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시청각

11. 11. 10 - HAMLET (박은태/강태을/서범석/김장섭).

Lei 2011. 11. 11. 09:47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10 (목)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오늘의 베스트 연기자는 제자들이 단관 왔던 김장섭 폴로니우스.
지난 화요일 공연 때는 가사도 여러번 씹으시고, 박자 놓치시고 하시더니, 오늘은 진짜 완벽하게 클리어. 게다가 김성기 씨에 비하면 He's crazy에서 안무가 좀 뻣뻣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오늘은 그런 거 없으심. 춤도 완벽, 연기도 이제까지 본 중에 오늘 연기가 제일 좋았다. 장섭 폴로니우스는 키도 훤칠하셔서 어찌나 옷발이 훌륭하신지, 훈훈한 두 레어티스는 장섭님 닮은 게 확실합니다.
그리고 화요일 공연 때부터 였던 것 같은데, 결혼식 장면에서 보통은 여자들 한 무리, 남자들 한 무리 이렇게 무대를 양분해서 분포해있는데, 김장섭 폴로니우스는 여자들 무리에 섞여서 같이 들썩들썩 춤추다 갑자기 뻘쭘해 하며 남자들 쪽으로 섞이는데, 어찌나 귀여우신지.
햄릿의 광기로 클로디어스와 거트루트가 부부싸움을 하고 난뒤, He's crazy를 시작할 때도, 보통은 "폐하, 여왕 폐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이렇게 대사를 하는데, 지난 화요일 공연부터는 "폐하, 아름다우신 여왕 폐하" 이러셔서 본의 아니게 육성으로 뿜을 뻔 했다. 이 상황이, 클로디어스가 "닥쳐라! 왕의 명령이다!" 라며 거트루트에게 심하게 소리를 질러서, 거트루트가 마음 상해서 돌아서니까, 그걸 위로하려고 저런 대사를 집어넣으신 게 아닌가 싶어, 새삼 폴로니우스는 참 처세술에 있어선 따라올 자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은릿은 오늘은 일단 지난 화요일의 폭풍 같은 복수의 화신 모드에서 살짝 절제하는 모드로 돌아갔다. 하긴 화요일 공연이 좀 특별한 거였을 터. 2시간 공연 내내 그렇게 마구 다크 포스를 뿜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까.
그래서 그렇게 자꾸 마르나? 이젠 공연 체력을 위해서라도 다이어트 같은 건 안 할텐데도, 볼 때마다 볼살이 움푹 들어가지, 상체 탈의하면 갈비뼈가 도드라져 보여서 슬슬 신경이 쓰인다. 진짜 모든 걸 다 쏟아붓듯이 노래하지, 춤추지, 고뇌해야지, 칼싸움도 해야하고. 게다가 이 뮤지컬에서 햄릿이 참 바쁜 게, 자기 등장씬 아닌 장면에서도 깨알 같이 이곳 저곳에서 출몰해야 한다. 왼쪽, 오른쪽 성루에 번갈아가며 등장해줘야 하는데, 이게 계단이 아니라, 벽을 타고 오르내려야 하는 거더라. 공간적인 제약이 있으니 그렇게밖에 구조가 안 나왔겠지만, 이렇게 벽을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하지, 메인 회전 무대에서도 계단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고 하니, 공연 한 번 하고나면 살이 저절로 빠질 거 같다. 그러니, 제발 잘 먹자. 앞으로 공연이 한 달 좀 넘게 남았는데, 이렇게 가다간 나중엔 뼈만 남는 거 아니냐며.

