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시청각
11. 12. 10 - HAMLET (박은태/강태을/서범석/김성기).
Lei
2011. 12. 10. 19:28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0 (토) 15: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이제 그냥 은릿은 매일 매일이 레전드 갱신의 나날이구나. 은릿/태을레어/범클로/성기폴로 조합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공연 탄생. 어떻게 이틀만에 또 이렇게 연기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늘어서 오는 거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해줄 말이 없다. 매 공연 더 더 좋아져서 나타나는 게 정말 가능하다는 걸 실제로 겪어보니, 이건 정말 신세계로구나. 은태야 너는 정말이지 ㅠ.ㅠ
은릿 뿐만 아니라, 진리의 범사마, 영숙 거트루트님도 연기 쩔어주시고, 태을 레어도 지난 번과 달리 목상태도 많이 회복되어 안정감 있게 레어티스를 연기해주고, 성기 폴로니우스도 오늘은 엇박을 많이 자제하시더니, 무덤지기 씬에서 애드립 폭발ㅋㅋㅋ 이렇게라도 균형을 잡아주셔서 감사.
- 뮤지컬 햄릿은 특이하게 '막'이라는 게 없이 무대를 그대로 드러낸 채 극이 시작되고, 또 시작 전에 암전 같은 것도 없이 종소리로 시작되서, 초반엔 그게 좀 불만이었더랬다. 관객들이 아직 극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되어있는 상태에서 극이 시작되어버리는 것 같아 술렁거림이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걸렸거든. 그런데, 그게 오늘에서야 또 이해가 되더라. 저렇게 드러난 무대가 관객을 장례식에 초대된 덴마크의 국민들로써 끌어들이는 것었다는 걸. 이걸 관극 nn번 만에야 깨닫다니, 왜이리 뒤늦게 알아채는 게 늘어가는지;
2011 뮤지컬 햄릿이 병맛 연출로 많이 까이기도 하지만, 난 이 시작 부분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음울하고 차가운 북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푸른 조명과 검은 의상이 어우러져 엄숙한 장례식 분위기에 그로테스크함을 더한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장중한 앙상블의 음성 뒤로 북구의 시린 바람같이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은릿의 목소리가 또 그렇게 좋다. 오늘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가 어릴 때 작은 검을 주셨죠~'부분 부터 표정 연기가 디테일해져서 '장난감과 바꿨어요~'에 가서는 목소리도 같이 흐느끼더라. 그리고 서럽게 부르는 "아버지─"가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그 느낌도 참 좋고. (이러다 오늘은 죄다 좋았다고 끝맺음을 할 기세;) 아직 아버지로부터 들을 얘기도, 하고싶은 말도 많은데, 그 아버지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으로 남았다.
- 가슴에 뚫린 구멍을 안고 참석한 결혼식에서 어머니조차도 그게 시간이 흐르면 메워질 작은 상처쯤으로 넘겼지만, 그 구멍은 점점 더 넓어져서 종국에는 햄릿 뿐만 아니라 덴마크 왕실을 통째로 집어삼킬 블랙홀이었건만. 하기는 제일 친하다는 호레이쇼마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은릿은 내적으로 비밀이 많은데다, 까칠하기가 고슴도치라 아무에게도 -오필리어에게마저- 곁을 내주지 않으니 누가 그 속을 헤아리겠는가. Why me에서 그래도 친한 친구에게 불만도 털어놓고, 내 심정을 좀 알아다오 투정도 부려보는데, 이 눈치 없는 친구가 그냥 맞장구를 쳐주면 될 걸,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타이르고 얼르고 되도않게 섹시한 여자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은릿이 답답해 미치지. 와우와우~ 할 때 쳐다보는 눈빛이 얼마나 한심해하는지, 오늘도 호레이쇼가 거기서 깨갱하는 분위기.
- 동레어가 폴로니우스를 좀 가리는 경향이 있다면, 태을 레어는 그런 면에서 가리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정 조합에서 케미가 터진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폴로니우스간에 편차없이 착하고 듬직한 아들이라는 게 보여서 안정적이다. Sister에서도 태을 레어는 동생 아끼는 마음이 끔찍한 다정한 오빠를 연기해서 참 좋다. 오늘은 목상태도 돌아와서 노래도 지금까지 들은 것 중에 가장 좋았다. 미묘한 감정 같은 거 느끼지 않게 해줘서 좋은 레어티스. 그런 오빠의 신신당부도 내팽겨치고 햄릿한테 다가가는 오필리어. 오늘 은릿이 오필리어에게 보여주는 감정은 사실 '사랑'보다는 '미안함'쪽이 훨씬 더 강했다. 그건 은릿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사랑한다는 고백에 저렇게 울상을 지으면 도대체 어떤 감정을 잡으라는 거냐고;;
- 매 공연 더 처절해지는 '피는 피로써' 넘버. 은릿이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보면서 항상 속으로 '제발 이제 됐잖아요. 이제 그만두게 해주세요.'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대로 뛰어내리든, 목을 긋든 그대로 망가져버릴 것 같아서, 자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해주고 싶을 지경.
