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상
전환점 - 518
Lei
2005. 5. 18. 11:28
사람이 살아가면서 뭔가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사건이 누구나 있을테지만, 나에게 있어서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준 사건은 518 이었다.
아, 그렇다고 내가 직접 518을 겪었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그때는 광주사태라고 불렸었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때였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위치의 미묘함을 아는가. 국민학교를 졸업한 것만으로 반은 어른이라는 치기어린 생각을 하는, 한창 사춘기를 겪을 감수성 민감한 시기.
그때도 신록이 푸르른 5월이라고 생각하는데, 교실마다 어떤 유인물이 소리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아마도 대학생 언니,오빠를 둔 아이가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유인물에는 5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격한 어조의 설명과 사진이 실려있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흑백임에도 이게 피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진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이런 일이 나라 한 쪽에서 벌어졌는데, 그걸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자기 나라 국민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가.
(이때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보다 더 심한 일도 있었다는 걸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그 일이 벌어진지 몇년이 지나도록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듣도보도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디서 교통사고가 나서 몇명이 다치고, 몇명이 죽었다는 것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큰 변이 있었는데도 그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접해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충격이었다.
그날 학교 전체에 그 유인물이 퍼졌고, 아이들의 동요가 번져갔다. 수업 시간이 되어도 그 웅성거림은 진정되지 않았다.
- 선생님은 알고 있었어요?
그 때 선생님의 대답이 참 걸작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답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그 사진은 전부 조작된거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봐라, 특수 분장같은 걸로 멀쩡한 사람도 괴물로 만들어버리지 않냐, 그런 일이 있었을리 없다...라고.
그 때, 비로소 내 안의 달걀 껍질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주위 어른, 부모, 선생님의 판단이 개입된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인지한다. 왜냐하면 아직 가치판단 기준이 뚜렷하지 않아,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기준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TV로, 신문으로 보여지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부모님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고, 데모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라고 대학에 보내놨더니 쓸데없는 폭력시위만 하는 불효자식들 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중학교 1학년 짜리 눈으로 봐도 그 사진들은 결코 조작된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런 빤히 들여다보이는 선생님의 거짓말로 인해, 나는 그 때 처음 세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있던 것들이 전부 '사실'인지 믿을 수 없었고, 뉴스에서 전달하는 사실이 과연 진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국가적으로도 민주사적으로도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아직도 진행형인 역사이고, 나 개인에게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준 사건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할때 어디까지나 취미생활 위주로, 정치적인 이야기나 무거운 주제는 가급적 피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518 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적어본다.
아, 그렇다고 내가 직접 518을 겪었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그때는 광주사태라고 불렸었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때였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위치의 미묘함을 아는가. 국민학교를 졸업한 것만으로 반은 어른이라는 치기어린 생각을 하는, 한창 사춘기를 겪을 감수성 민감한 시기.
그때도 신록이 푸르른 5월이라고 생각하는데, 교실마다 어떤 유인물이 소리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아마도 대학생 언니,오빠를 둔 아이가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유인물에는 5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격한 어조의 설명과 사진이 실려있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흑백임에도 이게 피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진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이런 일이 나라 한 쪽에서 벌어졌는데, 그걸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자기 나라 국민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가.
(이때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보다 더 심한 일도 있었다는 걸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그 일이 벌어진지 몇년이 지나도록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듣도보도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디서 교통사고가 나서 몇명이 다치고, 몇명이 죽었다는 것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큰 변이 있었는데도 그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접해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충격이었다.
그날 학교 전체에 그 유인물이 퍼졌고, 아이들의 동요가 번져갔다. 수업 시간이 되어도 그 웅성거림은 진정되지 않았다.
- 선생님은 알고 있었어요?
그 때 선생님의 대답이 참 걸작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답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그 사진은 전부 조작된거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봐라, 특수 분장같은 걸로 멀쩡한 사람도 괴물로 만들어버리지 않냐, 그런 일이 있었을리 없다...라고.
그 때, 비로소 내 안의 달걀 껍질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주위 어른, 부모, 선생님의 판단이 개입된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인지한다. 왜냐하면 아직 가치판단 기준이 뚜렷하지 않아,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기준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TV로, 신문으로 보여지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부모님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고, 데모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라고 대학에 보내놨더니 쓸데없는 폭력시위만 하는 불효자식들 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중학교 1학년 짜리 눈으로 봐도 그 사진들은 결코 조작된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런 빤히 들여다보이는 선생님의 거짓말로 인해, 나는 그 때 처음 세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있던 것들이 전부 '사실'인지 믿을 수 없었고, 뉴스에서 전달하는 사실이 과연 진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국가적으로도 민주사적으로도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아직도 진행형인 역사이고, 나 개인에게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준 사건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할때 어디까지나 취미생활 위주로, 정치적인 이야기나 무거운 주제는 가급적 피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518 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