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02 (금)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이정화,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이제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난 정말 오늘 공연은 정화 오필리어 보러간 거나 다름없다. 어디선가 거짓말~! 이라는 환청이 들리지만, 사실이다. 이정화 오필리어~ 사..사.....사탕 드세여 ㅠ.ㅠ
진짜, 나 이정화 오필리어가 얼마나 좋았는지, 오늘 공연에서 햄릿은 그냥 무조건 개객끼. (초딩도 아니고;) 그리고 동레어가 오늘 느무느무 오빠여서 그거 하나로 참 만족스럽더라. 범사마, 영숙님은 항상 진리이고. 은릿이야 뭐 아주 오래전부터 평타 레전드라 설명이 더 필요한지...? 한가지 아쉬운 게 폴로니우스가 김장섭 님이었다면 정말 주저없이 오늘 공연도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 했을 것을. 하여간 오늘도 정화 오필리어 우쭈쮸쮸 모드 예정.
- 지난 번 공연 이후 텀이 좀 짧아졌다고 오늘 정화 오필리어는 무대 동선도 다 맞춰서 오고, 그새 연기 디테일도 늘어서 왔더라. 오필리어와 헬레나가 햄릿의 편지를 읽는 장면. 이제 막 사랑에 빠져서 온 세상이 핑크빛이고, 햄릿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꼬이고, 손만 잡아줘도 하늘을 날 것 같다는 이 사랑스러운 아가씨, 아주 귀염귀염 열매를 드셨어. 정화 오필리어랑 있으면 미경 헬레나가 약간 언니 느낌이 나는데, 그게 왜 친구 중에서 좀 어른스러워서 상담 상대가 되어주고는 하는 그런 존재라고 할까. 둘이 여고생 깨방정 떠는 것도 너무 잘어울리고,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리고 등장한 김성기 폴로니우스에게 편지를 빼앗기고 잔소리 듣는 장면에서도 정화 오필리어는 애교많은 막내딸을 연기하고 있었다. 편지를 되찾기 위해 아빠한테 애교를 부려보지만, 벽창호 같은 아빠한테 삐져서 팩 토라지는 거 하며, 폴로니우스 퇴장 후에 반항기 어린 얼굴로 당차게 '난 그를 믿어~' 하는데, 사랑에 빠져서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당돌하고 발랄한 아가씨라서 참 좋더라.
결혼식 장면에서도 헬레나와 오필리어는 어찌나 케미가 좋은지. 클로디어스가 거트루트 앞에 무릎꿇고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하니까, 이 두 소녀가 아주 깨방정에 호들갑에 좋아죽는데, 정말 귀엽더라.
레어티스가 프랑스로 떠나는 장면에서 정화 오필리어라서 그런 거였는지, 동레어가 오늘 제대로 오라버니 분위기. 끈적한 근친애는 싹 걷어내고, 산뜻한 가족애를 보여줘서 얼쑤절쑤~ 혼자 신났; 이 장면에서도 정화 오필리어는 참 깨알같이 연기한다 싶었던 게, 레어티스 배웅하러 여 앙상블 두 명이 찾아오는데, 그거 보면서 우아~ 우리 오빠 인기많다 이런 표정이더라.ㅋㅋㅋ
아버지의 한바탕 잔소리가 끝나고 이어지는 Sister에서 위에도 썼지만, 동레어가 오늘은 제대로 오빠님이라 정화 오필리어를 훈계하듯 타이르는 분위기였다. 내가 정화 오필리어가 참 좋은게, 정화 오필리어는 햄릿에게 콩깍지가 만겹은 씌여서 '오빤 어려서부터 햄릿을 질투해왔어.'라는 대사가 너무너무 진심으로 들린다는 거다. 저렇게 잘난 오빠가 세상에 어디있다고, 동레어가 뭐가 아쉬워서 햄릿 아니라 그 어떤 남자에게라도 질투를 느끼겠냐며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화 오필리어는 이 세상에서 햄릿이 제일 잘난 줄 아는 콩깍지 만겹 상태라는 게 보여서 이게 또 귀엽다.