- 그렇게 사는 거나 죽는 거나 같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햄릿의 광기를 비웃는 He's crazy 넘버. 오늘 은릿이 미쳤어~ 돌았어~ 하면서 폴로니우스들을 같이 비웃어주는데, 그 냉기가 말도 못하게 서늘하더니만, 갑자기 '아름다운 밤입니다.'하고 펼쳤던 양 팔을 발레의 앙바 자세(가장 기본이 되는 팔 동작)를 한 채 폴짝 뛰어가지고 웃음이 터져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아니 배우가 자체 관크 할래요. 이 뒤에 오필리어가 나타나서 심각한 장면이 이어지는데, 나는 웃음 참느라 고역;;; 그래놓고 은릿은 웃음기 싹 지우고 나타나서 너무 가슴아프게 '수녀원에 가'를 부르는데, 세상에 목요일에 봤던 것 보다 감정의 낙차폭이 더 커지고 가슴 아픈 표정이 더 디테일해져서 다시 한 번 감탄. 공연을 거듭하면서 어디까지 발전하는 건지.
- 상처받은 오필리어는 사실상 또 다른 햄릿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를 위해 버려야 하는 사랑. 그리고 복수를 위해 버려야 하는 원래의 '나'. 그래서 천갈래 만갈래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하며, 나는 누구인지, 나는 대체 왜 사는 건지 길을 잃었다고 울부짖는 은릿은, 이때만 해도 아직 복수에 완전히 잠식당하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다. 그리고 호레이쇼가 나타나서 상복은 이제 벗어버리라며 어떻게 너를 위로할까 하는 그 순간이 은릿이 복수에 온전히 먹혀버리는 순간이다. 오로지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잠도 잘 수 없고,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복수에 잠식당해 정신도 육체도 무너져가는 것을 방치하고 자신을 절벽으로 몰아가는 위태로운 상태.
복수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안달나 있을 때, 나타난 유랑극단은 그야말로 천군만마. 그들과 함께 복수극을 꾸밀 생각으로 눈만 생기가 돌아서 번뜩이는데, 그 묘하게 다크하면서 환희에 찬 표정이 참 섬뜩하더라.
복수를 위해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연기해야만 하는 이 연극같은 삶, 거짓으로 점철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환멸의 감정을 가감없이 표출해내는 1막의 피날레는 그래서 오늘도 전율이었다.
- 범사마의 Chapel은 오늘도 레전드. 오늘 범클로는 참회의 기도를 하면서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은릿이 살해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그 뒤 '내 손에 묻은 피 안 씻겨' 할 때 부터 벌써 눈물 자욱이 반짝이더라.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에 이끌려 눈물을 매달고 아련한 미소를 짓는데, 정말 거트루트를 사랑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을 죽여야만 해─오~ 오오"에서 보여주는 감정선은 정말 최고. 형을 사랑했다는 말도 진심으로 들리는 죄책감, 통한의 감정들. 그리고 비뚤어진 열등감 같은 것이 다 느껴지더라.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보여주는 은릿의 연기는 이제 뭐라 더 토을 달 것도 없이 너무 애처로워서 ㅠ.ㅠ 폴로니우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서 무너져내리는 연기는 진짜 ㅠ.ㅠ 여기서 뭐가 더 나올까 싶었는데, 더 나오더라. 웃어도 웃는게 아니고, 그 웃음에 마저 두려움이 묻어나 파들파들 떨면서 겁에 질려, 미쳐버리고 싶은데, 미치지도 못하는, 통곡하고 싶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는 모든 것이 그저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설상가상 오필리어와 마주쳐서 기겁하고는 달아나는 은릿이 참 상황에 안맞게 불쌍하더라.
