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18 (금)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햄릿 캐스팅 스케줄에서 참 드문 조합 중에 하나가 오늘 조합이다. 박은태 - 서범석 - 전동석 - 김장섭 4번인가 밖에 안 나오는 조합. 생각해보면 EMK 배우 풀이 거기서 거기라서 생기는 딜레마 같은 건데, 저 조합안에 모차르트! 배우만 3명이다. 은태랑 동석인 볼프강이었고, 범사마는 레오폴트였으니, 햄릿에서마저 어떻게든 부자지간, 유사 부자지간으로 나오는 거다. 그게 연기에 드러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한번씩 떠오르는 거지. 그래서 신영숙 님도 황금별 남작부인의 잔상이 남아있는 거고. 하지만, 배우들이 워낙 좋아서 난 별로 전작의 잔상이 남는다거나 하는 느낌은 안든다. 은릿 웃음 소리에서 은촤 떠오른다고 하는데, 글쎄, 은릿은 은촤때의 방정맞음에 비하면 훨씬 똘끼 충만한 삘인데, 그걸 같은 거라고 도매금 취급하는 건 좀;; 아니면 내가 회전문을 너무 많이 돌아서 남들 눈에 안들어 오는 깨알같은 디테일에 너무 집중해서 그런 건지도.

- 장례식을 지켜보는 은릿의 표정도 나날이 더 깊어지고 표현이 다양해지는데 예를 들어 첫공 때는 굵직하게 한 세가지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낸다고 치면, 요즘은 그 세가지 표정 사이 사이에도 뭔가가 더 생겼다. 아주 미묘하게 어디를 손 댄건지 모르겠지만, 완성도가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까. 99% 완성된 조각을 100%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전에 사용하던 큰 조각칼이 아니라 세밀한 조각칼을 이용해서 섬세하게 세밀하게 깎아나가야 하는 것 같이, 그렇게 공들여 캐릭터를 완성해가는 게 보인다. 똑같은 슬픔이라도 더 슬프게, 똑같이 미쳤어도 더 강렬하게, 이렇게 깊이가 쌓여나가는 게 보여서 은태는 아직도 계속 성장하고 진행형이구나 싶어서 그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보람이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어떻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노래마저 회가 거듭할 수록 더 잘부르는다는 거. 햄릿이 이제 거의 중반을 지나가는데, 아직까지도 저 쩌렁쩌렁 지붕날릴 듯한 미친 성량은 나날이 더 좋아지지, 노래에 감정을 싣는 것도 말하면 입 아플정도에, 아주 감정에 따라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구나 싶은 '사느냐 죽느냐' 넘버에는 그냥 가슴 앞에 두 손 모으게 만든다.

결혼식 장면에서 '사랑 오직 사랑'을 외치는 하객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사실 은릿은 정식 등장 장면도 아니고, 바깥에서 연회장을 들여다보는 장면인데, 무대위에서 춤추는 배우들한테 미안하게도 은릿에게서 시선을 뗄수가 없는게, 이때부터 햄릿의 캐릭터가 보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분명 이 장면에서부터 은릿은 분노의 감정을 품고 경멸과 조소를 담아 하객들을 관찰했었는데, 3주차부터 감정선에 변화가 생겼다. 분노라기보다 체념에 더 가까운 감정으로. 만개한 꽃 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그게 아버지 품이 아니라, 삼촌 곁에서 저리도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으니, 아들로서 그 복잡한 심경과 원래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결혼식이지만, 그런 어머니를 보며 그래도 참석하는 게 도리겠지 체념하고 돌아서는 쪽으로 감정선에 변화가 온 것 같다. 역시 '효자' 속성은 어쩔 수 없는 은태의 개성인 거니까 그게 어느 정도 반영이 되는 거겠지.

그리고 오기 싫었지만, 어머니 때문에 왔다는 티 팍팍 내는 연회장에서, 사랑 만세를 외쳐대는 하객들 사이에서 이딴 게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을 부정하겠다는 듯 화를 터트리며 연회장을 떠나 이 나라가 왜 이 꼬라지냐고 한탄하며 부르는 Why me. 가장 믿었던 친구마저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라며 너 하나 눈감고 지나가면 모두가 즐거울 것을 넌 왜이리 심각하냐고 하니, 은릿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지. 어떻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이 모든 부정을 눈가리고 아웅 하듯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길 수 있는 건가. 이 결벽한 자존심 높고 예민한 왕자님은 이런 자신이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증오스러울 지경인 거다. 정말 여기서 보여주는 은릿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뭐 은태 가창력에 놀랄 포인트가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일단 질러주는 면에서는 저 Why me와 선왕의 유령이 등장한 이후 보여주는 '피는 피로써' 에서 성벽을 오르며 부르는 어디든 가주오~ 부분인데, 이 부분은 볼 때마다 나도 같이 막 얼굴 찡그리면서 막 힘주면서 본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진짜 감정이입 장난 아니다. 햄릿이 받았을 충격과 분노와 증오, 세상이 뒤집힌 것 같은 혼란스러움, 그리고 절망감. 정말 중간 기립이라도 하고싶어지게 만드는 노래와 연기다.
그런데, 이러게 지르는 것만 잘하는 것도 아니고, Let's rise above this world에서의 '사랑해─'에서의 그 속삭이듯 여린 음성은 또 얼마나 애가 끓고 안타까운지. 진짜 매번 매 넘버가 더 좋아진다는 게 가능한가 싶은게, 그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게 하여간에 경이롭다~ (feat. 콜로레도)

- 강레어 연속으로 보다 다시 만난 동레어. 그 블링블링함은 여전한데, 참 그 널뛰는 감정선은 회가 거듭되도 정리가 아직 안되는구나. 아직 노련미까지 기대하기에 동석인 어리니까 하고 일단은 넘기자. 1막에서 근친도는 더 올라가서 이젠 느끼할 정도;; 2막에서도 그 격한 감정은 제어불능 상태로 빠져서 오필리어 무덤에 햄릿보다 레어티스가 먼저 뛰어들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던데, 그래서 햄릿이 함께 죽겠다니까 선수 빼앗겨서 날뛰는 레어티스 처럼 보이더라. 노래하는 목소리는 동석이가 더 취향이긴 한데, 난 동석이가 성악전공자 티내면서 쫙 뽑아주는 건 또 부담스럽고. 동석이가 적정선을 찾아주면 참 좋겠다.

- 햄릿 월드버전에서는 칼싸움 장면에서 칼에서 불꽃이 튀었다고 한다. 2011 버전에선 그런 효과가 없었는데, 와우~ 오늘 드디어 그 불꽃 튀는 칼싸움을 구경(;)했다. 효과를 준 거라고 보기엔 화려함이 덜해서, 진짜 금속과 금속이 세게 부딪혀서 발생한 부싯돌 효과 불꽃으로 보였는데, 이게 동석이가 힘이 장사라 그런 걸까 싶더라. 그리고 오늘 동레어는 정말 어떻게든 햄릿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쳐서 칼싸움에서 박진감이 장난 아니었다. 저러다 한발 삐끗하면 큰일나겠다 싶어서 진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주체 못하고 은릿이 가사 실수를 했지만, 이렇게 오늘도 또 레전드 갱신. 아니, 어느 순간 매 공연 평타 레전드를 찍기 시작했으니, 이건 앞으로도 계속 갱신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