- 오늘도 선왕 살해에 대한 꿈을 꾸고 난 후 충격과 분노에 미쳐서 성벽을 오르며 부르는 'Let's rise above this world' rep.은 전율이었지만, 배우가 막 자체 관크하고 그럴래요? 안그래도 반라라서 눈둘 곳이 참 한데, 허리에 이불 둘둘 말은 거 좀 잘 여미고 좀; 자꾸 허벅지 드러나고, 안그래도 계단 올라가는 씬이라 보일 듯 말듯, 아니, 내가 왜 미니스커트 입은 아가씨를 계단 아래에서 바라보는 변태 아저씨 처럼 느껴지냐고; (그래도 시선을 뗄 수 가 없다는;)

- 은릿과 윤오필리어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화학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쫌 절망적이다. ㅠ.ㅠ
어쩌면 공연이 진행되면서 좀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이건 뭐 마른 나무 가지에 꽃이 피길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이건 배우들한테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햄릿과 오필리어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관객이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은 이 둘의 러브씬도 아니고, 햄릿은 수녀원에 가라며 괴로운 표정 지을 때, 오필리어는 미쳐서도 햄릿만 찾을 때, 그때 뿐인 것 같다. 어떻게 둘이 같이 있을 때는 하나도 사랑하는 사이 같지가 않아. ㅠ.ㅠ
난 햄릿이 오필리어한테 썼다는 연애 편지도 왠지 누가 대필해줬을 거 같다니까. '어두운 이 세상에 오직 너만 빛나'라니. 이런 닭살 멘트를 저 햄릿이 썼을 거라고 상상도 안된다.
그리고 오늘 'Let's rise above this world'를 부를 때, 둘 다 왜이렇게 처절하나요. 햄릿이야, 나 지금 짜증나고 힘들어 죽겠어~찡찡찡 모드라 그렇다 치고, 오필리어는 진짜 무슨 도살장 끌려가는 송아지같구려. 정말 이 둘 좀 어떻게 해줘!!무도의 '친해지길 바라'라도 한 번 찍어야 하려나.
심지어 커튼콜에서 은릿이 퇴장하려는 오필리어를 다시 잡아끌고 포옹하는 장면에서도 말이지, 뭐 보기는 좋은데, 저건 어떻게 봐도 친구, 혹은 남매간의 포옹 정도로 밖에는 생각이 안된다니까. 그러니 오필리어를 레어티스에게 저리 쉽게 빼앗기지. -_-`

- 범사마 님은 오늘 결혼식 장면에서 깨방정을 접으시고 점잖점잖 모드를 유지하셨다. 그리고 길더스턴과 로젠크란츠가 서로 왕에게 잘보이려고 경쟁하듯 축하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표정이 '아이고, 저 귀염둥이들~' 하고 아빠 미소를 지으시는데, 그게 참 너무 선해보이셔서. 그런데, 오늘 Chapel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호흡이 일찍 끊겨서 박자를 놓치셨다. 그래도 오케스트라가 어떻게든 반주를 맞추기는 했지만.

- 신영숙 거트루트 님. 사실 원캐로 매일 편차 없이 잘하시는 분이라 따로 후기를 잘 안 쓰게 되는데, 오늘 햄릿이 클로디어스를 죽이려다 말고 단검을 든 채 침실로 뛰어든 씬에서, 은릿이 바꾼 노선에 맞춰 연기해주시는 게 딱 보이더라. 햄릿 손에 든 단검을 바라보며 겁을 먹고, 두려워 하면서도 아들에게 다가가려는 애처로운 어머니. 아들이 지금 정상 상태도 아니고, 자신을 바라보는 저 차가운 눈빛에 주춤주춤 하면서도 손을 내미는 모성. 그러니까 영숙님은 항상 진리~

- 이번 뮤지컬 햄릿에는 피맛골 연가에 출연했던 앙상블 분들도 보이는데, 박수진 씨, 오미영 씨, 윤정열 씨. 확실히 눈에 익은 분들이라 이분들도 깨알같이 찾아보게 되는데, 박수진 씨, 레어티스가 프랑스로 유학가게 되었다니까 서운한 표정 지으면서도 박수를 쳐주며, 눈은 슬픈데, 입은 웃고 있는 표정 좋더라. 생각해보면 피맛골 연가가 앙상블 솔로 파트가 참 많았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