- 귀환하는 태을 레어티스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슬픔과 분노의 연기가 좋다. 아버지의 부고를 타국에서 전해듣고, 분노보다 먼저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휘청거리며 배에서 내리는 레어티스가 좋다. 오버하지 않고, 격한 동작없이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부르르 떠는 온몸에 들어간 힘과 분노에 찬 표정과 눈빛으로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전에도 썼지만, 태을 레어는 머리에 피가 몰렸어도, 이성을 잃지 않아서, 클로디어스의 제안을 제대로 듣고, 왜 저런 제안을 하는지 재보고 클로디어스와 손을 잡는다는 게 보인다.
- 오늘 무덤지기 씬에서는 호레이쇼가 참 술이 많이 들어간 것 같더라. 은릿은 그냥 침울한 평소 분위기인데, 호레이쇼가 먼저 키득키득 술 거하게 걸친 티를 내며 등장. 해골 세개 놓고 개그치는 부분에서 오늘 객석 반응이 꽤 좋았어서, 김성기 씨 애드립 작렬. 타타타 가사를 한치 앞도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까지 나간 건 좀 오버였지만, 하여간 객석 분위기도 좋고 씐나씐나 모드. 그러더니만 이어지는 오필리어 장례식에서 은릿이 또 얼마나 처절하게 비통해하던지. 여기서 은릿이 표현하는 슬픔의 강도도 점점 더 세져서, 조만간 뒤에서 잡는 호레이쇼 뿌리치고 무덤에 뛰어들 기세. 그러나 그게 사랑해서였냐면 은릿은 그렇다고 하겠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강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에서 영숙 거트루트의 연기가 얼마나 애절했는지. 뭐, 항상 이 부분의 연기는 좋았지만, 위로의 손길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아들 때문에 너무너무 절망해서 흐느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애처롭더라. 이런 어머니였기에 잃고나서 햄릿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던 거겠지.
- 상대가 동레어에서 태을 레어로 바뀌면 이상하게도 은릿이 호승심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단말이지. 동레어는 내가 상처를 입든 말든 너 하난 꼭 죽이고 말겠어라며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니까, 일단 그 기세에서 밀리는 느낌이라면, 태을 레어는 그정도까지 눈이 뒤집힌 건 아니라서, 정당한 결투, 내 검 실력으로 너를 이겨서 죽여주겠어 라는 분위기랄까. 거기에 은릿도 검술이라면 나도 지지않아 뭐 이렇게 맞받아치는 분위기의 결투씬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싸우는 긴박감은 동레어에 비하면 좀 덜하다.
- 거트루트의 독살로 단 하나 남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게 된 은릿, 그의 폭주를 막을 것은 무엇하나 남아있지 않아 이성을 잃고 자신을 막는 자는 모두 닥치는대로 죽이고 또 죽이고. 눈이 벌개져서 죽음의 사자가 되버렸는데, 그 귀에 레어티스의 제지의 말이 들어올리가 없다. 앞을 막는 자는 무조건 칼로 쓰러트리고, 그래서 지금 자신이 찌른 게 레어티스였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들린 "형제여!"도 처음엔 안 들리다가 두번째 "형제여!"에서야 간신히 정신이 돌아와 사건의 진실을 듣게 된다. 결국 모든 사단은 그 한사람 때문이었으니 그를 향해 불태우는 증오, 살의, 분노, 원망의 불꽃이 "클라우디우스─!!" 한 마디에 담겨 터져오른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된 화염이 덴마크 왕실을 불태우고, 햄릿 자신도 그 불길에 휩싸여 완전연소.
- 극의 마지막, 어디든 가주오~ 라던 은릿은 오늘 하얗게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려가는 것 같았다. 아니 그 목소리가 바람 소리 같더라. 그 바람 소리나는 목소리를 타고, 그렇게 바라던 미지의 그곳으로 날아가 잃었던 꿈, 잊었던 자신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을 지켜봤다.