그리고 레어티스의 훈계에 울상이다가도, '오필리어 내 목숨보다 귀한 너' 하면 그래도 오빠는 나를 귀여워하니까 내 말을 들어줄 거야 라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곧바로 레어티스가 '알아, 너희 두 사람 사랑을' 하면서 잘라버린다. 그리고 오빠를 다시 한 번 설득하려고 생긋 웃으며 '오빠 그는 나를 진정 사랑해'라고 해보지만, 오빠 눈엔 그런 여동생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기만 한 거지. 하여간 오늘 동레어가 제대로 오라버니 노선을 타줘서 대만족.
레어티스를 배웅하고 모자를 벗는 정화 오필리어 표정이 '힝~ 오빠가 갔어 ㅜㅡ' 였다가, 햄릿을 발견하고 눈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너무 귀엽더라. 가사에 담긴 마음은 엄청 처절하고 무거운데, 정화 오필리어는 그걸 사랑에 들뜬 소녀의 마음으로 불러줘서 좋다. 그리고 은릿 셔츠를 벗길 때도 단추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시선이 은릿의 얼굴쪽을 향하고 있어서 제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그가 바라는 게 뭔지,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그런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런 점이 정말 좋더라. 정화 오필리어는 상대 배역이 누구던지, 그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연기를 한다. 그게 헬레나든, 폴로니우스든, 레어티스든. 이건 무대위에서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배우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은릿이 선왕 살해의 꿈을 꾸고 침실을 박차고 나가서 미칠 것만 같아, 눈이 뒤집힐 것 같아! 라며 자빠지는 장면에서, 오필리어도 걱정이 되서 밖에 나왔다가 아버지한테 들키는 장면인데, 여기서도 정화 오필리어는 주저앉은 햄릿 쪽에 손을 뻗다가 아버지를 발견하고 도망가는거다. 진짜 오필리어가 햄릿을 너무 사랑해줘서 눈물이 ㅠ.ㅠ
- 피는 피로써 넘버는 매 공연 레전드인만큼 잘하고있어서, 내가 더 찬양할 말이 없다. 지난 후기들에 열심히 찬양한 그만큼 오늘도 전율이었다.
그리고 He's crazy에서 오늘 은릿이 미쳤어~ 돌았어~ 하며 팔랑팔랑 오도방정을 떨다가 편지 떨어뜨려서 잠시 뿜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로 잘 넘기고 슥 집어가는데, 하여간 애드립은 없어도, 순간적인 사고에는 능숙한 게 은태의 장점이랄까.
- 내가 하도 정화 오필리어 우쭈쮸쮸 모드로 보다보니까 오늘 '수녀원에 가' 넘버에서 참 오랜만에 햄릿 개객끼를 외치면서 봤다. 그런데 커튼 뜯어내고 웃는 부분 부터 뭔가 좀 감정이 차갑더니만, 그 뒤에 혼자 괴로워하는 씬에서 뭔가 격렬함이 사라져있어서, 이 자식~ 지금 한바탕 퍼붓고 후련해하고 있어!! 라며 분노!!!!!!!!!!!!!!! 후련해한다는 건 내 오해였을 거라고 믿고. 오늘 은릿은 굉장히 신중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라고 할까. 가장 친한 호레이쇼에게도, 연인인 오필리어에게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꽁꽁 싸매서 모든 고민과 번뇌를 혼자 짊어지고,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섬과도 같은 상태였다. 스스로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자기를 고립시켜버린 이 불쌍한 왕자님.
유랑극단을 끌어들여 복수극을 준비할 때도 호레이쇼는 '이제 즐겨봐, 네 고통도 이걸로 끝내'라고 할 만큼, 햄릿은 아무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Sextet에 가서야 호레이쇼는 '이제야 알 것 같아'라고 하는 거다.
이 극중극 장면이 내가 정화 오필리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였는데, 오늘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아우, 정화 오필리어 사랑합니다! ㅠ.ㅠ 라고 고백할 지경.
