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08 (화)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지난 주 일요일 저녁공 이후에 또 뭔일이 있었던 걸까. 은릿은 오늘 완벽한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돌아왔다.
결혼식 등장 씬에서부터 분노의 오라가 온 몸을 휘감고 있더니만, 선왕 살해의 진실을 꿈에서 알게된 뒤에 보여준 그 증오와 분노로 터져버릴 듯한 그 감정의 폭풍이라니. 눈빛은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분위기는 스치기만 해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 오늘의 은릿은 내부에 쌓인 에너지가 임계치까지 올라가 어떻게든 폭발하기 전에 제어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걸 더 증폭 시켰던 게, 아니 고작 월요일 하루 쉬고 돌아왔다고, 목청이 쩌렁쩌렁 성량이 정말 장난이 아닌 거다. 질러야 하는 부분에선 지붕 날려버릴 것 같이 쭉쭉 뻗어올려주지, 가늘지만 힘있게 불러야하는 부분도 오늘은 그 후음의 에너지가 더 뻗어나갈 여력이 있지만, 애써 갈무리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 선왕의 장례식으로 시작되는 뮤지컬 햄릿. 오른쪽 성루에 올라 슬픔에 젖어 선왕의 관을 바라보는 은릿. 환청처럼 햄릿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고, 곧 장례식이 시작된다. 왕의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은 아직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데 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왜 나야~' 한탄하는 거트루트. 그 뒤로 아버지를 추모하는 은릿의 슬프도록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왜 가셨나며 슬퍼하는 은릿의 목소리를 이어 '이제는 슬픔 거두고 이 나라를 생각하자'는 폴로니우스의 노래가 이어진다. 장례식에서 거행된 새 왕의 대관식. 클로디어스의 머리에 왕관이 쓰여지고, 모두 무릎을 꿇고 새 왕을 맞이한다. 은릿은 왕관이 클로디어스의 머리에 쓰여질 때까지도 바라만 보다가, 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그를 왕으로 받드는 장면에서 분노의 감정을 보인다. 자신의 것이어야 했을 왕관이 삼촌에게 돌아간 것보다, 그를 왕으로 받드는 사람들에게 더 분노한 것 같다고 할까. 저들이 어제까지 내 아버지를 왕으로 떠받들던 사람들이란 사실에 여기서부터 은릿의 인간불신이 더 깊어지지 않았나싶다.

- 장례식 후 바로 이어진 결혼식. 사랑 오직 사랑을 외치는 하객들을 바라보며 조롱의 손키스를 날리던 은릿이 오늘은 그 동작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지켜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저승사자 처럼 등장하는데, 오늘은 등장부터 반항기 가득한 포즈에 클로디어스를 노려보고 있더라. 그래도 어머니가 먼저 맞아주니 대놓고 깽판을 치지는 못하고 진짜 마지못해 결혼식에 왔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는 결국 '이딴 건 사랑도 아냐!'라며 찬물을 끼얹고 나가버렸다.

- 연회장을 나선 은릿은 끓어오르는 짜증을 주체할 수가 없다. 존경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충분한 애도의 기간도 없이, 어머니는 삼촌과 결혼했고, 그 삼촌에게 왕관도 빼앗겨버렸다. 이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나서 부르는 '왜 나야.' 그렇게 찡찡대다가 덴마크 국민들을 향해서 니들도 알아야지 라는 듯이 객석을 싹 훑으며 이 나라는 썩어가고 있다며 냉소한다. 이미 더럽혀진 왕좌. 그런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만은 같이 썩어가지 않겠다는 듯이 분노한다.