+ 요 근래 커튼콜에서 별다른 이벤트가 없었는데, 오늘 퇴장할 때, 은릿이 오필리어와 포옹하는데, 태을 레어 등장. 오필리어 뺏어가시려나 했더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어서, 은릿도 뭐지? 그냥 이대로 안고 있어도 되는 건가? 뭐 이러고 있는데, 태을 레어가 웃으면서 계속해 뭐 그런 제스춰. 은릿과 오필리어가 포옹을 푸니까 태을 레어가 은릿한테 악수를 청해서, (내심 포옹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뭐야, 이제 오라버니가 공인으로 인정해주는 사이라는 뜻? 얼쑤~ 은릿은 이제 태을 레어한테 인정 받았구랴 싶더라. ㅋㅋㅋ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0 (토) 15: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이제 그냥 은릿은 매일 매일이 레전드 갱신의 나날이구나. 은릿/태을레어/범클로/성기폴로 조합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공연 탄생. 어떻게 이틀만에 또 이렇게 연기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늘어서 오는 거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해줄 말이 없다. 매 공연 더 더 좋아져서 나타나는 게 정말 가능하다는 걸 실제로 겪어보니, 이건 정말 신세계로구나. 은태야 너는 정말이지 ㅠ.ㅠ
은릿 뿐만 아니라, 진리의 범사마, 영숙 거트루트님도 연기 쩔어주시고, 태을 레어도 지난 번과 달리 목상태도 많이 회복되어 안정감 있게 레어티스를 연기해주고, 성기 폴로니우스도 오늘은 엇박을 많이 자제하시더니, 무덤지기 씬에서 애드립 폭발ㅋㅋㅋ 이렇게라도 균형을 잡아주셔서 감사.
- 뮤지컬 햄릿은 특이하게 '막'이라는 게 없이 무대를 그대로 드러낸 채 극이 시작되고, 또 시작 전에 암전 같은 것도 없이 종소리로 시작되서, 초반엔 그게 좀 불만이었더랬다. 관객들이 아직 극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되어있는 상태에서 극이 시작되어버리는 것 같아 술렁거림이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걸렸거든. 그런데, 그게 오늘에서야 또 이해가 되더라. 저렇게 드러난 무대가 관객을 장례식에 초대된 덴마크의 국민들로써 끌어들이는 것었다는 걸. 이걸 관극 nn번 만에야 깨닫다니, 왜이리 뒤늦게 알아채는 게 늘어가는지;
2011 뮤지컬 햄릿이 병맛 연출로 많이 까이기도 하지만, 난 이 시작 부분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음울하고 차가운 북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푸른 조명과 검은 의상이 어우러져 엄숙한 장례식 분위기에 그로테스크함을 더한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장중한 앙상블의 음성 뒤로 북구의 시린 바람같이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은릿의 목소리가 또 그렇게 좋다. 오늘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가 어릴 때 작은 검을 주셨죠~'부분 부터 표정 연기가 디테일해져서 '장난감과 바꿨어요~'에 가서는 목소리도 같이 흐느끼더라. 그리고 서럽게 부르는 "아버지─"가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그 느낌도 참 좋고. (이러다 오늘은 죄다 좋았다고 끝맺음을 할 기세;) 아직 아버지로부터 들을 얘기도, 하고싶은 말도 많은데, 그 아버지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으로 남았다.
- 가슴에 뚫린 구멍을 안고 참석한 결혼식에서 어머니조차도 그게 시간이 흐르면 메워질 작은 상처쯤으로 넘겼지만, 그 구멍은 점점 더 넓어져서 종국에는 햄릿 뿐만 아니라 덴마크 왕실을 통째로 집어삼킬 블랙홀이었건만. 하기는 제일 친하다는 호레이쇼마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은릿은 내적으로 비밀이 많은데다, 까칠하기가 고슴도치라 아무에게도 -오필리어에게마저- 곁을 내주지 않으니 누가 그 속을 헤아리겠는가. Why me에서 그래도 친한 친구에게 불만도 털어놓고, 내 심정을 좀 알아다오 투정도 부려보는데, 이 눈치 없는 친구가 그냥 맞장구를 쳐주면 될 걸,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타이르고 얼르고 되도않게 섹시한 여자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은릿이 답답해 미치지. 와우와우~ 할 때 쳐다보는 눈빛이 얼마나 한심해하는지, 오늘도 호레이쇼가 거기서 깨갱하는 분위기.
- 동레어가 폴로니우스를 좀 가리는 경향이 있다면, 태을 레어는 그런 면에서 가리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정 조합에서 케미가 터진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폴로니우스간에 편차없이 착하고 듬직한 아들이라는 게 보여서 안정적이다. Sister에서도 태을 레어는 동생 아끼는 마음이 끔찍한 다정한 오빠를 연기해서 참 좋다. 오늘은 목상태도 돌아와서 노래도 지금까지 들은 것 중에 가장 좋았다. 미묘한 감정 같은 거 느끼지 않게 해줘서 좋은 레어티스. 그런 오빠의 신신당부도 내팽겨치고 햄릿한테 다가가는 오필리어. 오늘 은릿이 오필리어에게 보여주는 감정은 사실 '사랑'보다는 '미안함'쪽이 훨씬 더 강했다. 그건 은릿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사랑한다는 고백에 저렇게 울상을 지으면 도대체 어떤 감정을 잡으라는 거냐고;;
- 매 공연 더 처절해지는 '피는 피로써' 넘버. 은릿이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보면서 항상 속으로 '제발 이제 됐잖아요. 이제 그만두게 해주세요.'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대로 뛰어내리든, 목을 긋든 그대로 망가져버릴 것 같아서, 자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해주고 싶을 지경.
