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보고나서 저렇게 혹평을 쏟아놓고,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바뀌냐 싶겠지만, 사실 쥐떼만 자체 스킵하면 꽤 괜찮은 뮤지컬이라;;; 내가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연출을 까기는 했지만, 뭐 그런 빈 구멍도 메꿔주고 채워주는 배우들의 호연과 음악에 낚여낚여 내 발길은 자꾸 세종으로 향하더라. 아, 그렇다고 전관을 찍은 건 아니다;;
아무리 애정하는 배우가 멋진 연기와 노래를 선보인다고 한들, 감탄스런 앙상블들이 나온다고 한들, 병맛인 내용이 바뀔리도 없는데, 그래도 이게 자꾸 보다보니 정이 들더란 말이지. 그러다보니 출구로 들어가서 나오지도 못하고;;
아니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박은태의 노랫 소리에 홀렸다고 하는 편이 정직하겠다. 진짜 살구나무 가지 위에서 부르는 첫 일성이 터지자마자 가슴이 두근두근.
꿈처럼 누가 날 불러 봄꿈에 젖었네
나비와 노래에 취해 꽃등을 달고 가네
- 홍랑과의 첫 만남에서 그녀를 보고 부르는 김생의 시
김생이라는 역에 맞춰 사극톤의 대사를 아주 찰지게 치는데, 대사톤만 그런 게 아니라, 노래하는 발성법도 타령조를 살짝 섞어서 아주 제대로 가락을 탄다. 게다가 남자 뮤지컬 배우 중에 정말 드물게 곱고 청아한 미성을 가지고 있어서, 고음으로 깨끗하게 올라가고, 성량이 부족하다는 꼬리표를 이제는 떼어도 좋을만큼 파워가 붙어서 후음의 울림도 풍부해졌다. 성악 레슨을 꾸준히 받는다고 하더니, 진짜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참 내 마음에 드는 담백한 창법도 좋다. 과도한 꺽기, 바이브레이션 이런 건 진짜 취향이 아닌데, 정말 딱 듣기 좋을 정도로 기교를 부려 정직하게 부르는 노랫 소리가 귀에다 사이다를 부은 것 처럼 청량하다.
덕분에 참 매일같이 세종으로 출퇴근하게 만든 그 기록;
110823 - 프리뷰 공연만의 레어템은 두가지. 염라대왕과 술내기 바둑 한 판! 할때, 바둑알로 바둑판을 내려치는 것 같은 효과음. 이날 뿐이었다. 그리고 커튼콜에서 은생이 은랑한테 살구가지 건넬때, 소맷부리에서 뿅 하고 꺼낸 살구꽃 가지에 하닥하닥. 진짜 딱 그날 뿐이었음. ㅠㅠ
일단 영상 찍어주신 분, 제 절을 받으세효~ (_._)
대략 3분 30초쯤 부근인 거 같은데, 아우 은생-은랑 커플 아주 달달달 꿀물이 흘러넘친다.
정은랑, 우리 선녀님 '어디서 왔을까~'할때 고개 살짝 외로 꼬면서 눈 살짝 치켜뜨고는 다정하게 묻는 거 아주 녹아내리겠음. ㅠㅠ 그리고 작업남 은생, 깜짝 이벤트로 '갑자기 찾아와~' 하면서 진짜 갑자기 소맷부리에서 살구꽃 가지 뿅하고 내미는데, 은랑 선녀님 진심으로 깜짝 놀라서 즐거워하시는 표정이 얼마나 곱고, 아름답고, 선녀돋고, 영롱하고 어여쁘신지ㅠㅠ
어우, 내가 진짜 은생에 발려서 회전문은 돌았지만, 은랑님께 홀랑 반해서, 난 여잔데, 은랑님이 둏소!!!!!!!!!!
내 정체성 어쩔;;
110824 - 초반에 하울링이 좀 울렸고, 푸른 원피스의 김보근 배우님 무대 오른쪽 끝에서 처음으로 넘어지셨음.