- 어쩌다 보니 지난 주에 만나지 못했던 김장섭 폴로니우스. 오늘 레어티스를 훈계하는 장면에서 몇 번이나 가사를 씹으시던데, 화요일이라 그러셨나요;

- 레어티스의 절절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햄릿에게 다가가는 오필리어. Let's rise above this world에서 은릿은 정말 망설이고 망설이다 '사랑해─'라고 내뱉는데, 그 유약한 목소리에 담긴 내가 정말 이래도 되는걸까 하는 감정과 그래도 오필리어라도 곁에 있기에 이 짜증나는 현실을 견딜 수 있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고백에 오필리어는 환하게 웃지만, 은릿의 표정은 아프기만하다. '어디든 가주오~ 나와 함께~'에서 느껴지는 은릿의 절실함, 절박함이 과연 오필리어에게도 닿았을지는 좀 의문이지만. 오필리어는 햄릿이 사랑한다고 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머릿속이 가득찬 것 같아서.

- 선왕 살해의 진실을 알게 되고, 미쳐서 날뛰는 은릿은 오늘 전에 없이 분노와 증오의 감정에 완전히 휩싸여서 무대에 그 독기를 마구 뿜어냈다. 진짜 그 분노의 감정에 압도되어서 무서울 정도였다. 성루에 올라 '제발 내게 피를 줘!'라고 외치는데, 만약 그 손에 단검이 들려있었으면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목을 그어버렸을 것 같은 자기 파괴적인 분위기. 오늘도 이 장면에서의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해내는 절규에는 전율이 일었다.
귀도 즐겁지만 이 장면에선 눈도 참 황홀해서. 특히 바닥을 치며 분노하는 장면에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세세하게 잡힌 잔근육들이 떠올라서 쇄골에서부터 어깨로 이어지는 승모근이 얼마나 예쁜지. 가슴 근육 갈라진 선도 예술이고. 하여간 이 장면에서 은릿 벗은 상체만 쳐다보니라 성벽에 비치는 영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 햄릿의 이상 행동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폴로니우스의 'He's crazy' 넘버에서, 은릿은 오른쪽 성루에 올라 폴로니우스와 거트루트, 클로디어스를 내려다보는데, 폴로니우스가 오필리어에게서 뺏은 편지를 꺼내면 은릿은 깜짝 놀라 황당해하다가 뭐라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듯 성벽에 팔을 올려놓고 지켜본다. 그러다 폴로니우스가 햄릿은 미쳤다며 조롱하자, 객석을 향해 썩소를 지어보이고는 뒤돌아 성루를 벗어난다. 마치 당신들도 그렇게 생각해? 라는 듯. 생각해보니, 원작의 햄릿은 스스로 미친 척 연기를 하는 거지만, 뮤지컬 햄릿에서 햄릿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미친 연기를 하게 되는 게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이지만, 여기에서 은릿은 저 편지를 오필리어가 폴로니우스에게 준 거라고 오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원작에선 오필리어가 폴로니우스에게 그 편지를 가져다 주지만, 뮤지컬에서는 폴로니우스가 빼앗아갔으니까) 그래서 오필리어에게 어떤 배신감 같은 걸 느낀 게 아닐까 하고. 그게 아니라면 이 뒤에 '수녀원에 가'에서 보여주는 그 정나미 떨어지는 행동이 좀 설명 부족이라서.

