에 비해 적극적으로 리드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그것도 마음에 들었고. 사랑에 빠져 오로지 내 눈앞에 당신 밖에 안보여 상태라는 게 확실하게 보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오늘 은릿이 오필리어에게 지어주는 미소가 또 그렇게 달달할 수가 없더라.

'수녀원에 가' 넘버에서 정화 오필리어는 윤공주 씨에 비해 동선이 길다. 이건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겠지만, 하여간 좌우로 이동하는 동선이 평소 호흡보다 길어서 이쯤이면 뒤에서 붙잡아야하는데 라는 박자보다 한 박자 늦어지니까, '이게 누구신가~'하는데 은릿이 살짝 엇박으로 시작을 했지.

이후에 극중극 씬에서의 이정화 오필리어의 연기도 참 좋은게, 바로 전에 만났을 때 '수녀원에나 가'라고 폭언을 듣고 헤어진 다음인데, 햄릿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기 옆에 앉아 무릎위에 팔을 올려놓으니 밀어내는데, 햄릿이 우악스럽게 끌어안자, 얘 뭐야~ 하면서도 햄릿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리고 극을 바라보는 햄릿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그 와중에도 햄릿을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거다. 햄릿이 복수에 정신이 팔려서 오필리어에게서 떨어져 걸어갈 때도 햄릿을 시선으로 쫒으며 왜 저러는 걸까 하는 표정. 사랑에 빠진 철없는 소녀였던 오필리어가 사랑의 상처를 입고, 조금은 성장한 걸까.

2막 실성한 오필리어가 등장하는 씬에서도 내가 상상하던 오필리어가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어~ 라며 감격 ㅠ.ㅠ 머리에 화관이나 그 꽃덩굴 주렁주렁 단 옷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그냥 얼굴만 보면 딱히 미쳤다는 느낌 안 드는 지극히 온화하고 예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다. 그 얼굴 어디에도 슬픔이나 그늘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좀 이상한데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저 평온한 얼굴이 실성한 걸로는 안 보이는 거지. 그러다 갑자기 클로디어스를 보고 '아빠─ 이것 봐'라고 입을 떼는 순간, 제정신이 아니구나 확신하는 거다. 정화 오필리어는 먼저 눈물 흘리거나, 슬픔의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에 빠져있는 가련한 여인인 거다. 그래서 더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거다.

쓰다보니 오늘 후기는 이정화 오필리어 찬양글이 되버렸는데, 다음에 만약 뮤지컬 햄릿이 또 올라온다면, 그때는 제발 신인 여배우 발굴해서 기용해주길 바란다. 정화 오필리어가 좀 더 회차가 많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ㅠ.ㅠ

- 은릿은 뭐 따로 언급할 것도 없이 매 공연 레전드. 목금토일 4일 연속 공연이 벌써 2주째 이어지다보니 성대의 피로도가 슬슬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질러줘야하는 부분에선 뻐렁치게 질러주니 참 대단. 오늘 공연 끝나고 원래라면 내일은 쉬는 날이어야 했지만, 내일도 노담콘이 잡혀서 다음주도 쉽지 않겠구나.

+ 어제 불꽃검이 합이 안맞는다고 그랬는데, 오늘은 다시 그냥 보통검으로 돌아왔다. 불꽃이 튀면 좀 화려한 맛이 있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칼 때문에 배우들간에 합이 맞지 않는 거라면 불꽃을 포기하고 박진감 쪽을 선택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부상의 위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