110825 - 1막 마지막 인연은 깨어져~ 하는데, 행매님 마이크 안나와서 그냥 생목으로 1절을 그냥 치셨음. 근데도, 참 1층 객석에서는 참으로 또렷하게 들리던 노래. 양희경 씨 목청에 감탄했다.
110826 밤공 - 첫 2회 공연일의 두번째 공연이라 자잘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음. 얼치기 4인방 등장씬 다 생목으로 대사 쳤고, 2막 초반 살구나무와 등장한 은랑도 '언제나 오시려나' 생목치고. 무엇보다 행매님이 2막 '숨어라 사랑아'에서 한 소절 더부르는 바람에 뻐꾹이 커플, 여 앙상블님이 당황해서 노래없이 오케 반주만 흐르던 짧은 순간. 그걸 한 소절 건너뛰고, 순택 배우가 재치있게 넘겨서 다행.
110827 밤공 - 은랑 아가씨의 분홍 저고리, 분홍 치마를 봤음. 이것도 단 한 번 뿐이었던 레어템. 드디어(?) 창고씬에서 쥐모형과의 대화가 좀 줄었다. 얼치기 넘버까지 가는 건 좀 지루하다싶더니, 그냥 몸통 얼룩과 꼬리 얼룩이 서로 섞일 수 없다는 대사에서 끝내서 참 다행. 커튼콜 때 객석에서 준상이를 발견하고 활짝 웃는 은태 배우를 볼 수 있었음.
110828 - 푸른학에서 마지막 우는 데~~~~~~~~~~~~~~~~~~~~를 오케보다도 길게 뽑은 은생. 쥐 모형 등장하는 씬에서 한동안 숨을 몰아쉬더라.
110830 - 2주차 공연 들어서면서 연출이 조금씩 바뀌었다. 사물놀이패 장면이 좀 짧아졌다. 다행이다. 무대의 흥이 객석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지만, 어쩌랴. 2막에서 홍생 등장 전에 홍랑 나오는 동선이 원래 왼쪽 → 오른쪽이었는데, 홍생과 통일성을 주려했는지, 오른쪽 → 왼쪽으로 바뀌었더라. 그리고 아침이 오지 않으리 이후에 행매가 '잘 가시게~'라며 대사를 하는데 그 부분 싹 빼고 바로 한천년으로 이어지는데, 나는 이게 더 나은 거 같아. 수미쌍관에 행매의 회상이었다는 게 더 잘 드러나서. 그리고 마지막에 행매가 살구나무 둥치에서 죽는게 아니라 아예 사라진다는 설정으로 바뀐 것도 좋더라.
110831 - 2막 초반에 행매님이 대사 실수가 있었다.
2막 첫 부분.
중간계에서 깨어난 김생과 혼령이 되어 나타난 홍랑이 서로 스쳐가고, 행매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데, 행매가 홍랑의 자결을 알려주고, 그럼 김생이 그럴리 없다며 부정하는 대사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날따라 감성이 넘치신 행매님은 자네와 그 아가씨의 이생에서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고, 이 불쌍한 사람, 하지만 자네는 힘을 내어 살아야 한다...고 넘어가셨더랬다.
한 순간이지만, 행매님도 살짝 당황하셨는지, 대사를 중언부언 이어가셔서 - 그래서 내가 자네를 이리로 데려온걸세 까지 가셨지;;
은생이 대사칠 타이밍을 놓치고 행매가 저만큼 나가버렸는데 이걸 어찌 하려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와우~ 박은태 언제 이렇게 노련한 연기자가 되었나.
저렇게 헝클어진 사이에 '지금 내게 홍랑이 죽었다는 거요!'라며 감정선을 흐트리지 않고 다시 원래 대사가 나올 수 있도록 되돌리더라.