햄릿이 오필리어와 재회하고 수녀원에나 가라며 3번을 뿌리치는데, 첫번째 수녀원에 가! 라고 한 뒤 뒤돌아서 괴로워 하다가 오필리어가 붙잡자 표정을 싹 굳히는데, 그게 진짜 찰나에 표정 변화라, 다시 한 번 사랑은 없다며, 자기가 오필리어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주며, 네가 이걸 네 아비에게 갖다주지 않았냐며 책망하듯 편지를 구겨서 떨어뜨리고는 또 뒤돌아서 절절하게 '아직 사랑~ 너 그렇게 꿈꾼다면~'하고 부르는 목소리엔 또 괴로운 심정이 절절이 배어있다. 성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다가도 오필리어를 향해 몸을 돌리면 조롱과 냉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수녀원에 가라며 자리를 뜬다. 이만하면 정이 떨어질만도 한데, 오필리어는 아직도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아, 필사적으로 햄릿을 쫒아가 '이건 사랑─'이라며 그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하지만, 여기서도 은릿은 단호한 결심을 하고 뒤돌아 오필리어, 이건 꿈이 아냐~ 라며 진짜 정나미 뚝 떨어지게 수녀원에나 가라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폴로니우스와 거트루트, 클로디어스가 숨어있던 커튼을 잡아 뜯는데, 그게 은릿이 처음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은게, 커튼 뒤의 그들을 발견하고는 오필리어를 한 번 쳐다보며 짓는 표정이 '너도 저들과 한통속이구나.'라는 것 같거든.
그리고 그 뒤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은릿의 감정에는 오필리어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죄책감보다는 오필리어마저 자신을 배신했다는 고통이 더 큰 것 처럼 보인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복수와 분노, 증오, 배신감 등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사는지,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길을 잃어버렸다는 은릿의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래도 오필리어한테 개객끼인것만은 변함없다.

- 자기가 짊어진 진실의 무게가 감당이 안되어, 혼란스럽고, 진짜로 미치기 일보 직전일 때, 호레이쇼가 나타나 어떻게 해야 널 위로할까~ 라는데, 아우, 진짜 이 둘의 "불타는"우정이란; 오늘 호레이쇼의 '너의 고민을 내게 말해봐!'가 처음으로 윽박지르는 투에서 호소하는 투로 바뀌어서 마음에 들었다. 부디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주세요.
때마침 등장한 유랑극단을 맞이해 은릿은 클로디어스의 악행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지 계책을 짠다. 이 부분의 해석이 오늘 대박이었던 게, 은릿은 시종일관 분노하고 감정을 터트리지 못해 안달난 상태였는데, 그 감정선을 여기까지 쭉 끌어올려서 '오늘 밤을 위해'에서 터트려주는 거다. '이 밤을 즐기자~' 하면서도 이미 그 안에 담고 있는 감정은 온통 분노와 증오. 그래서 알았다. 아, 은릿은 유령의 말이 진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연극을 꾸민 게 아니구나. 이미 확신에 가득차 있으면서 어떻게 그걸 세상에 알리고,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할까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차 있구나 싶더라.
그래서 1막의 피날레 부분에서도 노선이 확 달라져 있었는데,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이 다 거짓으로 드러난 현실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속에 쌓인 분노의 에너지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서 그 감정이 은릿을 그대로 집어삼켜버린 느낌.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즐겨."라는 가사가 전에는 자신에게 혹은 관객에게 던지는 말처럼 느껴졌는데, 오늘만큼은 클로디어스를 향해 지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곧 복수해주마─ 로 들리더라. 어우, 참 매 공연 이렇게 디테일이 달라지니, 내가 회전문을 돌아 안 돌아;
(1막 까지의 감상을 이렇게 길게 쓰다니;; 이게 다 tistory 점검 때문이다!!! 어제밤에 다 쓰고 잤으면 졸려서라도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을 건데, 갑자기 시스템 점검 따위 해버리고!!! 오늘은 작정하고 스압이다, 췟!)