은릿이 연극 시작하니까 오필리어에게 매달려 가슴에 머리를 묻고 고개를 살랑살랑, 뜬금없이 우하하하하 오버하며 웃어댈 때, 정화 오필리어는 '이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시선으로 햄릿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극을 가만히 바라본다. (왕 대역 배우가 잠이 드는 장면)
내가 윤필리어와 비교를 안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는 있는데, 이 극중극 장면에서 윤필리어는 자신과 주변 상황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속으로 침잠해버린다. 나는 심하게 상처받았고, 그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들려 상태. 그러나 정화 오필리어는 등장 할 때 부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헬레나를 안심시키고, 자기를 야멸차게 내쳤지만, 그러고도 자기에게 매달리는 햄릿의 상태를 살피고, 햄릿이 보여주려는 연극을 지켜본다.
독을 든 마스크 맨이 등장해서 은릿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가자 오늘 정화 오필리어는 햄릿을 따라 일어나려고 하더라. 헬레나가 옆에서 말리지 않았으면 그대로 햄릿을 가서 붙잡았을 거 같은 분위기. 그러더니 시선이 내내 햄릿에게서 떠날 줄을 모르고 이어지는 Sextet에서도 햄릿을 바라보며 '신이여, 거짓이라 말해줘요'라고 부르는데, 이게 오필리어가 냉정해진 햄릿을 원망하며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오늘은 햄릿이 보여준 연극의 진실이 거짓이길 바라는 것처럼 들리더라. 저 연극이 사실이라면, 햄릿에게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가, 신이여 제발 거짓이라고 말해줘요~ 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들려서, 난 정화 오필리어에게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복수에 온 정신을 쏟아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햄릿에게 그래도 단 한 사람,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 영숙 님, I'm untrue, 범사마 님 Chapel 오늘도 레전드 만큼 훌륭하셨음. 평타 레전 만큼이나 더 찬양할 말이 없어서;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오늘 김성기 폴로니우스가 '왕께서 격분하셨습니다.'를 박자 놓쳐서 그냥 날리고 대사 처리 하고, 은릿이 아직 어머니!를 한 번 밖에 안 불렀는데, 벌써 자기가 커튼 뒤에서 지켜보겠다며 들어가시는 바람에 두번째 어머니!에 무대로 뛰어들어왔다. 하여간 애드립은 없어도 순간적인 사고에는 순발력이 좋다고 할까.
그리고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시체춤을 춘다음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뜨리는데, 여기서 또 김성기 씨 발에 커튼자락이 휘감겨서 같이 계단으로 또르르. 우왕좌왕 커튼 펼치고 폴로니우스를 커튼 위에 올렸는데, 머리쪽으로 커튼 자락이 별로 없어서 햄릿이 커튼 끌때, 김성기 씨가 머리 드는 게 보였;; 참 한 번 합이 안맞으니 그게 계속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 폴로니우스 살해 소식을 듣고 레어티스가 귀환해서 왔는데, Killer's name에서 동레어는 언제나 폭주 모드. 오늘은 매고 있던 스카프가 한 쪽으로 돌아갈 정도로 날뛰더라. 목소리도 폭발할 것 같이 쩌렁쩌렁, 그런데 박자는 좀 맞춰주지 그러니. 니 감정이 지금 매우 격한 건 알겠다만, 같이 듀엣 맞춰줘야 하는 우리 범사마가 안그래도 박치끼가 좀 있으신데. ㅠ.ㅠ 그리고 독을 쓰면 피를 안 묻힌다니까 '확실한 거죠!' 라면서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그 새끼손가락은 좀 접어두지 그러니. 그거 보고 현실입갤;;
- 정화 오필리어의 매드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오늘도 그 해사한 미소 띤 얼굴로 등장하는데, 아~ 정화 오필리어는 미쳤다기 보다는 그냥 현실도피를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꿈속으로 도망가버린거지. 꿈속에는 아직 아빠도 살아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어디든 갈 수 있고, 오르고 또 올라 천사도 만날 수 있고.
