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시청각

11. 10. 23 - HAMLET (박은태/전동석/윤영석/김장섭).

Lei 2011. 10. 24. 01:02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23(일) 18: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은릿 첫공 멤버로 다시 한 번 관극. 오늘이 햄릿 첫 2회 공연일이었고, 저녁공이었는데, 확실히 첫공의 어수선함이 정리되고 있었다.

윤 클로디어스는 감탄스러운 성량과 노래였지만, 아무래도 넘버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클로디어스가 거트루트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거 같다. 햄릿이 손톱 밑에 가시 같이 군다해도, 그 화풀이를 거트루트에게 향하는 건 아니지 싶다. 원작이 그렇다면 모르겠는데, 원작에서도 클로디어스는 폴로니우스에게 히스테리를 부릴지언정, 거트루트 앞에서는 점잖은 체를 했더란 말이지. 형을 사랑했지만, 그녀를 더 사랑했다면서, 클로디어스도 그저 왕좌가 탐이 났던게 아닐까...라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지 싶다.

영숙님의 거트루트는 여자로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그 와중에 모성을 끝까지 지키는 캐릭터를 보여주셨는데, 그 해석이 정말 설득력있고, 참 좋았다. 전에 봤던 정극 햄릿에선 거트루트를 여왕의 자리에 집착하는 캐릭터로 해석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햄릿에게도 어머니로서보다는 여왕으로 군림하는 모습이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해석이었지만, 뮤지컬 햄릿에서의 거트루트는 사랑에 목숨 건 여자로 나오니까. 그런데, 거트루트도 클로디어스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하면, 난 그녀는 그저 '사랑받고싶다'는 감정에 충실했던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숭배해줄 대상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포기하지 않은 모습에서 더 많은 공감이 갔다. 어떻게든 아들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를 쓰지만, 이미 핀트가 어긋나서 그 마음이 햄릿에게 닿지 않았다. 이 모든 사단이 자기 때문이라 자책하던 그녀는 결국 독배라는 걸 알고 마신 게 아닐까.

은릿이야 뭐 공연간 편차 없는 꾸준한 배우라, 오늘도 역시 훌륭했고, 점점 더 대담해지고, 광기가 더해지는 것 같더라. 표정이 아주 번뜩번뜩, 눈빛도 형형하고. 노래는 말해 뭐하겠는가. 여기까지 가능할까 싶은 영역까지 울림이 풍부한 후음이 쭉쭉 뻗어올라가고, 그런가하면 파르르 떨리는 속삭임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는 목소리가 정말 감탄스럽다. 그리고 정말 은릿 목소리가 내 취향이라 그런가, 떼창 속에서도 은태 목소리는 왜이리 선명하게 귀에 들어오는지.
은릿이 표현하는 햄릿은 결벽하고, 자존심이 높고, 예민하고, 찌질하고(;), 우유부단하고, 그리고 어딘지 모성 본능을 자극한다. 이게 그러니까 햄릿 개객끼를 외치면서도 아주 미워할 수 없는게 바로 저 감싸주고 싶어지는 부분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끝까지 고민하고, 죽는 건 단지 잠드는 것, 그뿐. 어쩌면 난 꿈꾼 걸까..사는 것, 죽는 것 그게 뭐지? 라며 죽어가는 햄릿처럼 은릿도 아직은 조금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이 표현해야 할 햄릿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워낙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그 복잡한 내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드러내야하고 강약조절을 해야할 지 아직은 고민 중인 것 같다. 뭐 난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지만, 좀 더 파고들어서 만들어낸 은릿을 기대하고있다.

동석 레어티스는 진짜 1막에서 혼자 런웨이를 걷고있고, 어찌나 비주얼이 혼자 빛이 나시는지. 게다가 그 흰 코트 느무 멋져서, 미모 포텐 제대로 터져주시고. 오필리어와 함께 부르는 Sister는 가사가 아무리 들어도 이게 남매가 부를만한 노래인가 싶고. 2막에서는 감정 폭발에 성량도 폭발. 특히 오필리어의 죽음 앞에 햄릿이 따라죽겠다는 둥 할때 가식떨지마라며 진짜 한대 칠 기세로 달려드는 동레어티스에 완전 이입해서 잘한다~ 응원하고 있;; 그래놓고 나중에 아무리 죽어간다고 해도 햄릿을 향해 '형제여' 소리가 나오는 지는 지금도 이해불가;

오늘 제일 감탄스러웠던 오필리어의 윤공주 배우.
사실 어제까지도 거트루트에 좀 밀린다 싶은 감이 있었는데, 그게 오필리어라는 캐릭터 자체가 좀 순종적이고 강하게 어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서, 배우의 역량과 별개로 눈에 덜 들어와서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오늘 실성한 오필리어는 진심으로 애처롭고, 너무나 가여웠다. 촛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 해맑지만 어딘가 섬뜩한 미소. 그리고 슬퍼하는 레어티스를 보며 울지 말라며 안아주는 장면에서 그 미소띤 얼굴로 눈물 한방울이 툭 떨어지는데, 그녀의 처지가 너무 안됐어서 연민의 감정이 끓어올라 눈물이 나더라. 햄릿 개객끼!! 

김장섭 씨는 폴로니우스 보다 무덤지기 쪽일 때가 더 좋더라. 물론 댄디한 폴로니우스도 좋지만, 이쪽은 살짝 광대스러운 김성기 씨 쪽이 더 내 마음에 들고, 무덤지기도 사실 비주얼은 김성기 씨 쪽이 더 무덤지기에 가깝지만, 노래에서 걸쭉하게 소울 풍으로 불러주시니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김장섭 씨는 아예 모짜렐라;; 해골을 은릿 얼굴에 가져다 대셔서 아주 배꼽을 잡았다.

뮤지컬 햄릿에서의 햄릿이라는 캐릭터는 진짜 미친놈에 찌질이인데, 왜 이리 관대할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커튼콜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산다는 게 연극같아!


저 첫소절이 들려오면 가슴이 설레고, 마지막에 도개교인 성문이 닫힐 때까지 들려오는 '오늘 밤을 위해~'를 듣고나면 그냥 닥치고 찬양밖에 안나오니까;; 역시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건가.

- 오늘도 로비엔 로버트 요한슨 연출을 비롯한 원작 크리에이티브 팀이 출몰. 미국 가신다더니 그전에 한 번 더 보러오셨을까나.
- 다른 후기 읽다가 깨달았는데, 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그냥 자체 소거시키나보다. 태권브이(본 사람만 앎) 나 랩에 대한 건 그냥 무시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