- 분노의 화신으로 1막을 끝내고 2막의 시작. 1막의 감정선을 어떻게 끌고 들어와서 시작할 것인가. 2막은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넘버로 시작하는데. 오늘도 사느냐 죽느냐는 그냥 평소대로 가는가 싶었는데, 또 미묘하게 달라져 있더라. 가라앉히려고 노력은 하는데, 여전히 그 폭발할 듯한 감정의 여운이 남아있어서 그걸 어떻게든 미성으로 컨트롤해서 후음에서 크레센도로 뽑아내는 듯.
연극을 올리고, 오필리어 옆에서 복수로 머리가 가득차있는 햄릿은 오늘따라 참 눈빛 마주치기 무서울 정도라서, 바들바들 떠는 오필리어가 너무 처량해보였다. 오늘 오필리어는 햄릿한테 마음 닫았다고 해도 용서가 될 정도였으니. ㅠ.ㅠ
클로디어스의 동요를 확인하고 마치 환희에 찬 듯 짓는 썩소가 은릿의 심리 상태를 대변해준다. 그러니까 은릿은 확신범이었다고. 유령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 지난 주 내내 범사마 클로디어스를 영접하고 나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윤 클로디어스. 노래 실력과 별개로 클로디어스 넘버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캐릭터 설정도 좀 찌질한 클로디어스라서, 그래도 다른 배우들 로딩되는 걸 지켜보면서 지금쯤이면 좀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늘 Chapel을 보고 윤 클로디어스와 화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싶더라. 이게 클로디어스의 가장 중요한 솔로곡인데, 뭐라고 해야하나 클로디어스가 품은 복잡한 감정이 그냥 찌질함 하나로 다 표현이 되버려서 ㅠ.ㅠ

- Chapel에서 클로디어스를 죽이려다 기도하는 모습에 마음에 흔들려 뒤돌아 선 햄릿은 그길로 어머니 거트루트에게로 달려가는데, 이 부분의 설정을 바꾼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전에는 그냥 무작정 달려들어왔다가 거트루트가 '햄릿, 내 아들, 자랑스런 내 아들~' 하며 너를 사랑한단다, 걱정한단다 다독여주면 햄릿이 그냥 뒤돌아 나가는 제스춰를 보이는데, 그럴거면 '어머니'를 세번이나 불러가며 왜 뛰어 들어왔냐 싶어서 의아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클로디어스를 죽이려고 빼든 단검을 그대로 들고 뛰어 들어와, 어머니가 자신을 안아주려 하자, 검을 내려다보면서 아,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하며 뒤돌아서는 게 납득이 됐거든. 그러다 어머니가 요즘 네가 웃음을 잃어 마음이 아프네, 내가 어찌해줄까 하니까 한순간에 홱 돌아가지고, 칼을 바위에 꽂는데, 그 장면도 전에는 참 뜬금없다 싶더니, 이번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져서, 이렇게 바꾼 게 더 낫더라.

- 클로디어스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그런데 아직 진실에서 눈을 돌리냐며 거트루트를 무섭게 몰아치며 책망할 땐,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처럼 살벌하게 굴더니, 거트루트가 '네 아버지는 훌륭한 왕이셨지만, 우리의 결혼은 불행했단다~'라며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할 때는 또 한없이 작은 어린 아이가 되어서 찡찡대는 은릿.
거트루트가 햄릿을 설득할 때 매번 '너도 이제 아이가 아니잖니.'라는데, 여왕 폐하, 쟤는 아직 애새끼라서요; 어머니를 이해하고도 싶지만, 거트루트의 행동이 그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기는 은릿은 어머니한테 진실을 보라며 행패. 그러더니 커튼 뒤에 숨은 누군가가 클로디어스라고 생각하고 단검으로 찌르는데, 찌르고 난 뒤에 연기도 오늘 살짝 바뀌었더라. 전에는 복수했노라 유령 아버지(라고 쓰고 태권브이라고 읽는다;)에게 자랑스레 칼을 내보이던 것에서, 오늘은 힘이 풀린 듯 칼을 내 보이며 휘청거리는데, 그 미묘한 변화가 참 좋았다.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던 증기압이 그 사건을 계기로 탈출구를 찾아 서서히 내압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할까.
하지만, 이 뒤에 보여주는 연기는 좀 더 감정선을 다듬어야 할 것 같다. 우발적 살인이었고, 손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란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그게 살인에 대한 공포인지, 죄책감인지 정리가 안된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폴로니우스라는 걸 알게 된 뒤에 보여주는 행동도 노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원작의 햄릿은 폴로니우스를 죽인 것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마치 자업자득이라는 식으로 구는데, 뮤지컬 햄릿이 원작의 햄릿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여기서 햄릿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어느 정도 정리하지 않으면 이 뒤의 무덤지기 장면, 오필리어의 장례식 장면에서의 햄릿의 캐릭터에 혼동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 태을 레어티스의 연기에 동석 레어티스의 목소리를 입히면 딱 좋겠다 싶다. 레어티스 넘버들이 고음이라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는데, 이게 꽤 고음이었던 모양이다. 강레어는 고음을 참 힘겹게 쥐어짜듯 내서 불안불안 하더니, 오필리어가 죽을 때 '안돼~~~~~~~~~~~~~'에서 장렬히 삑사리가 났다. ㅠ.ㅠ 그리고 동레어는 오필리어가 떨어지려는 순간 긴박하게 안돼~라고 하는데, 강레어는 이미 떨어진 다음에 안돼~라고 해서 둘이 시간차가 좀 나는데, 이건 동레어 쪽이 더 마음에 든다. 하여간에 둘 다 참 비주얼적으로 훈훈한데다 서로 장단점이 다 있어서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줄 수가 없구나.