오필리어의 모습에 무너진 동레어를 보고 안아서 달래주다가 '두려워 마 나는 언제나 니 곁에 있어'라고 할때, 정화 오필리어는 몸을 낮추고 아래에서 위로 동레어와 시선을 맞추는 걸 보면서, 상대에 맞춰서 연기한다는 게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주는 이 아가씨는 연기에 대한 감이 참 좋구나 감탄했다.
- 오필리어의 장례식 장면에서 아까 수녀원에 가 이후에 후련해 한(오해였을지도 모름;) 은릿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흘겨보고 있었기에, 여기에서도 덜 슬퍼하거나 하면 넌 진짜 개객끼라는 심정으로 지켜봤는데, 은릿이 진심으로 비통해해서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오늘 오필리어가 햄릿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ㅠ.ㅠ
- 모두가 비극으로 치닫는 극의 마지막, 오늘 은릿은 왜 이렇게 냉정돋는지, 동레어가 칼맞고 '형제여'라고 부르는데, 손도 안 잡아주고, '형제여 이젠 서로 용서해'라니까 그제서야 화해의 악수 비스무리하게 손을 잡아주는데, 엄마가 독살당하니 눈이 뒤집혀 아무것도 눈에 안들어와 그런거라고 이해는 되지만, 폴로니우스 가문 사람들한테 오늘 너무한 거 아니냐며 투정;
이후 전개도 레전드 급으로 훌륭했고, 그것 역시 다른 후기에서 열심히 찬양한 만큼 생략; (안 그래도 스압이다;)
- 내가 정화 오필리어에게 점수가 후한 건 얼터 배우인데, 저만큼 자기만의 차별화된 오필리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첫번째. 그리고 저 가혹한 운명에 휘둘리는 불쌍한 왕자님을 그래도 한 사람 정도는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두번째였다. (호레이쇼는 친구니까 열외로) 그런 내 바람을 120% 충족 시켜준 이정화 오필리어, 오늘이 정화 오필리어 자체 막공이었을 터였지만, 고양에서 또 봅시다. ㅠ.ㅠ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02 (금)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이정화,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이제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난 정말 오늘 공연은 정화 오필리어 보러간 거나 다름없다. 어디선가 거짓말~! 이라는 환청이 들리지만, 사실이다. 이정화 오필리어~ 사..사.....사탕 드세여 ㅠ.ㅠ
진짜, 나 이정화 오필리어가 얼마나 좋았는지, 오늘 공연에서 햄릿은 그냥 무조건 개객끼. (초딩도 아니고;) 그리고 동레어가 오늘 느무느무 오빠여서 그거 하나로 참 만족스럽더라. 범사마, 영숙님은 항상 진리이고. 은릿이야 뭐 아주 오래전부터 평타 레전드라 설명이 더 필요한지...? 한가지 아쉬운 게 폴로니우스가 김장섭 님이었다면 정말 주저없이 오늘 공연도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 했을 것을. 하여간 오늘도 정화 오필리어 우쭈쮸쮸 모드 예정.
- 지난 번 공연 이후 텀이 좀 짧아졌다고 오늘 정화 오필리어는 무대 동선도 다 맞춰서 오고, 그새 연기 디테일도 늘어서 왔더라. 오필리어와 헬레나가 햄릿의 편지를 읽는 장면. 이제 막 사랑에 빠져서 온 세상이 핑크빛이고, 햄릿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꼬이고, 손만 잡아줘도 하늘을 날 것 같다는 이 사랑스러운 아가씨, 아주 귀염귀염 열매를 드셨어. 정화 오필리어랑 있으면 미경 헬레나가 약간 언니 느낌이 나는데, 그게 왜 친구 중에서 좀 어른스러워서 상담 상대가 되어주고는 하는 그런 존재라고 할까. 둘이 여고생 깨방정 떠는 것도 너무 잘어울리고,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리고 등장한 김성기 폴로니우스에게 편지를 빼앗기고 잔소리 듣는 장면에서도 정화 오필리어는 애교많은 막내딸을 연기하고 있었다. 편지를 되찾기 위해 아빠한테 애교를 부려보지만, 벽창호 같은 아빠한테 삐져서 팩 토라지는 거 하며, 폴로니우스 퇴장 후에 반항기 어린 얼굴로 당차게 '난 그를 믿어~' 하는데, 사랑에 빠져서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당돌하고 발랄한 아가씨라서 참 좋더라.