그래서 행매가 '자네가 죽은 줄 알고 자결을 했네.'라고 하고, 은생은 드디어 '그럴리 없소. 날 더러 그렇게 살라고 하던 홍랑이 그럴리 없소!' 라고 원래대로 진행할 수 있게 돌려놨다.
110901 - 푸른 원피스의 김보근 배우님, 이번엔 커튼콜에서 지난 번과 같은 자리에서 또 넘어지셨음. 날짜는 기억안나지만, 다른 날 남자 앙상블 한 명도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는 걸로봐선, 요주의 자리가 있는 모양.
홍남매의 감정선, 노래가 포텐 터진 날이면서 개인적으로 이 날 은생은 분노의 감정이 증폭되어, 커튼콜까지 분위기 싸늘했던 날.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는데, 공연 내도록 그 싸늘함이 계속 유지되고 있더라. 커튼콜에서 마저 그렇게 냉기가 풀풀 넘치는 걸 처음봐서 개인적으론 좀 의아했더랬다.
110902 밤공 - 자체 첫번째 레전드를 찍은 날이며, 처음으로 1층 앞열에서 기립이 나온 날. (프리뷰때도 기립은 몇몇 있었지만, 1층 뒤쪽이었고, 행매님 나오실 때부터였지.) 홍생이 토사구팽 rep.에서 대청마루를 내려오다 미끄덩했지만, 노래엔 흔들림이 없고 아주 매끄럽게 넘겨서 임현수 배우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은생이 칼맞고 끌려가는 걸 은랑이 눈을 못떼고 바라보다 무릎 걸음으로 쫓아가는 디테일 추가되면서 두 연인의 비극이 더 크게 다가왔음.
110903 낮공 - 레전드급 관크의 날. 문화 바우처 행사로 인해 R-VIP, R석 잔여석이 0석이었던 이날. 전날 첫 기립이 나와서 기대하고 간 공연이었건만, 기침에 대화에 벨소리, 아기 울음소리, 게다가 창고씬 내내 들리던 괴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선 붙잡고 집중하고 몰입해서 푸른학을 부른 은생에게 애도를. 그래도 이 날 살구나무 가지가 은생 머리카락을 뽑아가는 바람에, 토사구팽에서부터 봉두난발의 은생이라는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이 위로 아닌 위로. 머리를 흐트리고 색기를 얻었으니, 이만하면 남는 장사....쿨럭;;
110904 - 은생 + 선영랑. 개인적으로 선영랑 자체 첫공. 별다른 사건 사고는 없었고, 선영랑이 은랑보다 체구가 작다보니, 무대 위를 이동할 때 좀 더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했다는 게 기억에 남음. 동선 범위도 좀 작은 편이라, 토사구팽 넘버 끝나고 홍랑 등장할 때 좀 늦게 등장하더라. 그리고 이날은 토사구팽 - 푸른학은 또 그냥 상투 머리.
110906 - 처음이자 마지막 사인회가 있던 날. 2일 한 번 레전드를 찍고나서는 배우분들이 막공 주간 내내 물이 오를대로 오른 농익은 연기들을 보여주심. 이 날의 사고라면 2막 숨어라 사랑아 이후에 전차가 렉이 걸려서 전차 퇴장이 늦어졌다는 거. 반대편 턴테이블에선 은랑님이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꿈처럼 누가 날 불러~'를 부르고 등장하시는데, 퍼런 조명등의 전차는 내도록 시야에 남아있더랬다. 그래도 이게 회전무대라 다행이지, 끝내 무대에서 밀어내지 못했으면 어쩔뻔.
이날 부터는 토사구팽 - 푸른학은 계속 봉두난발. 그리고 이날의 푸른학이 공연 전체 통틀어 가장 어둡고, 날카롭고, 냉기가 서린 포스였더랬다. 눈빛에 베인다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음. 막공주간 들어서면서 이젠 커튼콜에서의 기립이 자연스러워졌음. 프리뷰 주간의 싸늘한 객석 반응을 생각해보면 참 격세지감.