- 2막의 실성한 오필리어는 언젠가부터 이미 눈물 한 가득 담고 등장하더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지난 주 후반부터였을까. 미치고 싶지만 미치지 못해서 미친 척 하는 딱한 오필리어. 내가 윤공주 씨에게만 유난히 엄격한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는데, 난 이렇게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가 앞서 나가 먼저 울어버리면 오히려 냉정해져 버려서; 그 눈물은 참 슬프고 애처롭지만, 그 눈물의 의미가 오필리어가 자기 처지를 슬퍼하며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오필리어를 불쌍하게 여기는 배우 윤공주 씨가 흘리는 눈물 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근처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걸 보면 내가 너무 냉정돋게 관찰하는 것 같기는 하다만. 하긴 첫 등장할 때부터 일부러 초점 흐린 눈동자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나한테는 이 모든 게 그냥 겉도는 것 같다.

- 오필리어의 장례식에서 은릿은 점점 더 오필리어의 죽음을 슬퍼하고 이제는 '함께 죽겠어'라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느껴질 정도까지 감정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당장의 감정은 진심이라고 이해가 되지만, 앞에서 보여준 행동이랑 전혀 맞지가 않아서,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얼마나 사랑했는데~' 라고 하느냐고. 뭐 연출상의 문제기는 하지만, 햄릿이 정말 오필리어를 사랑하기는 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러브씬도 아니고, 수녀원에 가라고 한 다음 괴로워 하는 그 찰나의 표정으로 밖에 표현이 안되는 거니 ㅠ.ㅠ

-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에서부터 거트루트의 독살, 그리고 몰살(;)로 이어지는 연출은 긴장감과 그 박력에 있어서는 몰입도가 최강이지만, 난 여전히 아쉽다. 거트루트가 독배를 드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자살로 밖에는 안 보여서. 그리고 햄릿의 팔을 살짝 그어버린 이후에 레어티스가 마치 바람 빠진 풍선 처럼 변해버리는 것도 너무 급작스러워서 불만이지만, 워낙 이 부분이 폭풍 전개라 토를 달기도 그렇고.
클로디어스가 이 모든 흑막에 관여했다는 걸 알게된 후 내지르는 "클라우디우스!"는 진짜 뱃속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사자후와도 같다. 그리고 연이어 터져나오는 '덴─!마크여~ 알고있나, 이 나라의 왕은 독으로 죽는다─'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거다. 독이 퍼질대로 퍼져 썩어가는 덴마크를 정화하는 불꽃과도 같은 일성이다.

- 뮤지컬 햄릿을 보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빡빡하게 회전문을 돌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은릿은 볼 때마다 한 고개, 한 고개 넘고 있는 게 보여서 그만둘 수가 없다. 초연때 이미 상당 부분 캐릭터를 완성시켜 왔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살을 붙이고, 섬세하게 디테일을 살려 조각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막공 때까지 어떤 신의 한 수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덴당, 농담이 아니라, 아차산 지박령 확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