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연가
일 시 : 2011. 08. 25(목) 20:0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팅 : 김생 - 박은태, 홍랑 - 조정은, 홍생 - 임현수, 행매 - 양희경
3번 연속으로 보고나니까 뭐 이건 없던 정도 생길 지경이고. 게다가 내 곰손으로 잡은 것보다 좋은 자리가 막 양도표로 나오니 이건 잡아야해!! 싶어서 또 허여허여 세종으로 내 발길은 향하더라. 뭐 가길 잘했다 싶었지만.
3번째 쯤 되니까, 배우들이 이제서야 어깨에서 힘이 좀 풀리는 것 같더라. 로딩이야, 작년에도 했던 배우들인데, 진즉 로딩이야 끝났지. 다만, 어깨힘을 빼고, 여유를 좀 찾을 때까지 무대 적응 기간이 필요했을 뿐.
피맛골 회전무대가 돌아나오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참 압도된다는 느낌이고, 무엇보다 정말 넘버 좋고, 가사 예쁜 거 말로다 못한다.
정도 많고 사연많아 똑바로는 못가오~ / 구불구불 돌아가며 꿈꾸는 골목
좁아서 좋아라 피맛골 낮아서 좋아라 피맛골 / 구불구불 복작복작 좋아라~
- 피맛골 중
하여간 나도 저 구성진 가사와 적절한 해학을 품은 얼치기 넘버라던가, 숨어라 사랑아~ 무대를 보면서 흥이 올라서 보다보면 어느새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1막이 끝나버린다.
하여간 세종에 강림한 선녀, 정은랑을 보면 2막에서 은생이 저리 미쳐서 홍랑을 찾는게 절로 이해가 되는데, 당췌 홍랑은 김생의 뭘 보고 죽음마저 불사할 정도로 사랑에 빠졌을까 싶기는 하더란 말이지.
김생과 홍랑의 첫 만남은 김생의 일방적인 희롱(;)이나 다름없었고, 두번째로 얼굴을 마주친 건, 경사스런 유가행렬 도중 친 오빠와 분위기 험악한 대치 상황 중이었고, 세번째는 빈사의 상태로 광에 갖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었다. 구해준다니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 그냥 신경 끄라는 소리나 하고 앉았고, 기껏 부축해줬더니 되먹지 않은 수작이나 걸어서, 살려주려다 '진짜로 죽고싶어요?!' 소리나 하게 만들지 않나.
그러나 남녀가 정분이 나는데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스파크니까.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을 돕기위해 오지랖 넓게 일을 벌린 것도, 고작 살구나무라고는 해도, 그 가지가 베이는 것을 목숨걸고 막아선 용기도 홍랑에게 어필하는 요소였을까. 게다가 자기 재능을 살려 은근히 읊어주는 싯구는 또 얼마나 낭만적이던가. 김생을 치료해주면서 연민의 정이라던가, 모성애가 끓어올랐을 거고, 거기에 작업남 김생의 크리티컬 히트!
아마도 홍랑의 컴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싶은 손등의 흉터를 '꽃잎같다'는데, 어떤 여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렇게 찾아온 사랑에 홍랑은 환희에 차서, 김생은 언감생신 자기 처지에 누구를 넘볼까 마음을 다잡으려해도 그녀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담아 '사랑이 내게로 왔네'를 부른다. 그런데, 참 이렇게 노래하나 부르고 사랑에 빠지고, 또 노래하나 부르고 죽고 못산다고 하냐고 하면서도, 이게 배우빨, 노래빨에 다 설득이 된단말이지.
김생이 칼맞고 끌려나가고 홍생이 분노에 차 '돌아와~'를 열창하고나면, 뒤에 남은 홍랑이 돌아와 rep.를 부르는데, 그 처절하고 애끓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규는 그냥 그 장면만으로 너무 가슴이 아파서 같이 동조하게된다. 정말 깊이 사랑했구나, 그래서 그만큼 절망도 깊구나 같이 울컥해서 눈물이 또르르. 참내 내가 피맛골을 보면서 울다니;;
2막의 쥐떼는 여전히 극복이 좀 어렵지만, 은랑-은생의 저 절절한 아침은 오지 않으리를 보기위해 또 세종을 향할 것 같다.
+ 1막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당신에게로' - '인연' 넘버에서 행매님 마이크가 들어오질 않아서 양희경씨가 1절을 그냥 생목으로 치셨다. 그럼에도 1층 객석에선 또렷하게 들리는 양희경 씨 목소리에 감탄감탄. 그리고 슬쩍 막 뒤로 돌아가 수리하시고 다시 태연하게 무대에 서셨다. 그 와중에도 몰입을 깨지 않으려 집중하시던 모습에도 감탄.