결혼식 장면에서도 헬레나와 오필리어는 어찌나 케미가 좋은지. 클로디어스가 거트루트 앞에 무릎꿇고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하니까, 이 두 소녀가 아주 깨방정에 호들갑에 좋아죽는데, 정말 귀엽더라.
레어티스가 프랑스로 떠나는 장면에서 정화 오필리어라서 그런 거였는지, 동레어가 오늘 제대로 오라버니 분위기. 끈적한 근친애는 싹 걷어내고, 산뜻한 가족애를 보여줘서 얼쑤절쑤~ 혼자 신났; 이 장면에서도 정화 오필리어는 참 깨알같이 연기한다 싶었던 게, 레어티스 배웅하러 여 앙상블 두 명이 찾아오는데, 그거 보면서 우아~ 우리 오빠 인기많다 이런 표정이더라.ㅋㅋㅋ
아버지의 한바탕 잔소리가 끝나고 이어지는 Sister에서 위에도 썼지만, 동레어가 오늘은 제대로 오빠님이라 정화 오필리어를 훈계하듯 타이르는 분위기였다. 내가 정화 오필리어가 참 좋은게, 정화 오필리어는 햄릿에게 콩깍지가 만겹은 씌여서 '오빤 어려서부터 햄릿을 질투해왔어.'라는 대사가 너무너무 진심으로 들린다는 거다. 저렇게 잘난 오빠가 세상에 어디있다고, 동레어가 뭐가 아쉬워서 햄릿 아니라 그 어떤 남자에게라도 질투를 느끼겠냐며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화 오필리어는 이 세상에서 햄릿이 제일 잘난 줄 아는 콩깍지 만겹 상태라는 게 보여서 이게 또 귀엽다.
그리고 레어티스의 훈계에 울상이다가도, '오필리어 내 목숨보다 귀한 너' 하면 그래도 오빠는 나를 귀여워하니까 내 말을 들어줄 거야 라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곧바로 레어티스가 '알아, 너희 두 사람 사랑을' 하면서 잘라버린다. 그리고 오빠를 다시 한 번 설득하려고 생긋 웃으며 '오빠 그는 나를 진정 사랑해'라고 해보지만, 오빠 눈엔 그런 여동생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기만 한 거지. 하여간 오늘 동레어가 제대로 오라버니 노선을 타줘서 대만족.
레어티스를 배웅하고 모자를 벗는 정화 오필리어 표정이 '힝~ 오빠가 갔어 ㅜㅡ' 였다가, 햄릿을 발견하고 눈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너무 귀엽더라. 가사에 담긴 마음은 엄청 처절하고 무거운데, 정화 오필리어는 그걸 사랑에 들뜬 소녀의 마음으로 불러줘서 좋다. 그리고 은릿 셔츠를 벗길 때도 단추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시선이 은릿의 얼굴쪽을 향하고 있어서 제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그가 바라는 게 뭔지,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그런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런 점이 정말 좋더라. 정화 오필리어는 상대 배역이 누구던지, 그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연기를 한다. 그게 헬레나든, 폴로니우스든, 레어티스든. 이건 무대위에서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배우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은릿이 선왕 살해의 꿈을 꾸고 침실을 박차고 나가서 미칠 것만 같아, 눈이 뒤집힐 것 같아! 라며 자빠지는 장면에서, 오필리어도 걱정이 되서 밖에 나왔다가 아버지한테 들키는 장면인데, 여기서도 정화 오필리어는 주저앉은 햄릿 쪽에 손을 뻗다가 아버지를 발견하고 도망가는거다. 진짜 오필리어가 햄릿을 너무 사랑해줘서 눈물이 ㅠ.ㅠ
- 피는 피로써 넘버는 매 공연 레전드인만큼 잘하고있어서, 내가 더 찬양할 말이 없다. 지난 후기들에 열심히 찬양한 그만큼 오늘도 전율이었다.