- 그렇게 사는 거나 죽는 거나 같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햄릿의 광기를 비웃는 He's crazy 넘버. 오늘 은릿이 미쳤어~ 돌았어~ 하면서 폴로니우스들을 같이 비웃어주는데, 그 냉기가 말도 못하게 서늘하더니만, 갑자기 '아름다운 밤입니다.'하고 펼쳤던 양 팔을 발레의 앙바 자세(가장 기본이 되는 팔 동작)를 한 채 폴짝 뛰어가지고 웃음이 터져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아니 배우가 자체 관크 할래요. 이 뒤에 오필리어가 나타나서 심각한 장면이 이어지는데, 나는 웃음 참느라 고역;;; 그래놓고 은릿은 웃음기 싹 지우고 나타나서 너무 가슴아프게 '수녀원에 가'를 부르는데, 세상에 목요일에 봤던 것 보다 감정의 낙차폭이 더 커지고 가슴 아픈 표정이 더 디테일해져서 다시 한 번 감탄. 공연을 거듭하면서 어디까지 발전하는 건지.
- 상처받은 오필리어는 사실상 또 다른 햄릿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를 위해 버려야 하는 사랑. 그리고 복수를 위해 버려야 하는 원래의 '나'. 그래서 천갈래 만갈래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하며, 나는 누구인지, 나는 대체 왜 사는 건지 길을 잃었다고 울부짖는 은릿은, 이때만 해도 아직 복수에 완전히 잠식당하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다. 그리고 호레이쇼가 나타나서 상복은 이제 벗어버리라며 어떻게 너를 위로할까 하는 그 순간이 은릿이 복수에 온전히 먹혀버리는 순간이다. 오로지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잠도 잘 수 없고,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복수에 잠식당해 정신도 육체도 무너져가는 것을 방치하고 자신을 절벽으로 몰아가는 위태로운 상태.
복수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안달나 있을 때, 나타난 유랑극단은 그야말로 천군만마. 그들과 함께 복수극을 꾸밀 생각으로 눈만 생기가 돌아서 번뜩이는데, 그 묘하게 다크하면서 환희에 찬 표정이 참 섬뜩하더라.
복수를 위해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연기해야만 하는 이 연극같은 삶, 거짓으로 점철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환멸의 감정을 가감없이 표출해내는 1막의 피날레는 그래서 오늘도 전율이었다.
- 범사마의 Chapel은 오늘도 레전드. 오늘 범클로는 참회의 기도를 하면서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은릿이 살해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그 뒤 '내 손에 묻은 피 안 씻겨' 할 때 부터 벌써 눈물 자욱이 반짝이더라.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에 이끌려 눈물을 매달고 아련한 미소를 짓는데, 정말 거트루트를 사랑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을 죽여야만 해─오~ 오오"에서 보여주는 감정선은 정말 최고. 형을 사랑했다는 말도 진심으로 들리는 죄책감, 통한의 감정들. 그리고 비뚤어진 열등감 같은 것이 다 느껴지더라.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보여주는 은릿의 연기는 이제 뭐라 더 토을 달 것도 없이 너무 애처로워서 ㅠ.ㅠ 폴로니우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서 무너져내리는 연기는 진짜 ㅠ.ㅠ 여기서 뭐가 더 나올까 싶었는데, 더 나오더라. 웃어도 웃는게 아니고, 그 웃음에 마저 두려움이 묻어나 파들파들 떨면서 겁에 질려, 미쳐버리고 싶은데, 미치지도 못하는, 통곡하고 싶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는 모든 것이 그저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설상가상 오필리어와 마주쳐서 기겁하고는 달아나는 은릿이 참 상황에 안맞게 불쌍하더라.
