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1. 09. 09(금) 20:0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팅 : 김생 - 박은태, 홍랑 - 조정은, 홍생 - 임현수, 행매 - 양희경
아침은 오지 않으리~~~가 아니라 막공은 오지 않으리~~~~~~~~~~~를 불러야 할 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피맛골 연가에 이렇게 홀릭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덕질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회전문은 의미를 갖는다는 뻘소리고;;
어쨌든 1n번 회전문 돈 나 같은 사람에겐 극세사 후기 같은 건 무리.
하루에 2회 공연은 안그래도 빡센 앙상블 분들에겐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을 선사하고, 원캐로 계속 설 수 밖에없는 행매와 홍생도 그 피로도가 눈에 보였지만, 그럼에도 이미 농익은 연기로 다 커버되는 공연이었다. 순간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었어도, 그냥 스리슬쩍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다들 무대가 이제 익숙해지신게지.
피맛골 회전 무대가 등장하는 씬은 언제봐도 절경이고, 특히 곰방대를 한 손에 든 기생분의 실루엣은 그야말로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다.
피맛골 넘버 중반에 '젊은 놈은 젊은 놈~ ' 소절에 은생이 등장해서 피맛골 사람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살구나무 위로 올라가서 주위 광경을 한 번 쓱 훑어보는 데, 난 이 장면부터 김생이라는 캐릭터가 참 좋다.
복작거리고 사연 많은 피맛골 사람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장면 하나로, 김생이라는 사람이 인간미가 넘치는 호인이라는 게 딱 드러난다.
홍랑 아가씨의 등장도 그렇다. 그냥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란 양가집 규수가 아니라 '이미 험한 꼴은 충분히 보았'다고 하는 뒷골목도 두려워 않는 당찬 아가씨라는 걸 바로 보여주니까.
짧은 시간안에 캐릭터 성립에 충분한 효과를 보여주는 이 둘의 첫 만남 장면은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내가 최고로 아끼는 애정 장면이라, 그냥 이때부터 계속 엄마 미소 지으며 광대 승천할 지경.
오늘 사물놀이 씬에서 얼치기 삼인방은 정렬 배우가 패랭이를 돌리면 태준 배우가 부채로 훼방을 놓는 모드였다.
결국 잘 받다가 떨어뜨렸더니 마구 다굴하는 못된 친구들ㅋㅋㅋ
대원 배우님은 맷돌도 던지셨다가 굴비로 상모 돌리기도 하셨다가 바쁘시고, 순택 배우님은 맘상한 은생 달래랴, 사물놀이 패 구경도 하랴 역시 바쁘시고 앙상블 분들 핥느라 시선 분산되 정작 열심히 흥을 돋우시는 사물놀이패 분들에게 미처 시선이 가지 못하는 게 왠지 죄송스럽;;
토사구팽 - 푸른학에서 은새의 봉두난발은 뭐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아놔~ 오늘 푸른학에서 완전 미모 폭발.
세상에 내가 은생 비주얼에 이렇게 홀려서 보게 될 줄이야.
봉두난발 푸른학이 오늘로 4번째인데, 오늘 정말 너무 예뻐서;;;;;;
아니 이게 어디서 흘러나온 몰락 귀족의 향기인가, 이 나른한 색기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람?
하여간 오늘 푸른학은 나에게 '빈사의 백조'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은생을 구하러 등장한 은랑은 오늘 또 미묘하게 은생에 대한 애정도가 더 높아져서 나타나셨다.
어떻게든 이 사람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고, 은생을 설득하려는 강도도 더 세지고, 그래서 은생이 좋은 냄새 어쩌고 할 때 확 밀치고 '정말 죽고 싶어요?'가 참 속상해서 하는 말로 들렸다.
홍랑의 방에서 둘이 사랑에 빠지는 씬은 뭐 나날이 그 케미가 점점 더 깊어져 가서.
그런데, 피갑칠한 은생 옷이 깨끗해 진 걸 보면 아마도 빨아줬거나 했을 거 같은데, 그럴 거 김생한테 새 저고리 한 벌 해주지 그랬나...살짝 아쉬웠다. 그러면 관객도 아~ 시간이 좀 지났구나 하고 느낄텐데 말이지.
홍가네는 부자니까 뭐 누더기같은 김생 저고리는 걍 버리고 홍랑이 오라버니 저고리라며 연한 옥색 저고리 한 벌 내주고
나중에 홍생이 저놈이 누이를 빼앗아가더니, 내 옷까지 뺏어입었다고 길길이 화낸다든가 하는 망상도 잠시;;
은생이 칼 맞고, 그 뒤로 이어지는 씬에서 은랑님은 정말 애절한 연기의 최고봉이심. ㅠ.ㅠ
이렇게 몰아치듯 전개가 빠른 극에서 어떻게 그렇게 금방 감정을 잡고 깊숙이 몰입을 하는지.
오늘도 아침은 오지 않으리는 애절하고 아름다웠고, 커튼콜에서는 이제 홍생부터 기립이 자연스러워졌다.
내일 막공 때는 앙상블 부터 기립하고 싶은데, 그럼 너무 오래 서있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