그리고 He's crazy에서 오늘 은릿이 미쳤어~ 돌았어~ 하며 팔랑팔랑 오도방정을 떨다가 편지 떨어뜨려서 잠시 뿜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로 잘 넘기고 슥 집어가는데, 하여간 애드립은 없어도, 순간적인 사고에는 능숙한 게 은태의 장점이랄까.
- 내가 하도 정화 오필리어 우쭈쮸쮸 모드로 보다보니까 오늘 '수녀원에 가' 넘버에서 참 오랜만에 햄릿 개객끼를 외치면서 봤다. 그런데 커튼 뜯어내고 웃는 부분 부터 뭔가 좀 감정이 차갑더니만, 그 뒤에 혼자 괴로워하는 씬에서 뭔가 격렬함이 사라져있어서, 이 자식~ 지금 한바탕 퍼붓고 후련해하고 있어!! 라며 분노!!!!!!!!!!!!!!! 후련해한다는 건 내 오해였을 거라고 믿고. 오늘 은릿은 굉장히 신중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라고 할까. 가장 친한 호레이쇼에게도, 연인인 오필리어에게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꽁꽁 싸매서 모든 고민과 번뇌를 혼자 짊어지고,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섬과도 같은 상태였다. 스스로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자기를 고립시켜버린 이 불쌍한 왕자님.
유랑극단을 끌어들여 복수극을 준비할 때도 호레이쇼는 '이제 즐겨봐, 네 고통도 이걸로 끝내'라고 할 만큼, 햄릿은 아무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Sextet에 가서야 호레이쇼는 '이제야 알 것 같아'라고 하는 거다.
이 극중극 장면이 내가 정화 오필리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였는데, 오늘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아우, 정화 오필리어 사랑합니다! ㅠ.ㅠ 라고 고백할 지경.
은릿이 연극 시작하니까 오필리어에게 매달려 가슴에 머리를 묻고 고개를 살랑살랑, 뜬금없이 우하하하하 오버하며 웃어댈 때, 정화 오필리어는 '이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시선으로 햄릿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극을 가만히 바라본다. (왕 대역 배우가 잠이 드는 장면)
내가 윤필리어와 비교를 안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는 있는데, 이 극중극 장면에서 윤필리어는 자신과 주변 상황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속으로 침잠해버린다. 나는 심하게 상처받았고, 그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들려 상태. 그러나 정화 오필리어는 등장 할 때 부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헬레나를 안심시키고, 자기를 야멸차게 내쳤지만, 그러고도 자기에게 매달리는 햄릿의 상태를 살피고, 햄릿이 보여주려는 연극을 지켜본다.
독을 든 마스크 맨이 등장해서 은릿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가자 오늘 정화 오필리어는 햄릿을 따라 일어나려고 하더라. 헬레나가 옆에서 말리지 않았으면 그대로 햄릿을 가서 붙잡았을 거 같은 분위기. 그러더니 시선이 내내 햄릿에게서 떠날 줄을 모르고 이어지는 Sextet에서도 햄릿을 바라보며 '신이여, 거짓이라 말해줘요'라고 부르는데, 이게 오필리어가 냉정해진 햄릿을 원망하며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오늘은 햄릿이 보여준 연극의 진실이 거짓이길 바라는 것처럼 들리더라. 저 연극이 사실이라면, 햄릿에게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가, 신이여 제발 거짓이라고 말해줘요~ 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들려서, 난 정화 오필리어에게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복수에 온 정신을 쏟아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햄릿에게 그래도 단 한 사람,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 영숙 님, I'm untrue, 범사마 님 Chapel 오늘도 레전드 만큼 훌륭하셨음. 평타 레전 만큼이나 더 찬양할 말이 없어서;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오늘 김성기 폴로니우스가 '왕께서 격분하셨습니다.'를 박자 놓쳐서 그냥 날리고 대사 처리 하고, 은릿이 아직 어머니!를 한 번 밖에 안 불렀는데, 벌써 자기가 커튼 뒤에서 지켜보겠다며 들어가시는 바람에 두번째 어머니!에 무대로 뛰어들어왔다. 하여간 애드립은 없어도 순간적인 사고에는 순발력이 좋다고 할까.