110907 - 성환생 + 선영랑. 개인적으로 성환생 자체 첫공이자, 2세대 김생홍랑 커플 자체 막공. 1세대에 비해 발랄함, 씩씩함은 2배, 애절함은 1/2. 어려서 감정표현은 직설적이고, 거칠지만, 그 풋풋함때문에 둘이 귀염귀염. 커플 케미로는 괜찮더라. 공연 횟수도 적고, 아직은 여유가 없어 보여서 보는 이쪽이 더 조마조마한 감은 있었지만, 내년에 다시 올라온다면 한층 여유를 갖고 캐릭터를 잡아가지 않을까 싶다. 이날 선영랑이 아침은 오지 않으리에서 살짝 가사 실수가 있었음. '어둠속에서 등불이 흔들리네~'를 해야하는데 '창문밖에서 등불이 흔들리네~' 하고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창문밖에서만 두 번 반복했지만,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잘 넘김.
110908 - MBC에서 촬영이 있던 날 - 찍었으면 풀어라!!!!!!!!!!!! - 총막공을 제외하면 가장 완성도 높은 퀄리티의 공연이었다. 하루 쉬고 왔다고, 은생, 은랑 아주 쩌렁쩌렁하게 세종 무대를 그 낭랑한 목소리로 가득 채우고, 연기에 감정표현도 자연스럽고, 더 깊어진데다 객석 반응도 포함해서. 깨알같은 개그 포인트마다 빵빵 터져주고, 집중해야 할 땐 조용히 무대에 집중하고, 이렇게 관객이 무대와 소통하고 그 상호작용이 시너지를 일으켜, 참으로 만족스러운 공연이 완성되었다. 무대는 살아있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110909 밤공 - 막공을 하루 앞둔 이날, 그리고 2회 공연있는 날의 저녁 공연은 언제나 그렇듯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피로감에서 오는 집중력 저하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할까. 2막 숨어라 사랑아에서 야옹이 커플의 박삼섭 배우님, 실수로 돈다발을 떨어뜨리시고 타격이 크셨는지 '나도 좀 사랑해줘~ 누님!' 이 소절을 그냥 다 날리시고, 나중엔 가발까지 떨어뜨리셨던가. 아주 넋을 빼놓으신듯ㅋㅋㅋ 그리고 거의 대사 씹는 법이 없는 은생이 함이-각이 커플씬에서 '니들도 참 답답..답답한 것들이다'라고 두번 씹었는데, 뭐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구나 했음; (그러는 너나 잘하세요;;)
개인적으로 푸른학에서 은생의 미모는 이날이 갑이었;; 진짜 토사구팽이후 그 짧은 시간에 뭔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몰락한 귀족의 향기며, 나른한 색기를 뿜어대는 건가 싶었음.
110910 낮공 - 세미막공. 푸른학에서의 재채기 5번 관크로 인해 그 좋은 공연에 대한 기억이 다 휘발휘발 ㅠㅠ
110910 막공 - 배우분들의 기합이 범상치 않았던 막공. 기분좋을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감정을 싣고, 깊게 몰입하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모아서 완성도를 최고로 끌어올린 레전드 오브 레전드 공연으로 마무리지었다. 레전은 이미 찍은 이후에 그 정점에서 더 위로 피치를 끌어올려 최고의 공연으로 마무리지은 배우님들 모두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고, 그런 배우분들께 아낌없이 기립박수로 보내드릴 수 있어 기분좋은 그런 이상적인 막공이었음. 커튼콜에서 임현수 배우의 큰절, 은생의 콩주머니 인사, 막공만의 작은 이벤트도 고마웠음. 총막공 멘트도 없고, 더블 캐스팅 배우들의 인사도 없었는데, 이 마저 없었음 참 서운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