- 귀환하는 태을 레어티스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슬픔과 분노의 연기가 좋다. 아버지의 부고를 타국에서 전해듣고, 분노보다 먼저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휘청거리며 배에서 내리는 레어티스가 좋다. 오버하지 않고, 격한 동작없이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부르르 떠는 온몸에 들어간 힘과 분노에 찬 표정과 눈빛으로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전에도 썼지만, 태을 레어는 머리에 피가 몰렸어도, 이성을 잃지 않아서, 클로디어스의 제안을 제대로 듣고, 왜 저런 제안을 하는지 재보고 클로디어스와 손을 잡는다는 게 보인다.
- 오늘 무덤지기 씬에서는 호레이쇼가 참 술이 많이 들어간 것 같더라. 은릿은 그냥 침울한 평소 분위기인데, 호레이쇼가 먼저 키득키득 술 거하게 걸친 티를 내며 등장. 해골 세개 놓고 개그치는 부분에서 오늘 객석 반응이 꽤 좋았어서, 김성기 씨 애드립 작렬. 타타타 가사를 한치 앞도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까지 나간 건 좀 오버였지만, 하여간 객석 분위기도 좋고 씐나씐나 모드. 그러더니만 이어지는 오필리어 장례식에서 은릿이 또 얼마나 처절하게 비통해하던지. 여기서 은릿이 표현하는 슬픔의 강도도 점점 더 세져서, 조만간 뒤에서 잡는 호레이쇼 뿌리치고 무덤에 뛰어들 기세. 그러나 그게 사랑해서였냐면 은릿은 그렇다고 하겠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강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에서 영숙 거트루트의 연기가 얼마나 애절했는지. 뭐, 항상 이 부분의 연기는 좋았지만, 위로의 손길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아들 때문에 너무너무 절망해서 흐느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애처롭더라. 이런 어머니였기에 잃고나서 햄릿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던 거겠지.
- 상대가 동레어에서 태을 레어로 바뀌면 이상하게도 은릿이 호승심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단말이지. 동레어는 내가 상처를 입든 말든 너 하난 꼭 죽이고 말겠어라며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니까, 일단 그 기세에서 밀리는 느낌이라면, 태을 레어는 그정도까지 눈이 뒤집힌 건 아니라서, 정당한 결투, 내 검 실력으로 너를 이겨서 죽여주겠어 라는 분위기랄까. 거기에 은릿도 검술이라면 나도 지지않아 뭐 이렇게 맞받아치는 분위기의 결투씬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싸우는 긴박감은 동레어에 비하면 좀 덜하다.
- 거트루트의 독살로 단 하나 남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게 된 은릿, 그의 폭주를 막을 것은 무엇하나 남아있지 않아 이성을 잃고 자신을 막는 자는 모두 닥치는대로 죽이고 또 죽이고. 눈이 벌개져서 죽음의 사자가 되버렸는데, 그 귀에 레어티스의 제지의 말이 들어올리가 없다. 앞을 막는 자는 무조건 칼로 쓰러트리고, 그래서 지금 자신이 찌른 게 레어티스였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들린 "형제여!"도 처음엔 안 들리다가 두번째 "형제여!"에서야 간신히 정신이 돌아와 사건의 진실을 듣게 된다. 결국 모든 사단은 그 한사람 때문이었으니 그를 향해 불태우는 증오, 살의, 분노, 원망의 불꽃이 "클라우디우스─!!" 한 마디에 담겨 터져오른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된 화염이 덴마크 왕실을 불태우고, 햄릿 자신도 그 불길에 휩싸여 완전연소.
- 극의 마지막, 어디든 가주오~ 라던 은릿은 오늘 하얗게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려가는 것 같았다. 아니 그 목소리가 바람 소리 같더라. 그 바람 소리나는 목소리를 타고, 그렇게 바라던 미지의 그곳으로 날아가 잃었던 꿈, 잊었던 자신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을 지켜봤다.
+ 요 근래 커튼콜에서 별다른 이벤트가 없었는데, 오늘 퇴장할 때, 은릿이 오필리어와 포옹하는데, 태을 레어 등장. 오필리어 뺏어가시려나 했더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어서, 은릿도 뭐지? 그냥 이대로 안고 있어도 되는 건가? 뭐 이러고 있는데, 태을 레어가 웃으면서 계속해 뭐 그런 제스춰. 은릿과 오필리어가 포옹을 푸니까 태을 레어가 은릿한테 악수를 청해서, (내심 포옹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뭐야, 이제 오라버니가 공인으로 인정해주는 사이라는 뜻? 얼쑤~ 은릿은 이제 태을 레어한테 인정 받았구랴 싶더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