그리고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시체춤을 춘다음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뜨리는데, 여기서 또 김성기 씨 발에 커튼자락이 휘감겨서 같이 계단으로 또르르. 우왕좌왕 커튼 펼치고 폴로니우스를 커튼 위에 올렸는데, 머리쪽으로 커튼 자락이 별로 없어서 햄릿이 커튼 끌때, 김성기 씨가 머리 드는 게 보였;; 참 한 번 합이 안맞으니 그게 계속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 폴로니우스 살해 소식을 듣고 레어티스가 귀환해서 왔는데, Killer's name에서 동레어는 언제나 폭주 모드. 오늘은 매고 있던 스카프가 한 쪽으로 돌아갈 정도로 날뛰더라. 목소리도 폭발할 것 같이 쩌렁쩌렁, 그런데 박자는 좀 맞춰주지 그러니. 니 감정이 지금 매우 격한 건 알겠다만, 같이 듀엣 맞춰줘야 하는 우리 범사마가 안그래도 박치끼가 좀 있으신데. ㅠ.ㅠ 그리고 독을 쓰면 피를 안 묻힌다니까 '확실한 거죠!' 라면서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그 새끼손가락은 좀 접어두지 그러니. 그거 보고 현실입갤;;
- 정화 오필리어의 매드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오늘도 그 해사한 미소 띤 얼굴로 등장하는데, 아~ 정화 오필리어는 미쳤다기 보다는 그냥 현실도피를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꿈속으로 도망가버린거지. 꿈속에는 아직 아빠도 살아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어디든 갈 수 있고, 오르고 또 올라 천사도 만날 수 있고.
오필리어의 모습에 무너진 동레어를 보고 안아서 달래주다가 '두려워 마 나는 언제나 니 곁에 있어'라고 할때, 정화 오필리어는 몸을 낮추고 아래에서 위로 동레어와 시선을 맞추는 걸 보면서, 상대에 맞춰서 연기한다는 게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주는 이 아가씨는 연기에 대한 감이 참 좋구나 감탄했다.
- 오필리어의 장례식 장면에서 아까 수녀원에 가 이후에 후련해 한(오해였을지도 모름;) 은릿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흘겨보고 있었기에, 여기에서도 덜 슬퍼하거나 하면 넌 진짜 개객끼라는 심정으로 지켜봤는데, 은릿이 진심으로 비통해해서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오늘 오필리어가 햄릿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ㅠ.ㅠ
- 모두가 비극으로 치닫는 극의 마지막, 오늘 은릿은 왜 이렇게 냉정돋는지, 동레어가 칼맞고 '형제여'라고 부르는데, 손도 안 잡아주고, '형제여 이젠 서로 용서해'라니까 그제서야 화해의 악수 비스무리하게 손을 잡아주는데, 엄마가 독살당하니 눈이 뒤집혀 아무것도 눈에 안들어와 그런거라고 이해는 되지만, 폴로니우스 가문 사람들한테 오늘 너무한 거 아니냐며 투정;
이후 전개도 레전드 급으로 훌륭했고, 그것 역시 다른 후기에서 열심히 찬양한 만큼 생략; (안 그래도 스압이다;)
- 내가 정화 오필리어에게 점수가 후한 건 얼터 배우인데, 저만큼 자기만의 차별화된 오필리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첫번째. 그리고 저 가혹한 운명에 휘둘리는 불쌍한 왕자님을 그래도 한 사람 정도는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두번째였다. (호레이쇼는 친구니까 열외로) 그런 내 바람을 120% 충족 시켜준 이정화 오필리어, 오늘이 정화 오필리어 자체 막공이었을 터였지만, 고양에서 또 봅시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